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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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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14. 2021

동생 셔츠를 널다가

이름 모를 누군가를 떠올렸다


빨래를 널 땐 항상 널기 쉬운 것부터 손에 집는다. 수건, 손수건, 양말 같은 것들을 먼저 건조대에 올리고, 빨래 더미에 다시 손을 넣는다. 동생 셔츠가 손에 잡힌다. 동생 옷은 커서 널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셔츠만은 정성 들여 널어야 한다.


축축한 셔츠의 양쪽 어깨를 잡고 공중에다 팍팍 턴다. 섬유유연제 향이 발코니에 퍼진다. 셔츠에서 털려 나온 가벼운 물방울 몇 개가 내 얼굴로 튄다. 한껏 구겨져있던 셔츠가 공중에서 얼추 펴지면, 이어서 깨끗한 바닥에 제대로 펼쳐 놓는다. 손바닥을 쫙 펼쳐 손바닥으로 다짐질 하듯 셔츠를 누른다. 이렇게 해서 널면 셔츠가 바짝 말랐을 때 꼭 방금 다림질을 한 것처럼 각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옷장에서 셔츠를 골라 들고 서서 ‘좀 구겨져있네, 다림질을 할까, 아 좀 귀찮은데.’ 하고 고민하거나 다리미를 찾아드는 수고 없이도 반듯하게 입을 수 있는 거다.


미리 단추를 다 잠근다. 그래야 단추와 단추 사이의 면에도 구김이 지지 않는다. 셔츠에 있는 모든 단추를 하나 둘 잠근다. 동생 셔츠엔 어쩐지 내 셔츠보다 단추가 하나 더 많은 것 같다. 내 거보다 길어서 그런가?


셔츠 깃에 하나, 둘. 양쪽 소매에 하나, 둘. 하나, 둘. 가슴엔 하나, 둘, 셋, 넷, 다섯, 마지막 여섯. 마지막 단추는 잠그기가 조금 힘들다. 다섯 번째 단추까진 분명 세로 구멍에 맞춰 끼웠는데, 마지막 단추 구멍만 가로다. 잠글 때 상대적으로 힘들다는 건, 셔츠를 입은 상태에서 옷매무새가 한껏 망가져도 단추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거구나. 셔츠를 입을 땐 보통 셔츠 밑단을 바지 속에 넣는데, 그 안에서 단추가 풀려버리면 엄청 불편할 테니까.


셔츠 맨 아래의 단추 구멍을 빼기 자로 만들자고 처음에 이야기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가 언젠가 생활 속에서 발견한 불편함을 여기에 적용한 거였겠지? 빨래를 널다가, 셔츠를 입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이 빼기 모양의 단추 구멍에 담은 누군가가 문득 귀엽다고 느꼈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4일 차 _ 동생 셔츠를 널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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