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은 |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지난겨울, 책 발전소에 갔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평소 관심 있던 출판사 ‘드렁큰 에디터’에서 새롭게 출간한 책이었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다루는 시리즈 에세이로, 물욕, 출세욕, 음주욕, 공간욕에 이어 5번째로 발행된 이 책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에선 ‘식욕’을 다루었다.
책날개를 펼쳐 저자 소개를 봤다. ‘11년간 음식과 술을 담당한 피처 에디터의 먹고 마시는 생활에 대한 이야기? 재밌는데?’ 이어서 플립북 보듯 빠르게 속 내용을 훑어보곤 곧바로 계산대로 향했다.
먹는 이야기에 흥미 없는 사람은 많지 않을 터. 나 역시 음식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가 먹고 마신 이야기를 보며 ‘그래 맞아, 나도 그 맛 알지. 그럴 때가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여가며 공감했다가, 에디터로서 일에 대한 그녀의 독기와 열정이 가득한 일 이야기를 보며 ‘에디터라면 이래야 하는구나’ 하고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잘 먹고, 잘 쓰기 위해 2년간 주말마다 ‘르 꼬르동 블루 아카데미’를 다녔다는 부분에서.
그는 이 책에서 음식을 통해 일과 사랑, 가족,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음식 관련한 숱한 경험이 있고, 먹고 마시는 일에 일가견 있는 이 답게 특유의 상황 묘사력, 맛 표현력으로 이야기를 맛깔나게 차려냈다. 어느 단락에서는 위스키가 엄청나게 땡겼다가, 어느 단락에선 마치 내가 미쉐린 레스토랑의 정신없는 주방 안에서 달큰한 기름 냄새, 고소한 불 냄새와 함께 버무려져 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또 어느 부분에선 내 입안에 사케와 오일 파스타가 마구 섞여 뒹구는 듯했다.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일지라도, 저자 특유의 비유법 덕분에 단번에 이해되었다. 특히 음식의 특성에 빗댄 비유법이 참 신선하고 재밌었다. 그런 비유와 표현이 보일 때마다 나는 신나게 밑줄을 그었다. 한 주제로 잔잔하지만 힘 있게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주제에 어울리는 재밌는 표현법까지, 내가 현재 발행 중인 매거진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8년째 동거 중> 콘텐츠를 구상하는 일에도 많은 부분 참고가 되었다.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와 함께한 며칠 밤 동안, 난 매일 같이 꼬르륵 거리는 배를 붙잡고 단침을 삼켰다. 다음날 식단을 미리 구상하며 맛있는 기대를 안고 잠들었다. 유익하고, 맛깔스러운 에세이였다.
밑줄 그은 문장
“태어나자마자 눈 앞에 보이는 고양이를 엄마라고 믿는 병아리가 된 것마냥 나는 자연스럽게 맥캘란에 빠져들었다.”
“- 지금도 그런 순간이 탄산처럼 여기저기서 터진다.”
“식습관 조절을 물론이고 PT까지 열심히 받은 친구는 ‘그럼 말짱 도루묵’ 이라며, 알이 꽉 찬 도루묵처럼 입술을 두툼하게 내밀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지만 술 한 잔의 즐거움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 작은 창문 하나뿐인 원룸인데도 나는 운동장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마구 날뛰었다.”
-손기은 .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中-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52일 차 _ 없던 입맛도 돋우는 ‘식욕’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