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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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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17. 2021

이비인후과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다

전 이명 때문에 왔는데요?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불현듯 귓속 깊이 찌릿한 통증과 함께 ‘화이트 아웃’이 찾아온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유독 선명한 것이 하나 있다면, 시잉 쉬잉— 머릿속의 혈액이 빠르게 돌아가는 소리. 몸에 어떤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고, 기립성 저혈압과 이명을 함께 지니고 사는 탓이다.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내가 갑자기 쓰러지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들어, 주변 사람에게 말한다. 그럴 때면 모두 하나 같이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을 한다.


전쟁 영화에서 폭탄이 터진 직후 삐—— 소리만이 사운드를 채우고, 청각이 소실된 극 중 인물들이 양쪽 귀를 붙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흐릿한 시야 속을 휘청 휘청 걸어가는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연출한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거다. 폭탄을 맞아본 적은 없지만 앞서 말한 내 상황을 굳이 비유한다면 이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귀가 찌릿한 통증까지 일상적으로 나타났다. 잠들기 전의 조용한 새벽이나, 조용한 공간에 있을 때면 이명도 더 심해졌다. 귀 속에서 작은 삐— 소리 같은 것이 계속 들렸다. 옆 동네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평일 오후 5시에 방문한 이비인후과는 무척 조용했다. 침을 삼키는 소리도 들릴 것 같았다. 기다란 소파 가운데에 멀뚱멀뚱 앉아 3분 정도 기다리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김선영 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진료실로 들어가자, 플래시가 3개쯤 요란하게 달린 머리띠를 쓴, 피곤한 듯 보이지만 또렷한 눈빛을 한 의사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그래요, 어디가 불편하죠?”


나는 귀의 찌릿한 통증이 시작된 시기, 이명이 시작된 시기, 어떤 소리가 어떤 크기 정도로 들리는지, 주로 어떤 상황에 심해지는지 등을 말했다. 말을 하면서도, 그의 어디를 봐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머리 가운데에 달린 3단 플래시가 무척 신기했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본 내 동공은 일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을 거다.


“음.. 일단 청력 검사 먼저 하고 봅시다. 이따 다시 봐요-!”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진료실에서 다섯 발자국 거리에 있는 청력검사실로 옮겨졌다. 그곳엔 코인 노래방 같은 박스가 하나 있었다. 나는 곧 그 안으로 격리되었다. 검사실 선생님은 내 머리에 헤드셋을 끼우고, 손에는 스틱을 하나 쥐어주었다. 헤드셋에서 소리가 들리면 그것을 누르라고 말하곤 박스 문을 닫았다.


투명한 유리창 사이로 그가 보였다. 그는 어떤 기계 같은 것을 능숙하게 만졌다. 귀에서  삐—— 삐— 삐-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들릴 때마다 손에 들린 것을 눌렀다.


이 박스에서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너무 더웠다. 헥헥거리며 내가 뱉어낸 이산화탄소가 마스크를 뚫고 나가 박스 안을 채웠다. 격해진 내 숨소리 때문에 헤드셋에서 나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듣기 평가를 하는 수험생처럼, 이마에 인상을 팍 쓰고 숨을 참았다. 숨을 참자 숨이 가빠져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자 심장박동 소리가 귓전에 크게 울렸다. 헤드셋 소리가 더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다른 생각이 나 웃겼다. 내가 이 듣기 평가의 답을 제대로 맞히지 않으면, 머리로 쟁반이 팅’ 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검사실 선생님이 박스 문을 다시 열었다. 내 관자놀이와 귀 뒤쪽에도 딱딱하고 작은 헤드셋을 끼웠다. 이번엔 내가 듣는 이명 소리를 함께 찾아볼 거라 했다.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베이스로 깔리고, 그 속에서 삐 소리가 계속 들렸다. 소리의 높이와 느낌이 모두 달랐다. 삐 소리를 하도 들으니, 내가 평소에 듣던 소리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소리를 찾을 때까지, 비슷한 듯 다른 소리들을 계속 들려주며 어떤 것이 좀 더 비슷하냐 물었다.


대략 10분 간의 듣기 평가를 마치고, 나는 다시 진료실로 옮겨졌다.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로 내 청력 검사 결과를 보고 있었다. 청각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명이 있을 때, 귀만 아파요? 두통도 있을 때가 있나요?”


“네, 편두통은 일상적으로 있어요. 큰 소리를 지속적으로 듣거나, 신경 쓰는 일이 많을 땐 심해지고요.”


“원래 좀 예민한 편이죠?”

“예.”

숨도 안 쉬고 대답했다.


“편두통이 있을 땐 어떻게 아파요? 머리 어느 쪽이 아프죠?”


“보통 왼쪽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기 시작해서 머리 전체가 아파져요.”


“그럼,, 그럴 때 빛이라던가 소리 라던가, 어떤 게 가장 자극이 돼요?”


“냄새랑 소리요. 싫어하는 냄새를 맡거나 큰 소리가 지속되면 두통이 훨씬 심해져요. 심장박동에 맞춰서 머리도 같이 쿵쿵쿵 흔들리고요.”


대답을 하면서도 ‘난 이명 때문에 왔는데 왜 자꾸 편두통에 대해 묻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흔들리는 내 동공을 보았는지, 이렇게 말했다.


“음, 요즘엔 이명도 치료가 가능해요. 발병 시점으로부터 6개월 이내의 급성 이명과 1년 이상의 만성 이명으로 나눠서요. 그런데 지금 환자분은 이명보단 편두통 치료가 먼저 필요해요. 편두통이 있고,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으면 신경통 때문에 귀가 아픈 걸 수 있어요. 평소에 어지럽진 않아요?”


“아, 제가 원래 기립성 저혈압이에요. 어지러움은 일상적으로 있어요.”


“가만히 있을 땐 괜찮나요?”


“네. 가끔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어지러울 때가 있긴 해요. 아주 간혹!”




귀에서부터 시작한 나의 통증 찾기는 머리, 혈액 순환, 불면증까지 갔다. 내가 지닌 자질구레한 모든 통증을 이야기해야만 했다. 나를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선생님들이 ‘뭐야, 이 환자 그냥 예민 덩어리 구만, 그래서 아픈 거구만 뭐’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여기는 병원이다. 모두가 내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세세하게 말을 건 것뿐이었다.


소리에 예민한 나는 자다가도 조금만 큰 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라 깬다. 때문에 수면의 질이 안 좋고, 피곤한 상태에서도 잠을 잘 자지 못한다. 그래서 늘 이어 플러그를 끼고 잔다. 그는 이어 플러그를 끼면 이명이 더 심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없으면 잠을 못 자니, 잠이 잘 오는 약을 함께 넣어주겠다고 했다.


찬 바람을 조금만 맞으면 곧바로 목감기에 걸려버리고, 조금만 신경 쓰는 일이 있으면 편두통이 찾아오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곧바로 배가 아파지는 예민한 몸으로 살다 보면 쉽게 우울해질 때가 많았다. 친구들과의 여행, 오랜만의 데이트에서도 늘 나약한 육신을 생각하며 ‘오늘 술을 먹으면 앞으로 며칠 동안 또 고생하겠지?’, ‘오늘은 손잡고 하염없이 걷고 싶은데 바람이 좀 차네.. 또 목이 아파지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느라 머릿속이 늘 바빴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이유는 늘 ‘스트레스’ 때문이라 했다. 선생님, 전 아파서 스트레스받는걸요···.


이명 때문에 찾은 그곳에선, 내 모든 통증의 원인이 예민한 기질 때문임을 역시 알면서도, 여느 병원처럼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말을 굳이 하진 않았다.


뚜렷한 병명이 있거나, 당장의 급한 치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어도,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차분히 함께 이야기하며, ‘이명이 들리는 건 내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니, 일단 이명에 집중하지 말고 그 상황을 피하라고’ 했다. 티비를 틀어놓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거나 하며 이명이 느껴지지 않도록 다른 소리를 들으라고. 잠이 잘 오지 않으면 잠 잘 드는 약을 먹어도 괜찮다고, 처방해주겠다고.


예민한 성격도, 스트레스를 잘 받는 기질도 스스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 때문에 감각 이상이 생기는 것 역시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위로가 되었다. 약국에 들러 처방된 약을 받고 나오자, 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한 시간짜리 심리 상담을 받은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녁을 먹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봉지를 집었다. 약을 먹자마자 정신이 몽롱했다. 잠 잘 오는 약이 있다더니, 내가 이렇게 약발이 잘 받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플라시보 효과인가? 쏟아지는 잠을 피하려 눈을 벅벅 비볐다. 아직 할 일이 남아서였다.


약 기운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시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여전히 귀에서 삐- 하고 이명이 들렸다. 잔잔한 노래를 틀어두고 잠을 청했다. 여전히 새벽 내내 몇 번을 뒤척였지만 다음날 아침잠에서 깨자, 이불의 감촉이 유난히 보드랍고, 침대가 유독 푹신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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