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큐피드, 초코파이를 쏘다

by 물망초발심

달달한 초콜릿과 캔디, 화사한 꽃다발이 즐비한 밸런타인. 사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연말연시부터 미국 마트 곳곳에서는 밸런타인을 위한 상품이 빠르게 진열되기 시작한다.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이 진짜 미국 땅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초콜릿과 캔디들은 누군가의 연인에게, 혹은 친구에게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미국에 오고 난 이듬해, 쌩초급 영어에서 탈피하고자 찾아갔던 무료 영어 수업에서 연세 지긋하신 선생님께서는 제자의 고국 이야기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계셨다. 특히 남자가 여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밸런타인데이와 반대로 여자가 남자에게 사탕을 주는 화이트 데이로 나뉘는 독특한 한국 문화에 굉장히 놀라워하셨지. "화이트데이라니, 그건 대체 무슨 날이니?" 미국인에게는 생소한 그날에 대해 설명하려 짧은 영어로 얼마나 고군분투했던지…


2월 14일이면 아이들은 양손 가득 초콜릿과 선물을 안고 등교한다. 게다가 어린 초등학생들은 자신이 만든 밸런타인 박스까지 챙겨야 했다. 그리고 가장 돋보이는 밸런타인 박스의 주인공은 그날의 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밸런타인 캔디나 초콜릿을 친구들과 주고받을 때 각자 만들어온 밸런타인 박스에 넣어준다)

아이와 함께 만든 밸런타인 박스, 큐피드의 필수품


이미 내 키를 훌쩍 넘긴 큰 아이는 친구에게 초콜릿 좀 나눠줘라 하면 콧방귀도 안 뀔 터지만 6학년, 둘째는 아직까지 학교에서 열리는 밸런타인 파티에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더 이상 밸런타인 박스를 만들어가지 않는 고학년이 되었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의 이목을 끌고자 며칠을 고민하고 만들던 노고의 산물, 더불어 수발들던 이 어미도 꽤나 힘들었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밸런타인 박스 안에는 아이들이 나누는 온갖 초콜릿과 캔디들이 가득해 그 후 며칠 동안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였다.


올 해도 어김없이 나는 밸런타인 캔디를 준비해야 했다. 선생님이 보내신 이메일에는 간략한 파티 일정과 도네이션 물품 리스트, 그리고 반 인원에 맞춰 캔디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둔 어느 날, 이웃 동네에 새로 생긴 한인마트가 문을 열었다기에 구경삼아 장을 보러 갔더랬다. 생각보다 큰 규모였지만 한동안 내린 폭설 탓인지 물건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휑한 선반이 많았고, 의외로 비싼 가격에 낙심해 돌아서려는데 오픈 기념으로 초코파이가 크게 세일을 하는 거다. '어? 이거 밸런타인데이에 딱인데???!!!' 지금껏 집에 놀러 온 아이 친구들에게 간식으로 주었던 초코파이는 불패 아이템이었다. 처음 먹어본 아이들은 그 맛에 감탄하며 이게 무엇인지 정체를 묻곤 했으니까. 나는 초코파이 상자가 산처럼 쌓인 매대에서 다섯 박스를 집어 들었다.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착한 가격까지… 역시 정을 나누기에 이만한 게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하교 후 아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초코파이의 인기를 자신의 무용담처럼 들려준다. "엄마, 엄마! 초코파이 대~박이었어요!" 초코파이를 처음 먹어본 같은 반, 남자아이는 대체 이걸 어디에서 살 수 있냐고 물었고, 한 아이는 친구 것을 몰래 가져가는 시늉까지 하며 탐을 냈다고. 그야말로 자기 반에서 대박을 쳤다는 말을 연거푸 해댔다. 1976년에 탄생한, 한국에서는 오래되어 인기가 시들한 초코 과자가 지금 이 미국 시골 마을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단지 문제는 초코파이, 그 이름이었다. 한 아이가 딸아이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근데 이게 왜 파이야? 케이크지?"


응?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제다. 사십 년을 넘게 먹고 자란 나는 초코파이가 왜 '케이크'가 아닌 '파이'인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동그란 모양 탓일까? 케이크에선 볼 수 없던 생소한 마시멜로 때문인가? 순간 떠오른 이유들이 명쾌한 답이 되지는 못했다. 그저 내 인생 과자로써 내릴 수 있는 결론, 초코파이는… 그냥 초코파이인 거다. 파이면 어떻고 케이크면 어때? 가족과, 친구와 맛있게 나눌 수 있는 초코파이면 된 거지. 밸런타인에 우리는 초코파이를 나누었다. 정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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