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유럽 일주 _ 1화
선선한 바람을 타고 날리며 봄의 시작을 알리던 벚꽃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해가 쨍한 낮엔 곧 다가올 여름을 상상하다가 해가 숨은 저녁이면 ‘아직 선선하네. 역시 봄이구나.’ 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렇게 적응할 새 없이 낮밤으로 온도가 확확 바뀌어버리는 봄이면, 4년 전 타국의 땅에 서 있던 내가 자꾸만 생생하다.
4년 전 4월, 홀로 체코 - 이탈리아 - 스위스를 21일간 여행했다. 낯선 공기, 낯선 소리, 낯선 온도 속에서 익숙한 거라고 내 몸 하나뿐이었다. 혼자 여행을 가본 적 없을뿐더러 평생 언니와 한 방을 써온 지라 혼자 자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고(하물며 무서워하기 까지), 생활 영어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모든 게 낯설기만 한 땅에 제 스스로 발을 들였다. 그렇다한들 또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입에 맞지 않는 소금기 가득하고 기름진 음식으로 매일 두 끼를 해결하는 일 모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갈 즈음에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은 게 딱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바로 날씨였다. 프라하에선 니트에 겨울 잠바를 입고 목도리까지 두르고 다녀도 감기에 걸릴 정도로 센 바람과 한기가 돌았고, 로마에선 광장에서 한 시간만 돌아다녀도 두피와 목덜미가 빨갛게 익을 정도로 센 직사광선이 내렸다. 스위스에선 온 사방에 두툼한 눈이 쌓여있고, 초록 새싹과 노랗고 붉은 꽃이 하얀 눈 틈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21일간 그렇게 타국의 사계절을 만났다.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25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는 다른 풍경, 다른 느낌이었다.
날씨는 한 도시에서 하루 만에도 변화무쌍했다. 아침에 니트에 겨울 잠바를 입은 채 숙소를 나서며 ‘좀 쌀쌀한데? 옷 하나 더 챙겨 올까?’ 하고 고민한 게 무색할 정도로 정오엔 햇빛이 살을 태울 기세로 쏟아져내렸다. 햇빛이 뜨거운데 바람은 또 차서 겉옷을 손에 들고 얼굴은 구겨진 깡통처럼 마구 찡그린 채 연신 코를 훌쩍거렸다. 초저녁엔 겉옷을 목까지 단단히 잠그고 오들오들 떨며 번데기마냥 온몸을 웅크린 채 숙소로 뛰어갔다. 하루 걸러 감기, 더위에 시달려가면서도 ‘봄에 왔는데 겨울도 여름도 다 만나고 가네? 애매한 봄에 오길 잘했어’ 하고 뿌듯해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54일 차 _ 단 21일 만에 타국의 사계절을 만나는 행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