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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멀미 Dec 04. 2022

이유 없는 울음들

‘어디로 떠났는가’ 그것으로 여행의 풍경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 주로 울었는지를 보고 그 사람의 내면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상황에서 우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뒤 우는 사람도 있고, 갖고 싶던 명품 구두를 구입한 후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 사고 때문에도 울고 이별 때문에도 울게 됩니다. 승진에 누락되었을 때는 울지 않았는데, 2년 뒤 마침내 승진한 후에, 그때 펑펑 울기도 합니다. 무언가 달콤한 음식을 먹고 싶어서 우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배가 고파서도 울고 배가 불러서도 울겠지요. 행복해서도 울고 불행해서도 웁니다. 예전에는 볼 때마다 나를 웃게 해주었는데, 이제는 보자마자 울음이 나는 사진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울음의 이유도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울음의 이유가 변한다는 것.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울지 않았던 이유로 울고, 5년 전의 나였다면 펑펑 통곡했을 일인데 이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도 있습니다. 고통과 큰 사건에는 오히려 이를 악물지만 작은 일에 더 울게 되는 때가 많아진 것입니다. 드라마 주인공의 쓸쓸한 서성임 때문에 울고 소설 속 한 문장 때문에 우는 일도 있습니다. 앵커 브리핑을 듣다가 울컥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세월호 가라앉던 날엔 너무 놀라 차마 울지 못했는데, 뭍으로 배가 나오던 날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엔 그랬습니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은 백발의 부부, 그 뒤로 한강이 보이고 봄 햇살이 풍성히 들어오는데 어쩐 일입니까. 그냥 갑자기 눈이 젖어 오는 게 아닙니까. 나조차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내 울음입니다. 왜 울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 울음도 생겨났습니다.



네팔 닥신칼리에 갔던 날입니다. 살아 있는 가축의 피를 칼리 신의 제단에 바치며 가족의 안전과 복을 기원하는 힌두교 성전입니다. 모두 저마다의 형편에 따라 제물을 준비합니다. 바치는 제물의 값과 크기에 따라 복도 들어온다고 믿는 것입니다.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가장 비싸고 귀한 제물과 함께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닭이 가장 흔하게 보입니다. 비둘기를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작은 염소와 함께 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행렬이 수백 미터 길게 이어집니다. 중간쯤에서 그 소녀를 봤습니다. 허름한 옷과 낡은 신발. 쟁반엔 그저 꽃잎들이 놓여 있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가져올 수 없어서 그 꽃을 가져온 것입니다. 어쩌면 생명을 귀하게 여겨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함께 지낸 가축을 차마 죽일 수 없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피를 바치는데 그 제단에 꽃을 몇 잎 올려놓는 일. 그러나 소녀의 소원을 위해, 그 어떤 가축보다 그 꽃이 더 많은 피를 흘려줄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몇 걸음 걸어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소녀를 가련하게 생각해서 운 게 아닙니다. 그 마음이 내게 너무도 많은 것을 알려줬기에 고마워서 운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저도 그 울음의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짐작만 했을 뿐입니다. ‘눈물이 흘렀으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애써 이유를 찾아본 것입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를 지날 때였습니다. 커다란 배낭을 내려놓고 쓰러진 듯 쉬고 있는 낯선 포터를 봤습니다. 비록 짐을 옮기는 게 그의 직업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한걸음 옮기는 데도 숨이 차오르는 높이입니다. 그곳을 수십 킬로그램 짐을 지고 오르니 분명 그도 힘겨웠을 것입니다. 얼굴에 창백함과 허기가 가득 느껴졌습니다. 내가 뭐 특별히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비상용으로 챙겨뒀던 초코바 두 개를 건네줬을 뿐입니다. 그가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하고는 힘을 얻었는지 일어나서 걸어갑니다. 나도 잠시 쉬다가 걸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뒤였던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눈이 내리더니 길이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어디 길을 물어볼 곳도 없고 마침 그 길로 오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앞뒤를 분간할 수 없고 방향도 깜깜했습니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온 게 사실입니다. 눈이 계속 내리는데 몇 시간 내로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면 곧 밤이 오게 됩니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내려가지도 못하고 오르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 폭설 속에서 산을 내려오는 사람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아니 어느 정도 내려오다가 나를 보고는 다시 산 쪽으로 올라갑니다. 옳다. 저 사람을 따라가자. 그가 가는 곳이 등산로일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내가 초코바를 건네줬던 포터였습니다. 폭설을 보고, 혼자 산행하던 나를 걱정하여 다시 그 산을 내려와준 것입니다. 내 선물이 고마워서였을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해줄 것은 없지만 길잡이라도 되어주자’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주는 사람의 도움은 작지만, 받은 사람의 고마움은 너무도 큰일. 내가 그에게 건넨 초코바가 그랬고, 그가 내 길잡이가 되어준 일이 그렇습니다. 그날 밤 어렵게 산장에 닿은 후 잠시 울었습니다. 안나푸르나에 닿은 기쁨 때문에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포터가 고마워서 울었던 것 같습니다. 울 때는 이유를 몰랐는데,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시 이유를 알게 된 것입니다.



치매가 있으셔서 내가 누군지조차 알아보지 못하는데, 병문안 갈 때마다 아버지는 내게 만 원씩 때론 몇 천 원씩 건네주십니다. ‘웬 돈이에요?’라고 물으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실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 다른 가족들에겐 안 그러시는데 유독 저에게만 돈을 주십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갑작스럽게 큰돈이 필요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가난도 이유였고, 더 급한 집안 사정도 이유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두고두고 그 일을 미안해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를 볼 때마다, 정작 내가 누군지는 기억 못 하시고, 그저 돈을 못 줘서 미안했던 그 상황만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있는 대로, 내게 돈을 주십니다. 나는 웃으며, 감사합니다, 대답해드릴 뿐입니다. 아버지를 병원에 남겨두고 서울로 돌아오며, 아버지가 주신 만 원을 손에 꼭 쥐고, 그러나 나는 울지 않았습니다. 울어야 할 이유로 가득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아직 그것 때문에 운 일이 없습니다. 


치킨 *달밧을 주문했습니다. 당황한 표정을 짓던 주인이 급히 어디론가 달려 나갑니다. 트레킹 비수기여서 오랜만의 손님이었고, 오랜만의 주문이었나 봅니다. 그냥 그 음식은 안 된다 말하면 그만이었는데, 굳이 닭을 구하려고 나간 것입니다. 근 30분이 넘도록 그 작은 동네 집집을 다니며 닭을 구한 것 같습니다. 숨찬 걸음으로 들어오는 그 모습을 보고 울었습니다. 이유 없는 울음입니다. 왜 울었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언젠가 알게 되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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