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더 윈터 원더랜드

by 물망초발심

나는 겨울이 좋다.
나는 미시간의 겨울이 좋다.
나는 혹독한 이 미시간의 겨울이 좋다.
10년이 넘도록 되뇌는 주문, 나의 겨울나기 훈련법.

예년과는 다르게 유난히 따뜻했던 12월, 방심한 그 사이, 새해가 되자마자 무섭게 눈이 쏟아진다. 추위가 불어닥친다.

10월이면 첫눈이 내리는 곳. 영하 20도 밑으로 떨어지는 한파. 이곳에서 처음 겨울을 나던 그때에는 눈에 띄는 모든 게 이국적이다 못해 괴이했다. 폭설로 뒤덮여 이미 그 경계를 잃은 차선과 옥수수밭은 눈에 점령당한 불모지. 오밀조밀 작은 집들이 마을 어귀에 다다랐음을 알릴 즈음이면 집채만 한 눈사람이 양동이 모자를 쓰고, 정체불명의 눈코입을 끼워 넣은 채, 도로의 파수꾼처럼 우뚝 서있다. 지붕 처마 밑으로는 아이 키만 한 고드름이 삐죽삐죽, 겨울의 추위를 먹고 자라나는 얼음 식물의 뿌리 같달까. 점점 길어져 땅을 뚫을 것만 같던 그 고드름이, 점점 커져서는 전신줄을 넘길 것만 같던 눈사람이 미시간의 겨울을 단박에 실감케 한다.

큰 아이가 10년도 전에 다녔던 프리스쿨 교장 선생님은 이른 아침, 커다란 눈 삽을 좌우로 빗질하듯 눈을 쓸어 내며 아이들의 등굣길을 만들고 계셨다. 이내 곧 다시 눈으로 뒤덮이지만. 그날은 간밤에 다녀간 눈폭풍에도 아랑곳없이 등교를 하는 아이들을 맞이하고 계셨고 학교에 아시안이라곤 딱 하나, 내 아들을 보시곤 "웰컴 투 더 윈터 원더랜드" 산타처럼 웃어 보이셨지.

아이들은 제 키만 한, 등짝을 덮고도 남을 백팩을 어깨에 메고 부모의 차에서 내린다. 몇몇은 백팩도 모자라 큼지막한 여분의 가방을 품에 안고 뒤뚱뒤뚱 교실을 향해 간다. 눈이 제법 쌓인 날이면 아이들은 스노 팬츠와 방수 부츠, 장갑과 모자는 반드시 챙겨 가야 했다. 스스로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바지 위에 두꺼운 바지를 덧입고, 두툼한 점퍼를 입고 난 후에야 하얀 바깥세상에 뛰어들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윈터 원더랜드는 준비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제설 작업으로 주변에 밀려있는 커다란 눈더미는 아이들의 미끄럼틀이자, 썰매장이다. 그 꼭대기에 올라 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를 쫓아 너도나도 정상을 향해 덤비는 모양새가 어찌나 귀엽던지. 맞다, 그 맘 때는 하교 후, 매일같이 흥건히 젖은 장갑과 부츠, 모자를 항상 벽난로 앞에 줄지어 늘어놓고 말리곤 했었지.

학교에서만이 아니다. 눈은 정말이지 아이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아니, 저리 사방에 널린 눈을 그저 녹게 내버려 둘 아이들이 아니다. 그야말로 겨울 한정판 놀이터였으니까. 동네 물탱크가 자리한 언덕은 24시간 개방된 눈썰매장. 아이들은 가파른 언덕을 헐떡이며 열심히 걸어 올라가 이내 보상이라도 받아내려는 듯 엄청난 가속도를 붙이며 쏜살같이 내려온다. 주인을 쫓아온 개들도 신이 나 눈밭을 구르고 급기야 스노보드를 가지고 와서는 스릴을 즐기는 틴에이저 녀석들도 있더랬다.


막연히 두렵고 낯선 하얀 세상은 무던한 내 마음도 동하게 할 때가 있다. 한바탕 눈폭풍이 지나가고 도무지 꿈쩍도 않을 것 같던 차고 문이 열리며 감당할 수 없다는 듯 어둠 뒤로 쏟아져 들어오던 눈부신 빛이, 그리고 이내 펼쳐진 눈사막 같던 그 풍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하얀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은 순간 같달까. 하지만 순백의 장관은 10년의 세월을 거쳐 여름이면 매 주 깎아야 하는 잔디처럼, 가을이면 치우기 무섭게 떨어지는 낙엽처럼 계절별 숙제가 되었다. 수시로 밖을 내다보며 적당한 타이밍에 눈을 치우고, 녹은 눈이 얼어붙은 날에는 염화칼슘을 뿌려둔다. 밤새 자고 나면 어른 무릎을 덮을 만큼 쌓인 눈은 그야말로 골칫거리다. 제설기로 밀자니 이미 슬러시가 된 눈은 너무 무거워 쓸데없는 일이었고, 삽으로 밀어내자니 작업 전부터 이미 허리가 욱신거리는 것만 같다. 그치만 애증의 관계라면 이런 게 아닐까. 눈처럼 쌓인 겨우내 시간들은 순탄치 않던 미시간 시골 속 삶에 스며들게 했던 자양분이었고, 안식처였다.

낙엽이 지는 나무가 눈에 띄게 왜소해질 무렵, 눈을 기다린다. 긴 밤, 소리 없이 찾아든 손님은 조용히, 켜켜이 타향살이에 치진 내 마음의 공허 위에도 살포시 내려앉는다.

나는 눈이 좋다.
미시간의 겨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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