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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07. 2021

장례식장의 지박령 셋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그뿐이었다


나이 듦을 실감하는 일 중, 누구나 똑같이 말하는 것이 있다. 바로 누군가의 부고를 알게 되거나 조문 갈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 내게도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내가 지금껏 소중한 사람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본 적이 없다는 게 어쩌면 내게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이라 생각해왔다.

 



한 달 전, 수개월간 엄마의 병치례를 홀로 도맡던 친구 E 에게서 엄마가 소풍을 떠나셨다는 카톡을 받았다. 위아래로 딱 한 벌 씩 밖에 없는 검은 옷을 빠르게 꺼내 입고 그곳으로 갔다. E 는 애써 씩씩한 듯 조문객과 수다를 떨고 웃었다. 그렇게 마음에 안정을 찾은 듯 보이다가도 발을 동동거리며 울었다.

슬픔에 잠긴 E 를 보며, 또 그의 슬픔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토닥이지 못하는 날 느끼며, 이제껏 나를 감싸고 있는 주변인의 무사가 곧 나의 행운이라 느껴온 것이 부끄러워졌다.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고, 그 후엔 슬픔을 누르고 일상을 살아오며 체득한 것들로, 물음표와 느낌표를 섞어가며 E 의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조언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다른 친구들 틈에서, 난 온점 밖에 찍을 수 없었다. “아 그렇구나. 그랬구나..”




하루를 꽉 채워 식장에 있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바닥에 앉으니 엉덩이뼈가 쑤시고 다리가 저릿저릿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내 양옆으론 두 친구도 함께 있었다.


가능한 한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그뿐이었다. 밀어닥치는 조문객을 맞이하며 허벅지가 저리도록 절을 하고, 가장 큰 슬픔을 겪는 와중에도 지난 수개월간 겪은 슬픔을 주제로 조문객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E 에게 잠시 쉴 틈이 찾아왔을 때, 기대어 앉아 ‘하도 절을 했더니 허리가 아프다’, ‘앞으로 더 많이 슬플까 봐 두렵다’며 마음 꺼낼 수 있고 마음 쉴 곳이 되어주는 것. E 가 이렇게 느꼈을진 모르겠지만, 이런 바람이었다.


두 친구와 함께 식장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꼬박 하루간 함께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었다. 쏟아낸 만큼, 허기진 마음을 달래려 꿀떡과 김 과자, 마른오징어를 입에 연신 쑤셔 넣었다.


“우리 여기 지박령 같다.”

“진짜 그렇네.”

“(피식) 맞아. 아 배불러, 배부른데 계속 먹게 돼.”

“우린 지금 제삿밥 먹으러 내려온 귀신들이야. 원래 귀신들은 먹어도 배 안 부르잖아.”


이런 농담을 했다가, E 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함께 울다가를 반복했다.




머리카락, 옷, 살갗에 향 냄새가 잔뜩 배어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기에서 뻗어 나오는 물줄기 아래로 들어가 몸에 밴 향 냄새를 욕조 아래로 흘려보냈다. 향 냄새를 곧바로 지워버리는 게,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애도의 마음까지 지워버리는 것만 같아 마음이 흔들거렸다. 평소보다 샤워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만 했다. 긴 샤워를 마치고 허겁지겁 냉장고 앞으로 갔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엄마표 반찬과 국을 꺼내어 늦은 저녁을 먹었다.


E 의 슬픔에 대한 슬픔과 내가 지닌 부끄러운 행운. 이 두 감정 사이에서 조리 없이 오가다가 촉촉해진 눈으로 창 밖을 봤다.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E 에게 최근 몇 년간 찾아온 슬픔의 양이, 그가 이번 생에서 겪게 될 슬픔의 총량이길 바란다고, 하얀 눈처럼 고요하고 차분하게, 포근하고 깨끗하게, 소풍을 떠난 어머님께서 앞으로 가실 길은 늘 하얀 눈 같으면 좋겠다고, 보이지 않는 달에게 빌었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7일 차 _ 장례식장의 지박령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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