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전환점

by 지구멀미

부천역 근처 선풍기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했던 적이 있습니다. 스무살 무렵. 생계를 위한 노동이었습니다. 모집 공고를 보고 전화를 했었는지 누군가의 소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고 가끔 뜨거웠다는 사실 뿐입니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멈춰 있으면 멈춰선 그곳에서 산 채로 폭발할 것만 같던 날들이었습니다.


겨우 쇼핑백 하나 정도의 짐을 들고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차피 작업복을 입어야 했고 현장에선 안전화를 신었기에 별다른 짐은 필요 없었습니다. 칫솔과 수건, 외출복, 운동복 하나, 내의 몇 개, 그리고 꼭 지녀야 했던 책 몇 권이 전부였습니다.

기숙사는 군대식 상하 관계로 운영되었습니다. 각 방마다 일곱 명 정도가 나이와 직급으로 서열을 정해 생활했습니다. 가장 높은 서열이 창가 텔레비전 쪽에 눕고 그 뒤로 방의 입구까지 차례로 눕습니다.

나는 막내였습니다. 그 방의 모든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해야 했습니다. 청소와 심부름과 굴종과 그에 따르는 적당한 안락함까지 내 몫으로 남았습니다.

도열하여 아침 체조를 마친 뒤 작업 라인에 서면 일정한 속도로 반조립 상태의 선풍기가 흘러 왔습니다. 아침 일곱 시 사십 분 부터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까지. 그리고 잔업의 두 시간 동안 그 흐름은 끝이 없었습니다.

나는 선풍기 뒷 머리 쪽을 몸체에 고정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압축 공기로 작동하는 전동 드라이버를 사용해 4개의 볼트를 끼우고 선풍기를 다시 라인에 올려 놓는 일이었습니다. 뒷 라인의 작업자는 내가 고정시켜 둔 부분에 플라스틱 뚜껑을 덮었습니다. 라인은 뒤로 끝 없이 흘러 갔습니다.


나는 서툴렀습니다. 한 손에 미리 쥐고 있던 볼트를 손가락으로 잡고 코일과 코일 사이 좁은 틈에 툭 밀어 넣는 게 요령이었습니다. 그걸 알지 못했을 때 라인의 속도 보다 내가 느렸습니다. 조립하지 못한 선풍기들이 짐처럼 바닥에 쌓였습니다. 바닥에 선풍기가 하나 내려 온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 당 조립 갯수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려놓은 선풍기가 다섯대를 넘어서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작업반장이 달려와 곁에서 도왔습니다. 도우면서 꾸짖었습니다. 네가 밀리면 너의 뒤 모든 라인이 쉬게 된다. 그걸 내가 도와 두대를 한 번에 라인에 올려 놓으면, 뒤의 모든 사람들이 바빠진다. 작업 반장의 도움은 도움이 아니라 경고였습니다. 나는 경고를 자주 받았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오전 작업을 끝내고 식당 입구에 들어 섰을 때입니다. 그곳에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점심 배식을 위해 길게 서 있는 사람들 너머 어떤 눈부심이 있었고 바라보니 그곳에 그 여자가 있었습니다. 얼굴이 희고 투명했습니다. 눈이 맑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표정과 외형 속에 숨긴 채,???? 그날 처음 본 그 사람이, 거기 오래 있었다는 듯 그곳에 있었습니다. ????

뒤에 서 있던 동료가 내 어깨를 툭 칩니다. 그리고는 턱으로 그 여자를 가르켰습니다. 동료는 내게 황홀의 동의를 구해 왔습니다. 삼개월 전부터 기숙사 같은 방에서 함께 막내로 지내던 친구였습니다. 야, 저 여자 좀 봐. 나도 이미 보고 있었어.

긴 생산라인의 중간에 서서 하루 종일 볼트를 끼워 넣거나 사출기가 쿵하고 내려오면 거기 찍혀나온 뜨거운 플라스틱 선풍기 날개를 박스에 넣는 일. 시키면 방을 닦고 흘러오면 조립하는 일. 그런 일들이 전부였던 우리들에게 그 여자와 그 여자에 대한 인식은 생경하고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식판에 밥을 담고 반찬을 넣고 식탁에 앉으면서 우리의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 여자를 보는 일. 마음이 오랫 만에 요동치는 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그 여자에게 다가 서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여자의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수소문하여 어느 라인에 근무하고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모터 생산파트. 자석 위에 구리 코일을 감는 쪽. 생산 3라인. 그러니까 내가 조립하고 있는 그 모터 뭉치를 생산하는 쪽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에도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때까지 내가 조립했던 그 것. 죽도록 싫었던 그 부품. 혹시 그녀가 만든 것은 아닐까. 나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조립 속도가 더 빨라졌습니다.

일과가 끝나면 동료와 나는 어떤 방법을 통하여 그 여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 했습니다. 고민이 길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이 가설로 등장했고 모든 방법이 부정되었습니다. 유치한 생각들을 제안했다가 동시에 그 방법을 부정하면서도 우리는 웃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고민의 시간은 씨앗의 발아처럼 젊은 우리의 내면을 한없이 부풀렸습니다.

그림에 소질이 있던 친구가 그 여자의 얼굴을 실물 크기로 그려서 선물 하기로 했습니다. 입술은 그리지 말고 립스틱으로 찍어달라고 하자, 내가 제안했습니다. 언제 마추칠지 모르는 점심식사. 그리고 휴게실. 그곳을 우리는 서성이며 그 여자와의 우연을 기다렸습니다. 가끔은 스쳐 지나갔습니다. 우연을 가장하여 옆 테이블에 앉기도 했습니다. 관심없는 타인처럼 그렇게 앉아 그녀가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훔쳐 봤습니다. 그런 순간들은 행운처럼 왔습니다. 기다렸다가 왔습니다.


친구는 그 여자의 얼굴을 스치며 들여다보고 그것을 기억했다가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확인하려고 그 여자와 우연히 만날 순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림이 완성되는데 2주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림은 완성되었습니다. 실물과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여자였으므로 그림도 아름다웠습니다. 선들은 세밀했고 사실적이었습니다.
내가 가서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참 예뻐요. 그래서 그렸으나 차마 입술은 그릴 수 없었어요. 여기 입술을 찍어주세요. 유치한 연극의 대사와도 같은 그 말을 몇번이나 반복하여 연습했습니다.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열흘이 더 지나서야 그림을 건넬 수 있었습니다.

"너무 예쁘셔서 저희가 그쪽 얼굴을 그렸어요. 그리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입술은 차마 그릴 수 없었고요. 여기 좀 찍어 주시면"

떨려서 간단히 말했습니다. 여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필 마음의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음 휴일 몇시 여기서 기다릴께요. 그렇게만 말하고 동료와 나는 뒤돌아 섰습니다. 그리고 뛰쳐나왔습니다.

그 며칠, 그러니까 여자에게 그림을 건네고 뛰어온 며칠 동안 우리의 가슴은 끝 없이 쿵쾅거렸습니다.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차올랐습니다. 그것은 그 여자와 그 여자의 응답에 대한 기대 때문 만은 아니었습니다. 응답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 여자와 친해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휴일이면 소풍을 가고...단풍나무 아래 가서 앉고 나는 편지를 쓰고.

그런 것들은 우리가 오랜 동안 잊고 지내 온 말이었습니다. 꿈이라는 말, 낙엽과 향기와 비와 구름이라는 말, 새옷과 근사함과 내일이라는 말, 그런 말들이 우리에게 다시 생겨났던 것입니다.


오래도록 읽지 못했던 책을 다시 펼쳐 읽었고 친구는 계속해서 그 여자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의 꿈이 화가였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답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물감을 사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에게 내 꿈을 고백 처럼 말했습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래 고개 끄덕여줬습니다. 잊고 있었으나 사라지지 않았던 것들이 다시 우리에게 찾아왔고, 우리는 그것으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어쩌면 그 며칠동안 그림을 받아든 여자도 우리처럼 숨차 올랐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순박한 청년 둘이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 여자도, 사실은 생산 라인에 회색 작업복을 입고 서 있던 여공의 하나였을 뿐입니다. 취미로 여공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게에도 삶은 ????이었을 것이며 미래는 사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어느 날 자신에게 조금은 의외의 일이 생겨 난 것. 그녀도 그 일들로 인해 마음이 조금은 부풀었을 것입니다. 볼트와 너트처럼 줄지어 오는 생산라인의 어떤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 뛰고, 피고, 땀차오는 그런 것, 그것을 우리처럼, 그 여자도 느꼈을지 모릅니다.

입술을 찍어달라고 그림을 건넨 뒤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봤습니다. 우리를 보고 그 여자는 고개 숙인 채 얼굴이 온통 붉어졌습니다. 주위의 여공들은 무엇이 좋은지 킥킥 웃었습니다. 잘 되었구나. 우리도 웃었습니다. 여자도 기뻐하는구나. 어쩌면. 잘 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이제 며칠만 기다리면 수줍게 웃는 그녀와, 그녀의 입술이 찍힌 그림을 들고 우리는 만나게 된다. 그러나 끝내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여자와의 약속 하루 전 토요일. 내일의 약속을 위해 머리를 자르고 바지와 운동화를 사서 들어 온 우리를 기숙사 고참이 옥상으로 불러 냈습니다. 작업 반장이었습니다. 지갑을 내 놓으라는 것. 너네 둘이 가져간 것을 다 안다 했습니다. 목격자도 있다 말했습니다.

"요즘 너희 둘, 매일 옥상에 올라가서 수근거렸지. 처음부터 이상했어. 보니, 보란 듯이 옷도 샀더구만. 다 알고 있으니까 가져와. 이것들이 남의 돈 훔쳐서 옷을 사?"

아니었습니다. 아니 었으므로 아니라고 말하자 좋은 말 할 때 순순히 자백하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말은 비웃음을 타고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겨우 지갑 따위를 훔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감정이 섞여 있는 음성이었습니다. 억울해서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허"

작업반장은 황당한 듯 웃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이었습니다.

"내게 너희들은 지갑 따위 훔칠 놈들로 보인다. 너네들은, 너네 자신을 그렇게 모르겠어. 너희들은 한마디로..."

그는 말을 끊고 잠시 침묵하더니 나의 얼굴을 주먹으로 툭툭 치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은... 그는 표현할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 다는 듯 그 말을 반복하며 내 얼굴과 가슴과 어깨 곳곳을 툭툭 쳤습니다. 적당한 말이 생각날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듯 보였습니다. 아프지 않게 때리는 것이어서 더 치욕이었습니다.

나는 어쩌지 못하고 그의 조롱을 받아 들이고 있었습니다. 몇개월 동안 지속된 위계 질서에 익숙해진 탓도 있었고 힘으로는 그를 어쩌지 못한다는 패배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다음 말. 우리의 존재 위치를 규정하는 그의 다음 말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너희들은 한마디로' 뒤에 나올 그 말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묘한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것을 즉시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로.

나의 곳곳을 툭툭 치던 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습니다.

"아, 그래 너희들은 말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어떤 존재냐 하면은 한마디로 말해서"

그때였습니다. 옆에서 묵묵히 고개 숙인 채 듣고 있던 동료가 갑자기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소리침과 동시에 주먹을 뻗어 작업 반장의 얼굴을 쳤습니다.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어서 작업반장도 어쩌지 못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개새끼, 뭐라고. 우리가 뭐?. 왜 우리를 니가 정의 하는데"

동료는 소리치며 작업반장의 얼굴을 계속 쳐 댔습니다. 얼굴에 주먹이 닿아 둔탁한 소리를 냈습니다. 입술이 터져 옥상 푸른 바닥에 피가 툭툭 떨어져내렸습니다. 작업반장은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아, 이, 어, 너, 등의 단음 들만 내 뱉을 뿐이었습니다.

동료의 젊음은, 그 순간의 폭발을 억누르지 않았습니다. 나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넘어진 작업반장을 무참히 밟았습니다.

"너는 내가 오늘 죽인다. 죽이고 끝낸다. 나는 도둑놈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다. 나는 '이원우'다"

동료는 빨래 건조대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하던 벽돌을 집어 들어 넘어져 신음하는 작업반장의 등을 내리 쳤습니다.

그날 우리는 그 기숙사를 도망쳐 나왔습니다. 짐도 다 챙지지 못했습니다. 꼭 필요한 것들만, 눈에 보이는 것들만 챙겨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 거리를 달려 조금 안심이 되었을 때, 허기진 배를 채우며 그와 처음으로 술 한잔을 마셨습니다. 여기, 살았던 일들은 오래 잊혀지지 않겠다, 내가 말했습니다.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잘했다고 대답해줬습니다.

우리는 악수하고 헤어졌습니다. 경찰서에서 만나자. 아니 만나지 말자. 잘 살아라. 나는 버스를 타고 서울 친척집으로 갔고 동료는 그가 살던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 후로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그 여자는 기다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려 준 그림에 입술 자욱 찍고서, 몇명의 동료들과 기다렸을 것입니다. 청년 둘은 하나의 시대를 끝내고 다음 시대로 건너 가느라 그곳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여자에게 그림을 건네며 본 것은 희망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 내면으로 들어온 씨앗이었습니다. 미래라는 말, 그것이었습니다. 우연히 일어난 일. 생에서 스쳐가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하나였지만 그것은 지금도 뚜렷이 기억됩니다. 그 순간이 내 삶에 있어서 또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삶은 그때 내 길을 전환 시켜 주려 했었고, 거기 그 아름다운 여자, 지금은 이름과 얼굴, 모든 것이 생각나지 않는 그 여자를 등장 시켜 주었습니다.


그 여자에게도 그 순간이 전환점이 되었기를 기원합니다. 조립공의 삶이 저급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던 자신의 아름다움. 조립공이 아니라 그 자신, 그 존재 자체로서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을, 그림에 입술을 찍으며 알게 되었기를. 우리는 우리에게, 서로가 생의 전환점이 되어주려고 그때 그곳에서 만났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려지는 그 풍경이 있습니다. 그 휴게실 앞.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자기 앞으로 생겨날 설렘 같은 것을 미리 짐작해보며 서 있었을 그 여자. 나는 가끔 생각합니다. 거기 부천근처. 화가와 시인을 꿈꾸던 스무살의 청년 둘. 얼굴이 유난히 희던 그 여공. 내 지나온 날의 한 때. 거기 전환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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