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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20. 2021

낯선 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삶

2화. 내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자라야 그의 마음도 담을 수가 있을까

바로 전 글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따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전 글을 먼저 읽고 오시길 추천해요 :)


내게는 고질적인 기질이 하나 있다. 남을 100% 믿지 않는 . 엄청 믿었던 누군가에게 큰돈을 사기당하거나, 배신을 당한 적도 없는데  이렇게 사람을 믿지 못할까. 어차피 떼일 돈도 없는걸. 잔정이 많은  비해 마음이 좁은 탓이었다. 겉으론 티가  나지 않지만  사물과 사람에게 쉽게 정이 든다. 어쩌다 내가 정이  상대가 나의 마음과는 크기가 같지 않다고 느낄 때면 혼자서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머릿속으론  ‘ 얘한텐 내가 85  같네, 그럼 나도 85 정도만 줘야지.’ 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셈을 했다.


연인에게도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  100% 믿지 않아. 항상 10% 정도는 남겨둬.  의심한다는  아니고, 나중에 만약 내가 상처 받게  일이 있을  그때  마음 아프려고..” 듣는 이에겐 ‘? 이런 말을 굳이  하는 거지?’하는 생각만 들게  만한 헛소리를 기어코 내뱉는 나와 8년째, 그것도 8 동안  마음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내며 함께한 그가 바로 부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조금이라도 상처 받지 않기 위해 타인을 온전히 믿지 않았던 거다. 누군가는 이런 내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본  없어서 그런  아냐?’   있겠지만,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나도 안다.


타인에게 무언갈 주는 것 역시 어색하기만 했다. 때문에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을 볼 때면, 그의 마음도 의심했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도와줄 수가 있어? 말로써 행복을 빌어주는 건 돈이나 힘이 들지 않아 좀 더 쉬울 수 있다 해도 그게 과연 진심일까?’ 그것은 위선이며, 어쩌면 본인도 모르게 본인의 속마음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쁜 마음’이라는 포장지로 감싸 내보인 것일 뿐, 내용물은 겉모습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내게 행복을 빌어주는 스님의 눈빛에서 느꼈다. 말을 툭 던지고 부끄러운 미소를 보이며 어색하게 뒤돌아서는 어른의 모습을 보고 배웠다. 예쁜 말도, 상대의 마음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예뻐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세상의 예쁜 말과 이유 없는 배려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나의 마음의 그릇이 너무도 작았음을.


간장 종지만 한 마음을 갖고 살던 나는 내 그릇에 흘러넘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마음을 얻으면서도 그릇을 넓힐 생각은커녕, 그들의 마음을 내 작은 저울에 맞추기 위해 맞지도 않는 셈을 했던 거다. 감당하지 못할 양을 담아 고장나버린 저울의 추를 보고, 내 작은 저울에 눈대중으로 나마 기준을 맞춰 ‘얘는 90, 쟤는 70’ 하면서, 작은 마음에 상처가 날까 봐···. 작은 그릇에 한번 흠집이 나면 치명적이지만, 큰 그릇은 작은 흠집 몇 번 난다고 해서 그릇이 깨져버리거나 못 쓰게 될 일은 없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의 스님처럼 그도 세상만사를 다 겪고 득도한 자만의 차분한 표정으로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면, 나도 이런 마음을 깨닫지 못했을 수 있다. 누군가의 평안과 행복을 빌어주는 게 그 누구보다 가장 익숙할 것만 같은 사람에게서, 오히려 마음을 드러내고 부끄러워하는 일곱 살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그 누구라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어린아이 같은 스님의 모습 덕분에 그의 마음이 의심 많은 내게도 온전히 닿았다.


처음 본 내게 “사는 동안 행복한 일만 있길 바라요.” 라 말한 스님은, 내게 한동안 그 말을 떠올리며 느낄 행복을 선물한 것은 물론, 내 마음의 그릇까지 넓혀 주었다.


덕분에 나는 이전엔 내 그릇에서 흘러넘쳐 버리던 누군가의 소중한 마음들을 그릇에 잘 담아, 그것을 양분으로 먹고 자랄 수 있게 되었다. 허나 아무 조건 없이 내게 행복을 빌어준 그의 마음은 넓어진 내 그릇에 담기에도 너무나 큰 마음이었다. 내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더 자라야 그의 마음도 담을 수가 있을까?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20일 차 _ 낯선 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삶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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