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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Dec 08. 2020

누구나 죽는다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죽은 자의 집 청소' 직관적인 제목의 책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다. 죽은 사람 중에서도 가난하게 살다 혼자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책을 채운 문장들은 시詩를 전공한 작가답게 빼어나다. 서너 장의 프롤로그만 읽어도 이미 독자는 죽은 자의 음습한 집안으로 깊숙이 발을 들이는 기분을 느낀다.

'섬유유연제의 라벤더 향과 사람이 부패하며 만들어 낸 것이 뒤엉켜 불쾌하면서 달콤한 냄새' '바닥에는 파리 성충으로 변태하지 못하고 생장을 멈춰버린 붉은 번데기들이 정월 대보름날의 팥알처럼 잔뜩 흩뿌려져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에 밟혀서 "우두둑"하고 알갱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문을 열자마자 복도의 공기와 상반되는 역산 냄새가 강력하게, 마치 감당 못할 만큼 많은 양의 고추냉이가 든 초밥을 삼킬 때처럼 코 윗부분까지 순식간에 뚫고 올라온다.' '문턱을 넘어 커튼이 있는 곳으로 한 걸음 내디딘다. 그 순간 바닥이 "물컹" 하며 질펀하게 액체를 자아내는 소리를 낸다... 솜이불이 젖어 있는 이유는 사체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을 온통 머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독자의 비위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 듯 자신의 경험을 여과 없이 전달한다. 썩은 시신의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하여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이불을 들추자 축축한 침대 매트리스에서 수 백 마리의 구더기가 눈 앞에서 꿈틀대는 듯하여 눈을 질끔 감는다. 방호복과 방독마스크를 쓰고 고무장갑을 착용했지만 천 개가 넘는 페트병에서 가스와 함께 분출되는 오줌과, 꽉 막힌 변기에서 오래 묵은똥을 퍼내는 손의 감촉이 느껴지는 듯해서 욕지기가 난다. 온갖 불쾌한 느낌이 쉴 새 없이 오감을 자극한다.

며칠 전 포털의 메인을 장식한 뉴스가 있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2 년간 냉장고에 유기하고 두 살과 일곱 살 먹은 아이 둘과 함께 사는 집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놓은 사십 대 미혼모의 이야기. 작가는 이와 같이 엽기적인 인 현장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을 직업으로 한다.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로 가득 찬 지하의 원룸. 열 마리의 부패한 고양이 사체로 가득한 아파트 15층. 면 테이프로 집안 내부를 철저히 봉쇄한 채 착화탄을 피워 목숨을 끊은 중년 부부 그리고 젊은 여성. 뉴스에 등장하지 않지만 뉴스보다 끔찍한 현실이 작가의 일상을 채우고 책으로 기록됐다.

일본에서는 '고독사孤獨死'라는 용어를 대신해 '고립사孤立死'라는 표현을 쓴다. 죽은 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 편에서 마음의 부담을 덜어보자는 시도이다. 하지만 작가는 죽은 이에 동화되어 동료 몰래 눈물을 훔치거나 '보이지 않는 손이 몸에 들어와 겨우 죽지 않을 만큼만 심장을 꽉 움켜쥐는 것'같은 고통을 느낀다. 죽은 이의 집에서 무엇을 보았든 그것은 작가 자신 생각의 반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이 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작가는 '힘들지 않다고는 말하기 힘든' 일을 하면서 '즐겁지 않다고 말하기도 힘든'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악취 풍기는 실내를 마침내 사람이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원래의 공간으로 돌려놓았을 때, 살림과 쓰레기로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을 완전히 비우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집으로 만들었을 때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기'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음에 대해 오래 생각할수록 삶을 깊게 느낀다. '주변인들에게 너무나 착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던 젊은 여인은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을 아닐까?'라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오래 머문다.

어느 가난한 자의 집을 치우며 작가가 남긴 말로 책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가난하다고 너무 심해지지 말자. 그대가 현자라면 언제나 심각한 사람이 손해라는 것쯤은 깨달았으리라. 어차피 지갑이 홀쭉하나 배불러 터지나 지금 웃고 있다면 그 순간만은 행복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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