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 욱 Jun 11. 2021

당신의 점심값은 안녕하십니까

점심밥 불평등에 대한 단상


점심식사는 하셨습니까.. 저는 오늘 3,000원짜리 김밥을 한 줄 먹었습니다.. 볼 일이 있어서 서둘러 점심을 먹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몇 줄 적습니다.

저희 회사에는 월급 실수령액 기준으로 500만원대를 받는 사람과 200만원을 겨우 넘는 금액을 받는 직원들이 공존합니다. 회사에는 직급이라는게 있고 각자 능력만큼 급여를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500만원대를 받는 높은 분들이 얼마 전 점심값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는 방침을 내놨습니다. 전에는 회사 운영경비에서 조금 떼서 직원들의 점심 식비를 지원했는데 회사 돈으로 개인의 밥값을 내 줄수는 없다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사족도 덧붙였습니다.

구내식당이 없는 경우 광화문 일대 보통평범한 식당의 평균 점심값은 7천원~1만원 선입니다. 작년 여름에 나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평균 점심값은 전년 대비 2.5% 올라 6,260원으로 나타났습니다. 밥 먹고 마시는 커피값까지 계산해 그냥 1만원으로 잡고 20일 근무일로 계산하면 보통 직장인들은 점심식사에 월 20만원 정도 씁니다.

누군가에는 급여 실수령액의 4%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는 수입의 10%에 달하는 큰 돈입니다. 누구나 똑같이 먹는 점심밥이지만 개개인의 체감 비용은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점심값으로 월급의 10%를 지출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대부분 저소득층, 청년 취업자, 기업의 하위직급 종사자들일겁니다.

이들의 선택은 간단합니다. 총 수입이 적으니 식비도 줄일 수 밖에 없는거죠. 편의점 간식, 함바집, 인근 구내식당, 도시락 등 점심값을 줄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액 연봉자들이 점심 한 끼에 1~2만원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그리고 보통 높은 분들은 법인카드로 식사를 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 수입에서 차지하는 점심값의 비중은 더 낮을 겁니다. 이른바 점심값의 양극화, 계급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고 나니, 직장인 점심값의 지불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을 회사가 소유한다면 그 시간 안에 기본적인 식사권 역시 회사가 보장해 주는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주변에 이런 얘기를 해보니 중식 공영제, 중식 바우처, 직장인 무상 중식 제도 등을 만들어 보자고 합니다. 웃으면서 장난처럼 말하지만 노동현장에서 점심식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웃고 지나갈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잡코리아 설문조사를 보니 직장인 10명 가운데 8명이 점심때 밥을 안먹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하네요. 산책, 낮잠, 휴식, 운동 등 다양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자의적인 선택이 상당수일겁니다.


하지만 1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자신의 시급에 해당하는 1만원 가까이를 지출하며 점심 식사를 하느니 차라리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직장인은 없는지 한번 생각해볼 일입니다.

각급 학교 무상급식 때의 논란이 떠오릅니다. 부잣집 자식이나 가난한 집 자식이나 밥은 똑같이 먹이자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회사에 출근해서 똑같은 노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적어도 밥은 똑같이 먹고 다니자고 주장하면 너무 터무니 없을까요?


저는 기업이나 정부가 직장인들의 점심값을 지원하는 쪽이 전 국민 기본소득보다는 훨씬 더 가치 있어보입니다. 조만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직장인 무상 중식’ 제도를주장해보려고 합니다. 재원이나 방식에 대해서는 더 깊이 고민해봐야겠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독후감]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