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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13. 2021

살아있음이 무사인 나날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침대에 누운 듯 앉아 아이패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거실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 아 뭐야, 또 선거철이야? 아닌데? 그럼 뭐 또 설문 조사겠지.’ 무시했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를르릉-  물이 끓을 대로 끓어 뚜껑이 시끄럽게 달그락거리는 주전자처럼, 이미 받는 점을 지난 전화기에선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르르르릉- 요동치는 소리가 났다. 이렇게까지 전화를 거는 사람은 분명 가족이거나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서둘러 거실로 나가 수화기를 손에 들었다.


“여보세요.”

<<···? 엄마인가? 누구세요?>>

“예? 어디에서 전화 주셨어요?”

<<아, 고모라 그래야 해, 이모라 그래야 해, 거기 봉완네 아니에요?>>

“아, 맞아요! 안녕하세요-! 할머니 바꿔드리면 될까요? 전 손녀딸이에요-”

<<잉 그려~ 하이고 목소리가 엄마랑 똑같네~>>


집 전화기로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 수신인을 할머니로 찍어둔 것이었다는 걸 난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내겐 기억에 없고 낯설기만 한 사람일지라도, 그들 기억엔 어린 내 모습이 선명할 텐데···. 앙칼지게 커버린 손녀딸은 두 할머니에게 송구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소파에 누워 졸린 듯 눈을 깜빡이는 할머니에게 소리치듯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할머니는 요 근래 청각이 약해져, 웬만하면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


“할머니, 동생 분이신 거 같아요. 전화받으셔요.”


할머니 손에 수화기가 들렸다.

“여보세요? 그려, 네가 웬일이니. 그려 그려, 나도 요즘 아파서 혼났어야. 몸이 기냥 이렇지 뭐” 


수화기 너머의 이모할머니는 할머니에게 누군가의 소식을 전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답했다.

“병원에 입원한 지 열흘 됐댜고? 오줌을 못 눈디야? 큰 오빠가 죽으려나보다 얘. 봉완이(할머니의 첫째 아들이자 우리 아빠다.) 보고 병원에 가보라고 해야지 뭐. 그려 그려, 여든아홉? 벌써 그렇게 됐니? 나이 먹어서 이제 죽을 때가 되어서 그려 들···.”


할머니의 말엔 그 어떤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김장 김치가 가득 담긴 무거운 김치통을 옮기다가 마룻바닥에 김칫국물을 살짝 쏟았을 때 정도의 놀람만 느껴졌다. 너무나 덤덤한 할머니의 반응과 음성에 난 어쩐지 조금 웃음이 나기까지 했다. 평소 할머니가 자주 했던 말이 생각나서.

 



간혹 엄마가 우리 가족과 옛날에 가까웠던 김 씨 아저씨, 옆집 살던 박 씨 할머니네의 소식을 전하려 운을 뗄 때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 냥반이 죽었댜니?”


엄마는 놀라 답했다.

“(웃음) 하이고 어머님, 무슨 말씀이셔요. 잘 살아 계셔요.”


동생에게서 오빠가 노쇠하여 병원에 있다는 말은 듣고도 덤덤한 할머니에게 “에? 할머니, 슬프지 않으세요?”하고 감히 물어볼 수는 없었다. 할머니가 덤덤할 수 있는 건, 그동안 가까운 사람을 하나 둘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내면서 오랜 시간 ‘이별’이라는 슬픔을 맞이하는 연습을 해 온 덕분이었을 거다. 늘 마음 한 구석에 ‘언제 올지 모를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을 두고 살아왔을 거다. 그래서 대화의 소재에 누군가의 이름만 올라도 가장 먼저 이별을 떠올리는 것이 아닐까? 이별은 늘 슬픈 일이기만 한데, 그런 일을 늘 마음에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나는 절대 모를 것 같다.


할머니는 그동안 숱하게 연습해 온 덕분에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그래, 이젠 너 차례구나. 너도 좋은 곳으로 가서 잘 살거라.’ 하고 준비해 온 마음을 먼저 꺼낼 수가 있는 것이었다.


제 아무리 몇 년에 한 번 만나는 사이라도 가족인데··· 어린 시절 살 붙이고 살며 싸우기도 하고, 어른들의 막걸리 심부름을 위해 함께 개울가를 걷기도 했을 사이일 텐데 어떻게 슬프지 않으리.

 



오늘에서야 나는, 우리가 장난 삼아 가볍게 말하곤 하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에 담긴 무게를 느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 내겐 이별을 연습하는 일은 기어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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