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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15. 2021

금붕어의 독서법

종이책을 좋아해요


종이책을 좋아한다. 책의 무게감과 손에 잡히는 감, 표지의 촉감은 물론 책장을 넘길 때 종이끼리 스치며 나는 냄새 모두 책마다 다르다.


책이 지닌 고유의 촉감과 향을 맡으며 하얀 종이 위에 올려진 까만 활자들을 눈으로 천천히 짚어간다. 이 과정에서 몸의 감각이 하나씩 깨어나고, 그 감각을 온전히 느끼다 보면 자연스레 집중이 생긴다. 보통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면 정가의 10% 정도가 저렴한 데다가, 꼭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e-book이나 오디오북, 챗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만날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도, 부러 서점에 가서 종이로 출판된 책의 값을 치르는 이유다.


게다가 스크린 속 활자 만으로도 정보를 잘 흡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모바일로 무언갈 읽다 보면 해당 페이지에 속한 광고 배너, 특정 키워드에 시선을 뺏겨 다른 세상으로 이탈해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싶어 지거나, 궁금한 것이 생기면 우선 서점으로 걸어간다. 내게 필요한 책을 골라 손에 들고 집에 돌아온다. 이 과정 모두 읽는 행위를 잘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 운동인 셈이다.


집중력이 낮은 나는 한 권의 책을 단 번에 읽는 것 역시 어렵다. 그래서 매일 밥상을 차리듯 책상을 차린다. 내 방안엔 내 손이 닿는 대부분의 곳에 책이 있다. 마치 뷔페에서 음식이 일렬로 진열된 바 앞을 걸으며 원하는 음식을 접시에 쏙쏙 골라 담듯, 침대 옆, 키가 큰 책장, 책상 위, 작은 테이블을 돌며, 가장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고른다. 그리고 그 책을 읽다가 집중이 깨지거나 지루해질 때쯤 머리를 식히며 잠시 읽을 책도 두어 권 고른다. 마치 밥을 먹다가 목이 막히거나 입 안이 텁텁할 때 동치미나 김치를 곁들이는 것처럼.


보통 메인 책은 줄글로 된 에세이나 소설, 반찬 책은 삽화가 포함된 짧은 에세이나, 만화책 혹은 잡지로 한다. 참, 밥을 잘 먹으려면 수저나 젓가락도 필요하지. 단어 메모장과 필사 노트, 볼펜을 책상에 올리면 책상 차리기 끝. 요즘의 메인 요리는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제법 안온한 날들’, 반찬은 마스다 미리의 ‘행복은 이어달리기’와 요시타케 신스케의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이다. 때로 반찬이 필요 없는 제육김치덮밥 같은 책을 만날 때면 무척 반갑기도 하다. 최근에 만난 덮밥은 푸드 에디터 손기은의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다. 


P.S 내가 책을 읽는 이 방법에 ‘금붕어의 독서법’이라 이름 붙였다. 우리는 금붕어에 대한 오해로 ‘금붕어의 기억력은 3초, 금붕어는 기억력과 집중력이 안 좋은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종종 ‘금붕어 아냐?’라고 말하곤 하는 것처럼, 집중력이 좋지 않은 내가 택한 독서법에도 재미를 위해 이렇게 이름 붙여 보았다. 사실은 집중력이 8초인 인간에 비해 금붕어의 집중력은 9초, 기억력은 최소 3개월이라고 한다. 금붕어의 집중력은 인간보다도 높은 것이었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5일 차 _ 금붕어의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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