100년이 넘은 기와집에 3대가 모여 6명이 함께 살았다. 마당의 작물과 나이 든 집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일거리가 가득한 생활이었다.
집 돌보기 노동에서 우리 삼 남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겨울의 시작에선, 감나무가 몸이 무거워 제 자식들을 톡톡 털어내기 전에 얼른 감을 따야 했다. 우리는 어른들이 털어낸 감을 줍고 또 주웠다. 언니가 사다리에 올라탄 아빠 밑에서 어물쩡 거리다가 아빠가 털어낸 감에 머리를 맞고 우는 어느 겨울도 있었다.
해마다 감을 따는 일 외에도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바로 '생일'이었다. 6명이 사는 집엔 생일이 자주 돌아왔다. 연중 세 번의 생일은 우리 삼 남매의 것이었고, 어른들은 적어도 우리의 유년기, 대략 30번의 생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성을 담았다.
마루의 가장 안쪽에 빨간색 나무 밥상을 펼치고, 그 위엔 롤케이크와 제철 과일, 꽃다발을 올렸다.
열대야가 절정에 달하는 한여름에 태어난 언니의 생일엔 언니의 상체만 한 커다란 수박이, 눈이나 고드름 같은 겨울의 모습은 없지만 여전히 추위가 감도는 겨울의 끝자락에 태어난 동생의 생일엔 딸기가, 이런저런 꽃들의 냄새가 뒤섞여 미지근한 바람이 부는 5월, 어중된 봄에 태어난 나의 생일엔 사실상 사시사철이 제철이라고 봐도 무방한 사과나 토마토가 올랐다.
태풍이 몰아치던 언니의 어느 생일날, 아빠가 빗속을 뚫고 수박과 생일 케이크를 사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모습, 언니가 촛불을 불 때 천둥이 치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생일상을 가득 채우는 건 형제들이었다. 생일자 옆을 남은 형제들이 둘러싸면 소박한 생일상일지라도 금세 풍성해졌다. 항시 먹는 과일이어도 자식들 생일상에 오를 걸 생각해 좀 더 크고 단단하고 이쁜 걸로 정성 들여 골랐을 엄마, 아빠의 귀여운 마음이 더해졌기에 삼 남매 주변엔 포근함까지 감돌았을지 모른다.
돌아오는 엄마, 아빠 생일엔 나도 옛 시절 엄마, 아빠의 귀여운 마음을 흉내 내어봐야겠다. 그들도 나와 같이 어중된 봄에 태어났으니 생일상에 오를 과일은 역시 사과 아니면 토마토 당첨이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5일 차 _ 삼 남매와 제철 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