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순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영 Mar 06. 2021

횡단보도 위의 마음 급한 남자

오전 열 시 반의 옆모습을 한


운전 중, 육 차선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우리가 정면으로 바라보는 긴 횡단보도는 초록불을 받았고, 그 위론 양쪽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서로를 스치며 지나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횡단보도 바닥의 흰 부분에 닿아 하얗게 일렁였고, 그 위를 지나는 이들 모두 햇살을 즐기는 듯 여유롭게 걸었다. 사람들의 걸음 소리와 말소리, 까까-꼬- 거리는 횡단보도의 신호음 소리가 은은하게 섞여 차창 안으로 들어왔다.

햇살 좋은 날의 소리를 음미하다가 횡단보도를 지나는 누군가의 상체에 눈이 꽂혔다. 검은색 모자를 쓰고 머스타드 색과 카키색이 섞인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달리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달리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폼이었다. 빨리 가고 싶단 생각이 마음에 쏠렸는지 상체가 앞을 향해 축 쳐져있었다. 양팔은 새끼 오리의 날갯짓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반면, 두 발은 좁은 보폭으로 동동동 거렸다. 그의 옆모습은 꼭 오전 열 시 반 같았다.


나는 마음 급한 남자를 귀엽게 바라보며, 응원의 마음이 들었다. ‘아직 초록불이 한참 남았는데, 어디를 저렇게 급하게도 가실까? 내가 거인이라면 마음이 급한 그를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집어서 횡단보도 끝으로 옮겨다 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다.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떼었다가 횡단보도를 다시 봤다. 마음 급한 아저씨는 이미 어딘가로 가고 없었다. 도대체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신 걸까? 그가 향하는 곳이 별 탈 없는 곳이었으면 싶었다. 그저 30년 지기 친구들과의 낮술 약속에 늦어, 집에 맛있는 음식이나 귀여운 손주가 기다리고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서두른 것뿐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그의 모습을 보고 내가 귀엽다고 생각한 게 너무나 미안해지니까.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6일 차 _ 횡단보도 위의 마음 급한 남자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 일도 없는 오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