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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Oct 31. 2015

특성화고교 3학년 아이들과의 면접기

취업상담회에 참석하고 나서

특성화고 취업상담회에 참석하게 된 건 인사담당 직원의 권유 때문이었다. 회사에 병역 특례병을  배정받으려면 실업계 고등학교와 산학협동 같은 협약이 있어야 하고 그런 과정 중의 하나가 이번 행사라는 설명이다. 행사 당일에 까맣게 잊었고 담당 직원이 출발을  재촉하는 바람에 30분 늦게 대구의 행사장에 도착했다. 각각의  테이블마다 머리를 맞대고 상담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진행 요원의 안내로 자리에 앉으니 대구 경북지역의 특성화고 취업담당 선생님들이 찾아와 명함을 내밀었다. 이런 행사 경험이 일천한 나에 비해  수년간 학생들의 취업을 담당했을 선생님들의 질문은 핵심을 찔렀고 노련했다. 회사의 규모가 어떻고 안정정인지 복지나 급여 수준은 어떤지 근무 조건은 적합한지 빠르게 파악했고 이내 우리 회사에 관심을 가졌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 나와 식사를 함께한 젊은 선생은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내게 계속 질문을 하며 메모를 했고, 자기 학교와 학생들의 우수성을 홍보하느라 열심이었다.  제자들을 꼭 좋은 회사에 취업시키고자 하는 스승으로서의 열정이 느껴졌다.

오후에는 학생들과의 일대일 면접이  실시됐다. 중강당 크기의 공간에 학생들이 도열해 앉았고 각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이 강당 주변을 빙 둘러 배치된 테이블에 앉아 찾아오는 학생들과 면접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세팅돼 있었다.  진지하게 취업을 희망하는 듯 부스 여기저기를 분주히 살피고 자료를 뒤지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제 자리에 앉아 핸드폰에 열중하거나 끼리끼리 잡담을 하는 등 취업행사에 관심 없이 의무적으로 참석한 듯한 아이들도 더러 보였다.  전기 전자 등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은 회사의 테이블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반면에 내가 앉은 자리에는 찾아 오는 학생이 뜸했다. 우리나라에서 섬유업종이 사양산업임이 학생들에게도  인식돼 있는  듯했고, 각 특성화 고교에 섬유를 전공하는 과가 개설된 학교 수가 적었다.

드디어 첫 번째 학생이 나를 찾아와 내 앞에 앉았다. 대구전자공고 전기과 2학년 학생이다. 취업을 하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3학년 선배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글씨가 바르지 못하고 두서없는 내용이지만 정성만큼은 들어가 보이는 자기소개서를 내 보인다. 스스로 준비한 내용을 열심히 설명하며 내게 어필하고자 했고 자기만의 창의성을 돋보이고 싶어 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더니 동문서답이다. 긴장한 탓일 것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질 사회라는 야생의 환경에 들어오고자 하는 이 어린아이와 이 아이를 데려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시켜야 하는 내가 마주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문득 생각해 보니 베트남에서 스스로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내 아들과 꼭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요령과 면접에 임하는 태도에 대한 조언을 건네고 명함을 전해 준 후 일 년 후에도 우리 회사에 관심이 생긴다면 연락하라고 말했다. 아이는 자기 인생에서 처음 받아보는 명함이라며 소중히 받아 들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른 회사의 부스를 찾아 떠났다.

다음엔 주로 고3 학생들이 찾아 왔는데 아직도 자신의 적성이나 진로를 정하지 못한 아이나, 자신에게 취업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는데 유독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영남공고 전기과 3학년 학생인데 피부가 희고 검은 안경은 썼고 마른 체형이었다. 공업계 보다는 인문학을 전공하면 어울릴 듯한 외모를 가진 아이다. 행사 매뉴얼에 나온 대로 1분 자기 소개를 해 보라고 하니 내용을 다 외주지 못해서 준비한 자료를 보면서 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목소리를 크고 분명하게 발성하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많이 떨었고 내 눈을 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1분간 자기소개를 발표한 후에 너무 긴장해서 준비한 대로  말씀드리지 못했다며 스스로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우리 회사를 소개하고 입사를 한다면 해야 할 일과 앞으로의 비전을 설명했다. 아이는 우리 회사에 꼭 입사하고 싶다고 한다. 열심히 할 자신이 있고 기술을 배워서 오래 회사에 남아있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가 섬유회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덧붙이며 어떻게든 우리 회사와의 연관성을 찾고 싶어 했다. 아이는 취업이 절박해 보였다. 무엇이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를 이토록 취업에 목마르게 했을까.

초중고를 인터내셔널 스쿨에 다녔고 지금은 서울의 대학에 다니는 딸아이와 해외에서 국제학교 하이스쿨 2학년에 다니고 있는 아들이 다시 생각났다. 지금은 특별한 환경에서 공부하지만 결국 몇 년 후에는 취업 전쟁에 뛰어들 내 아이들과, 대학 대신에 취업을 선택해서 엔지니어로 커 나갈 내 앞에 앉아 있는 저 아이 중에 누구의 인생이 성공할 것일까. 수년째 혼자 살며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지켜주기 위해 투잡을 해서 번 돈을 때마다 송금하는 나의 선택은 옳은 것인가. 면접을 보던 어떤 아이가 물었다. '입사하는데 성적이 중요한 기준이 되나요?' 난 성적은 무관하다고 말했다. 성적보다는 인성이 중요하며 건강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며 인내심과 성실함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내 아이들의 성적에 무심한 듯 촉각을 곤두세우며 학기마다 장학금 수령 여부에 관심을 쏟는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살거나 이상 속에서 현실을 망각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더 이상 내 부스를 찾는 아이가 없었고 난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자리를 떴다. 나오는 길에 처음  면접했던 2학년 학생이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건넨다. '선생님 벌써 가시는 거예요? 제가 일찍 면접 보기를 잘했네요.'라며 고개 숙여 인사한다. 저 나이 때의 나보다도 훨씬 의젓하고 성숙한 태도에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가슴에 스친다. 취업이든 진학이든 우리 아이들이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절박함과 초조감 보다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현재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만들라고 있는 기성세대가 우리들 아닌가. 가을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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