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얼마 만에 들어본 호칭일까. 방송작가로 세상 문을 두드렸던 20대의 열정은 고사하고, 글에 대한 앙상한 애착만이 남은 40대 평범한 주부. 비록 선배들 수발들며 글은커녕, 밤새 쌓인 촬영 테이프, 프리뷰 하느라 잠을 설치던 막내 시절에도 사람들은 나를 작가라 불렀다. 하지만 작가라면 모름지기 글을 쓰는 사람임에도 허구한 날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들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마저 들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퇴근 없는, 주말 없는 불철주야 막내 노릇을 하던 내게 구성안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이내 VCR 원고를 담당하게 되었다. 마침내 나의 내레이션이 성우의 목소리를 빌려 전파를 탔을 때, 몇 번이고 그 원고를 소리 내어 읽었다. 진짜 작가가 된 것이다. 더는 부끄럽지 않은 진짜 작가말이다.
남편을 만나 두 아이의 엄마로, 외노자의 아내로 아무런 연고 없는 타국 깡시골에서 외로이 사는 내 삶의 시나리오는 단연코 그려본 적이 없다. "어쩌다 나는 여기, 이렇게 살고 있을까." 습관처럼 되뇌는 말. 매일 울었고, 매일 슬펐다. 어딜 가나 파란 눈빛의 적나라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고, 사방이 옥수수와 감자밭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미로에 갇혀 꾸역꾸역 하루를 이겨내기 벅찼다. 젖먹이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좀 나아지겠지, 두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 괜찮아지겠지, 커가는 아이들을 위안 삼으며 살아가던 내게, 희미하게나마 쥐고 있던 작가라는 이름 대신 경단녀라는 꼬릿표가 달렸다. 떼어낼 수 없는 내 인생의 마침표처럼.
묘하게도 힘들게 버티고 견뎌온 시간들은 그저 흐릿하게 상기될 뿐이다.
아이들은 자라 고학년이 되었고, 이직한 남편을 따라 우리는 작은 도시로 이사를 왔다. (동생은 아직도 시골이라 타박하지만) 매일이 낯선 하루하루에 부딪히며 살아온 지 십 년이 훌쩍 지나... 브런치를 알게 된 건 그즈음이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곳에서 글을 다시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애써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왠지 모를 동요가 일었다. 내가 다시 글이라니 가당키나 할까. 타다 남은 잿더미에서 그녀가 불쑥 꺼내 준 이 불씨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얼버무리고 돌아서던 그날, 두서없는 글을 써 내려갔다. 막막함에 덧없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별나지도, 재밌지도 않은 무미건조한 타국 시골 살이. 요즘은 유튜브만 들춰도, 인스타만 끄적여도 온갖 나라에서 다양한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 않나. 소심한 마음에 끄적였던 글들이 더욱 창피해졌다. 무뎌진 칼끝처럼 메마른 글 속에 알맹이라곤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미루고 미루다 어느 밤, 작정을 했던 거다. 내 삶을 돌이켜보는 순간, 마주하는 것이 후회뿐이면 어쩌지. 사소한 시작도, 작은 도전도 겁이 나 뒷걸음질 치는 지금을 언제고 후회할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글 곳곳에 독소로 얼룩진 자만을 거둬야 했다. 치장하고 과장하는 억지를 떼어내야 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인생에 새겨진 나의 기억을 찬찬히 읊조리는 것처럼. 적막한 고요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처럼. 시들어가던 의욕이 호기롭게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