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유럽 일주 _ 2화
바로 전 글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따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전 글을 먼저 읽고 오시길 추천해요 :)
두 번째는 감정의 변화였다.
여행의 시작에선 가장 익숙한 존재였던 내가, 여행이 끝나갈수록 낯설어졌다. 매일 밤 일기를 쓰며 생각했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시커먼 옷을 힘은 홈리스가 골목마다 서서 구걸을 하고 있는 베네치아의 밤길을 자정이 넘도록 홀로 쏘다니는 대범함을 꺼냈다가, 작은 호텔방에 놓인 커다란 나무 장롱에서 꼭 무언가 튀어나올 것처럼 무서워 장롱 문을 열었다 닫았다, 장롱 아래 틈을 확인했다, 결국 노트북으로 잔잔한 한국 예능을 틀어놓고 핸드폰 후레시도 켜놓고서야 잠을 청하는 겁쟁이다운 면모를 꺼내기도 했다.
기차에서 내 자리에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앉아 비켜주지 않는 히피족을 매서운 눈으로 쏘아붙여 쫓아내고, 무작정 팔찌 채우기 수법으로 관광객을 약탈하는 190cm의 건장한 흑인 남자를 단번에 떼어내는 단호함과, 내게 사기를 치려는 유심침 판매원에게 한국말로 쌍욕을 내뱉는 성질머리를 꺼내기도, 해가 완전히 떨어진 저녁, 숙소 빌라 대문에서 누군가 뒤따라 들어오면 갑자기 무서움이 밀려와 온 힘을 다해 계단을 뛰어올라 집에 들어가며 또다시 겁쟁이다운 면모를 꺼내기도 했다. 낮에는 온 동네를 방실 방실 쏘다니며 마냥 행복하기만 한 일과를 보낸 후, 저녁엔 숙소에서 짐 정리를 하다가 갑자기 물 밀듯 밀려온 외로움에 주저앉아 엉엉 운 적도 더러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내가 살면서 내게 가장 솔직했던 때라는 생각이 든다. 울고 싶으면 울었다. 화를 내고 싶으면 화를 냈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행동했다. 고작 3개월 배운 짧은 중국어로, 숙소에서 만난 중국인에게 신나게 말을 걸었다. 기차에서 만난 러시안 부부와 보드카를 나눠 마시며 화제를 계속 바꿔가며 두 시간 내내 콩글리쉬와 잉글리시, 러시안을 섞어가며 대화를 했다. 바디랭귀지와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 한국 정세까지 다뤘다.
익숙한 곳을 떠나 먹는 것, 자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눈에 보이는 것 모두 낯설기만 한 타국의 땅에서야 나는 ‘나한테 이런 면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순간순간에 솔직할 수 있었다. 이전에 난 단 두 가지 색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그곳에서 적어도 5가지 색을 지닌 것 같았다.
그곳에선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내가 어떤 것을 해도 나를 말리거나 이상하게 볼 이는 없었다.
제 마음대로 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인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내가 이걸 정말 하고 싶은지, 왜 해야만 하는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타인의 시선을 염두에 두곤 한다. 그럴 때마다 지난 유럽 여행을 떠올린다.
그때의 나처럼 솔직해져라.
이곳 역시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타국이라 생각하고 우선 나를 보자.
하고 내게 말을 한다.
계절의 변화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복기할 수 있다는 점은 커다란 행운 같다. 그때의 나에게 ‘잘 떠났다’고 말해주고 싶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55일 차 _ 내게 가장 솔직했던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