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를 위한 요리
퇴사를 한 후, 평일이면 약속 없이 집에 눌러붙어 있게 되면서 밥도 거의 집밥으로 해결한다. 그러면서 우리 집 냉장고를 살피고, 엄마의 저녁상도 눈에 보인다. 냉장고에 들어간 지 이틀 된 생선구이와 무친 지 오래되었는데 아무도 먹지 않아 쉬어 버리기 직전인 취나물 무침, 쌈추와 고추장, 지은 지 오래된 현미흑미밥 반 공기.
엄마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아빠의 도시락을 싸고 가족들이 낮에 먹을 따뜻한 밥과 반찬을 지어 놓는다. 계란말이, 유부초밥이라도 해 놓고 출근해야 마음이 놓인단다. 그렇게 매일을 남에 밥 챙기기에 열심인 본인의 밥은 정작 남은 국, 남은 반찬인 거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밥을 제대로 챙겨 먹기란 힘들뿐더러 퇴근 시간이 늦은 엄마는 대부분 저녁을 혼자 때우듯 먹는다.
엄마의 저녁상을 제대로 본 후론 ‘난 그동안 왜 엄마의 밥을 무시했을까?’ 하고 마음이 갑갑해졌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나만 보던 나완 달리 엄만 나보다 적어도 두 배는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가족들을 돌본다. ‘엄마가 가진 마음의 그릇이 냉면 그릇이라면 내 마음의 그릇은 간장 종지도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요즘은 삼일에 하루 정도는 직접 엄마를 위해 요리를 한다. 주로 하는 요리는 샤브샤브 혹은 김치 두루치기, 소불고기 비빔밥, 소고기 콩나물밥. 최근에는 무수분 수육도 만들어봤다. 금색 냄비가 까만색이 되도록 홀랑 태워먹었지만 엄마가 수육을 맛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을 정도로 맛은 꽤 성공적이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의 건강을 위해,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인 나를 위해 간은 되도록 슴슴하게 한다. 어차피 레시피에 나온 간대로 안 하기 레시피도 잘 보지 않는다. 모든 음식에 통용되는 레시피가 하나 있다면 그저 ‘슴슴’ 일뿐이다.
음식을 정하고 나면 엄마에게 전화한다. 야채 가게에서 일하는 엄마는 식재료 공급원이기도 하다.
“엄마~ 샤브샤브랑 두루치기 중에 뭐가 더 땡겨?”
“음, 샤브샤브?”
“오, 나도 사실 샤브샤브 먹고 싶었어.”
“그럼 뭐 필요하지? 느타리랑 만가닥버섯 좀 가져갈까?”
“좋지~”
엄마가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삼촌~ 느타리랑 만가닥 좀 남았어?’
‘두 개씩 챙겨 놓을게, 이모! 또 둘째가 요리해주나 봐?’
‘응~~’
엄마가 같이 일하는 삼촌들에게 ‘딸이 요리를 해준다’며 자랑을 좀 했나 보다. 귀엽다.
내가 슴슴한 요리들로 저녁상을 차리면 엄마는 슬그머니 냉장고로 간다. 빨간 양념에 푹 절여진 시장표 겉절이와 본인이 담은 깻잎장아찌, 고추장을 꺼낸다. 가끔은 엄마 입맛에 맞춰 고춧가루를 팍팍 넣은 두루치기를 만들기도 한다.
오늘은 코코넛 아미노스로 슴슴하게 간을 한 소불고기와 소고기 콩나물밥을 했다. 소고기 콩나물밥에 곁들일 양념장에도 물을 좀 넣어 짜지 않게 만들었다. 역시 엄마는 슴슴한 맛을 참지 못하고 밥에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었다. 이렇게 입맛에 안 맞는 요리라도, 간이 하나도 안 맞는 어설픈 요리라도, 딸이 밥상을 차려준다는 것만으로 기쁜지, 엄마는 늘 내가 차린 밥상을 사진으로 남겨둔다.
그동안 한 요리 몇 가지를 살짝 소개한다.
내가 고작 엄마를 위해 요리를 하는 것만으로 엄마의 마음의 그릇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 적어도 엄마의 배를 조금이라도 따땃하게 채웠다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차린 음식으로 엄마와 저녁을 함께 하면서, 부른 배를 통통 치며 TV를 보곤 깔깔 웃기도, 각자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조잘조잘 떠드는 재미도 쏠쏠하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47일 차 _ 엄마를 위한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