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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Nov 09. 2015

물푸레의 섬유공장 산책기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을 읽고 써 본, 우리 공장 산책기 - 1

공장 입구에는 랩 wrap으로  포장된 원사原絲들이 성벽처럼 도열해 있다. 육중한 원사가 올려진 팔레트를 실은 지게차가 바삐 움직인다. 지게차를 움직이는 기사는 팔레트를 목표하는 위치에 신중히  내려놓는다. 지게차가 도착한 곳에는 합사기와 연사기가 가동 중이다. 현장 문을 열자 뜨거운 공기가 훅 달려 든다. 겨울철에 한국을 출발해서 열대지방의 공항에 내렸을 때 호흡기를 찌르는 열기의 느낌이다. 고온과 함께 현장을 가득 채운 건 고막을 찢는 기계음이다. 연사기에서 12,000 RPM(참고로 헬리콥터의 회전수는 7,000 RPM이다)으로 회전하는 수천 개의 스핀들이 일제히 쏟아내는 소리다. 제트 여객기 옆에 서서 엔진음을 듣는  듯하다.

상의를 벗어제낀 구릿빛 피부의 필리핀 출신 직원 로니Ronie가 팔레트 포장을 벗긴 후 양 손에 드럼을 하나씩 들어 옮긴다. 원사가 감겨진 드럼은 마치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 걸린 대형 두루마리 휴지와 같은 모양이다. 드럼 한 개의 무게가 많게는 20 킬로그램, 쌀 한 포대 정도다. 각기 다른 두 종류의 원사를 스탠드형 거치대에 꽂아 넣는다. 거치대는 합사기 한 대당 240개의 원사를 꽂을 수 있다. 두 종류의 원사는 고압의 압축공기가 분사되는 에어노즐을 통과하며 물리적으로 결합된다. 머리카락 굵기의 두 종류의 실에는 각각 72 가닥과 36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합쳐지면 108 가닥이 된다. 이 원사는 밀가루 반죽할 때 쓰이는  밀대처럼 생긴 원기둥 모양의 알루미늄 보빈에 각각 1킬로 그람의 무게로 감긴다. 합사기에서의 작업은 여기서  마무리된다. 합사 작업은 육중하고 단호하며 일사불란하다. 남성성을 띤 작업이며 역시 남자들의 손으로 이뤄진다.

합사작업을 거친 원사는 연사공정으로 넘어간다. 연사는 여성성을 지닌 작업이다. 위 아래 2단으로 구성된 연사기는 쪼그려 안거나 디딤판을 딛고 서서 작업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이 하루에 처리해야 할 작업량은 두 대의 연사기로 도합 512 추다. 20년 안팎의 경력을 가진 노련한 여성 작업자들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납작한 빨대 모양의 바늘을 톱가이드라는 장치에 꼽고 여러 경로의 사도(실이 지나는 길)를 순식간에 거쳐 한 개의 추 작업을 완성시킨다. 완성과 동시에 다음 추로 넘어가서 256 추의 작업은 개별적이지만 연속성을 갖고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된다. 연사 작업자의 손놀림은 매우 민첩하고 능숙해서 눈으로 작업의 과정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형태의 연사기를 투포원(two for one)연사기라고 부르는데, 스핀들이 한 바퀴  회전할 때 실에 두 번의 꼬임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꼬임이 들어간 원사를 한 개의 실린더에 1킬로그램의 무게로 작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 시간이다. 작업자들은 하루 걸러 한 대의 기계를 작업하게 된다. 이틀에 걸쳐 완성된 연사물은 세팅 공정으로 넘어간다. 세팅기는 거대한 드럼통이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이며 기능은 압력밥솥과 비슷한 일을 하는 기계다. 플라스틱 박스에 가득 담긴 연사물들이 세팅기 내부에 가득 채워진다. 세팅기는 한 번에 1톤의 용량을 수용한다. 연사작업을 마친 원사를 세팅기에 넣은 후 세팅기 내부를 진공상태로 만든다. 섭씨 80도의 스팀이 실린더에 감긴 원사 내부와 외부에 골고루 침투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진공 상태에서 스팀으로 60분간 가열한다. 꼬임이 들어간 원사는 다시 풀어져서 회복되려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스팀으로 가열하면 복원력을 억제하고  안정시킬 수 있다.

이쯤 되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나올  듯하다. 앞에 얘기들은 다 잊고

두 가지 실을 합친 후 이틀간 배배 꼬아서 솥에 찐다.

고 생각하시라. 이렇게 하면 합사와 연사 그리고 세팅까지의 공정이 완성된 것이다. 


위에 열거한 공정들은 모두 사람의 육체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공장의 노동자의 절반은 한국인 나머지 절반은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인의 경우 20~30년 간 섬유공장에서 일을 해 온 50 대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휴일도 없이 매일 반복되는 노동에 뛰어들 젊은 여성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한겨울에도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일을 해야 하는 더운 공장 환경. 한 여름에는 차마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덥다. 혹자는 현장에 에어컨을 설치하면 어떠냐는 얘기를 하지만, 600 평이 넘는 한증막에 에어컨을 설치해서 온도를 낮추겠다는 생각과 같다. 냉방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박한 임가공료를 받아서 에어컨을 설치하고 가동해서는 공장을 가동하는 의미가 없다. 삼복더위에 온몸에 땀띠로 고생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지금 같은 가을철이 돼서야 비로소  더위로부터 한시름 놓고 일을 할 수 있다. 근대화 시기에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며 국가경제를 책임졌던 여성 노동자들이 지금도 우리의 섬유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현장에 들어가면 그분들과 눈을 마주치기 어려울 정도로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그러하다.

완성된 연사물은 만 하루 동안의 숙성을 거친 후 편직 공정으로 넘어간다. 이제 연사보다는 심플한 편직 공장을 둘러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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