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처럼 병원을 많이 다닌 해가 있었나?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몸이 변하기 마련이거늘, 그 흐름에 조금이라도 역행해보려는 의지가 사람을 자꾸 병원으로 데려간다.
가장 큰 컴플렉스이자 숙원사업이었던 치아 교정이 끝났다. 그깟 돈 몇 백만원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던게 몇 년이었는지, 올해는 꼭 하겠다고 마음먹고 올 초에 착용한 치아 교정 장치를 드디어 다음 주면 떼내게 된다. 유전 탓인지, 잘못된 습관 탓인지 앞으로 튀어나오고 옆으로 벌어지는 앞니 두 개를 고이 은퇴시키고 현대 치과의학의 총아를 설치했다.
연예인 레퍼런스가 많은 병원이어서 그런지 참으로 가지런하게도 치아를 맞춰주기는 했는데 어딘가 모르게 나답지 못한 인상이 가끔은 나도 어색하다. 나는 좀 삐뚤빼뚤 해야 나다운데 말이다. 50줄에 접어들어 가고 있으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는 좀 가지런하게 살아봐야겠다는 말도 안되는 다짐을 하며 치과 치료 종료.
타고나기를 워낙 동안으로 타고난데다 특별히 관리 안하는 피부 치고는 나쁘지는 않았는데, 몇 년전부터 얼굴에 뭔가 거뭇거뭇한 것이 한 두개씩 자리를 잡는다. 흔히 검버섯이라고 불리는 증상인데 자외선 노출과 노화가 원인이다. 이것도 몇년 전 병원을 가보니 '늙으면 생기는 것'이라는 비과학적 진단을 듣고는 내버려두다가 나의 욕구를 어떻게 알았는지 알고리즘이 자꾸 타임라인에 피부과 광고를 띄워주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가까운 피부과에 가 보니 완전 치료는 어렵다면서 피부 톤업 레이저로 조금 옅게 하는건 가능하다고 한다. 미심쩍은 마음에 강남의 피부과에 갔더니 역시 왜 강남을 대한민국 성형의 메카라고 하는지 알겠다. 일단 고객과 질환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완전히 없애지는 못해요‘가 아니라 ’없어질때까지 시술한다‘는거다. 비용이 좀 비싼 듯 하여 아직은 고민 중이지만 맑은 피부 고운 피부를 갖고 싶은 나의 니즈가 곧 나를 한강 이남으로 인도할 예정이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나이는 눈으로 먹는다. 일단 서서히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증상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질환의 이름조차 노안이다. 원래 근시가 있어서 안경으로 교정하는데도 가까운 물체가 잘 안보인지 한 두해 지나서 결국 안과를 찾았더니 진단은 심플하다. ’노안입니다‘. ‘어떻게 하죠?’라고 묻는 내게 의사는 쿨하게 '방법 없어요'라는 다섯 글자를 남긴다. 백내장인지 녹내장인지 있을 수도 있으니 검사나 한번 해보자면서 필요도 없는 과잉진료까지 얹었다. 다초점 렌즈 안경을 쓰라는데 아직은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내버려두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것도 강남으로 가져가볼까 하는 생각만 갖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몸 어딘가에 세균성 염증이 생겨서 항생제 처방을 받았더니 약이 독해서 그런지 위궤양이 생길 지경이다. 비뇨기과에도 가서 정관수술에 대해 진지한 상담도 받았다. 의사샘이 꽈추형처럼 친근하고 재미있는 분이었다. 병원이라는데를 이렇게 친근하게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년에도 더 친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