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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Nov 17. 2015

삼십 년만에 혼자 떠난 여행

소매물도에서의 하룻밤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예약한 시간은 오후 12시 5분, 나오는 배는 다음날 오후 1시 30분이었다. 새벽부터 서둘렀다. 인터넷 예약의 경우 한 시간 전에 항구에 도착해서 표를 교환하지 않으면 예매가  취소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문구가 쓰여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휴게소에서 맛없는 국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초행의 거제도 저구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11시.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나의 빈틈없는 시간 계산에 스스로 뿌듯했다. 항구의 주차장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만원이었고 난 간신히 빈자리를 찾아 차를 세웠다. 표를 교환하기 위해 매표소 여직원에게 당당히 예약자 이름을 밝혔다.

"오후 1시 30분 배로 예약하셨는데 일찍 오셨네얘"

"네? 12시 5분 배인데요?"

"돌아오는 배가 12시 5분으로  예약돼 있으신데얘"

프린트를 꺼내 확인해 보니 직원의 말대로 내 기억과는 반대로 예약이 돼 있었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 것도 억울한데 두 시간 반 동안 배를 기다려야 한다니 한심했다. 난 불쌍해 보이는 표정으로 여직원에게 말했다.

"혹시 12시 배에 남는 자리가 있으면 표를 바꿀 수 있을까요?"

"가능하지얘." 여직원은 쿨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걸로 주세요. 고맙습니다."

꼬였던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순간이었고 안도하는 순간 여직원이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저기... 11시 반 배도 있는데 혹시 그 배 안 타실랍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표로 주세요."

세상일이란 계획대로 안 됐을 때 외려 잘 풀리는 경우도 가끔은 있는 법이다.

어제 펜션 주인이 문자로  안내해 준 대로 배의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어제부터 비가 내렸고 파도가 있으므로 멀미를 피하려면 배의 중앙에 앉는 편이 좋다고 한다. 섬에 도착한 단체 관광객들에게서는 흥겨움이 넘쳐났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부둣가 좌판에 앉아 해산물에 소주부터 들이키거나 삼삼오오 셀카를 찍어댔다. 섬의 길은 부두에서부터 오르막이었다. 내가 예약한 펜션은 부두에서 불과 5 분 거리였지만 카메라 배낭을 메고 여행가방에 삼각대까지 든 나는 이미 숨이 가빴다. 지난 여름이 되기 전 운동을 그만둔 여파로 체력이 바닥나 있었다. 계획대로 걸어서 섬을  일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펜션은 숙박과 식당을 겸해서 운영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 섬의 거의 모든 펜션이 그런 형태였다. 점심시간이라 주인 내외는 무척 바빴다. 여주인은 내게 열쇠를 쥐어주며 바빠서 안내를 해 주기 어려우니 2 층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기분이 좀 상했다) 조용한 방을 원했는데, 복도식으로 늘어선 방들 중 첫 번째 방이고 계단 바로 옆이며 문을 열면 바베큐장과 쓰레기 분리 수거통들이 늘어져 있었다. 이 펜션에서 가장 시끄러운 방이 분명해 보였다. (기분이 조금 더 상했다)

돌아서던 여주인이 내게 해 준 안내 말씀은 단 하나.

"나가실 때 쓰레기는 모아서 꼭  분리수거해 주세요." (난 그렇게 안 하리라 마음 먹었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은 지 4 년이 되었지만 만원 식당에서의 혼자밥은 공연히 눈치가 보인다. 난 기둥으로 가로막혀 바다가 보이지 않아서 남아있는 자리에 앉았다. 메뉴는 단촐했다. 회초밥, 회덮밥, 멍게비빔밥 그리고 자연산회. 동남쪽 맨 끝자락의 섬에 왔으니 바다내음 물큰 풍기는 멍게비빔밥을 먹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입에 침이 고인 채 망설임 없이 난 멍게비빔밥을 주문했다. 주인은 재료가  준비되지 않아서 주문을 받을 수 없단다. 하는 수 없이 기대를 접고 회덮밥을 시켰다. (이 펜션과 식당을 고른 내 선택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회덮밥은 거의 주문과 동시에 나왔다. 초장을 뿌려 젓가락으로 밥을 비비는 동안 뒷자리에 남녀 손님이 앉았다. 그들도 멍게비빔밥을 주문했고 주인은 다른 메뉴를 고르라고 말했다. 남녀는 이 상황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다른 식당에 가자. 멍게비빔밥 먹어야지" 여자가 말했다.

"다른 데 가서도 안되면 어쩌지? 그냥 먹자" 남자가 말했다.

"안되면 거기서 다른 거 먹으면 되지. 이 집 귀찮아서 주문 안 받는 거 같다"

주인도 충분히 들릴만한 소리로 여자가 말했고 남녀가 일어 서려 하자 눈치를 챈 주인이 말했다.

"아! 손님~ 지금 재료 왔네요. 멍게비빔밥 됩니다."

회덮밥을 비벼서 한 숟가락 입에 떠 넣던 나는 밥을 뿜을  뻔했다.  뒷자리의 남녀가 멍게비빔밥을 맛있게 비벼 먹는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으며 난 힘없이 일어나 방으로 갔다.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는 생각에 잠시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오후 3 시다.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으로 가는 바닷길이 갈라지는 시간이 오후 2 시부터 7시라고 했으니  제한된 시간에 다녀와야 한다. 섬을 일주하는 길을 택했다. 봄에 다녀왔던 지심도처럼 이 섬에도 동백이 지천에 깔렸다. 때를 잊은 동백꽃이 드문드문 매달렸고 더러는 떨어져 내렸다. 구실잣밤나무와 물푸레나무과의 광나무 그리고 자작나무과의 소사나무가 해안을 따라 난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섞였다. 동백이 피는 동안 다른 나무들은 단풍이 물들어 섬에서는 계절의 구분이 모호했다.

'바다백리길'이라  명명된 해안도로는 바닷가 절벽 가까이 붙어 나왔다가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작은 새들은 사스레피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며 지껄였고 큰 새들은 해풍을 깃털에 품은 채 높게 날았다. 숲이 우거져 배낭에 꽂은 삼각대가 나뭇가지에 자꾸 걸렸다. 산길은 좁아서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폭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라 혼자인 내가 여럿에게 길을 터 줘야 했다. 오르막길을 얼마간 걷자 땀이 흘렀다. 겉옷을 하나 벗어 배낭에 넣었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계속 산을 오르자 호흡이 가빠졌고 걸쳤던 겉옷을 마저 벗어 허리춤에 묶었다. 걱정 대로 방치했던 내 몸은 힘이 바닥난 상태였다. 숲길에 서 있는 나무의 이름이 뭔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고 새가 울든 날든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걸리적거리는 나무 뿌리와 돌덩이를 두 발로 딛고 몸을 밀어 올리기 벅찰 뿐이었다.

준비해간 물 한 병이 거의 바닥 날 즈음에야 오르막의 끝에 도착했다. 이정표를 보니 관세박물관을 거쳐서 등대섬으로 가는 길은 0.6Km, 바로 가는 길은 0.5Km라고 써있다. 난 주저 없이 관세박물관 관람을 포기했다. 세관원들과는 호찌민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지겹게 싸웠고, 최근에도 관세 문제로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노심초사하지 않았던가. 남해 바다 끝까지 와서 업무와 연관된 관세박물관을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작 100미터를 더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를  완성시켰다. 여기서부터 등대섬으로 내려 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오르막이 끝났다는 기쁨 보다는 돌아올 때 이 계단을 다시 올라야만 하는 내 종아리에 닥쳐올 현실이 아팠다.

소매물도에서 등대섬까지 갈라진 바다는 굵고 둥글둥글한 돌멩이들이 깔려 있다. 바닷물을 머금은 몽돌은 미끄러웠다. 바다를 걸어서 건너자 등대로 오르는 슬픈 계단이 뻗어 있었고 고개를 최대한 뒤로 젖혀야 등대를 볼 수 있을 만큼 가파랐다. 이미 등대섬을 돌아보고 나오는 단체 관광객들은 가는 길을 재촉했다. 계단을 오르는 나를 지나치던 중년 여성들의 대화가 귓등을 스쳤다.

"봐라. 이제 올라 오는 사람도 있지 않나. 천천히 가도 된다 아이가"

돌아가는 여성들은 나로 인해  위로받았고 난 그 여성들로 인해 더 힘들어졌다. 해가 지고 있었고 바닷길이 사라지기 전에 돌아서 나와야 했다. 등대섬은 아름다웠지만 흐린 날씨로 인해 내가 기대했던 저녁노을은 볼 수 없었다. 남은 물을 다 마시고 등대에 앉아 썩소를 지으며 셀카를 한 장 남겼다.

가로등 하나 없는 섬길을 돌아가야 했으므로 나 역시 서둘렀다.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지 돌아가는 길은 좀 더 수월했다. 바닷길을 건너 다시 소매물도의 계단을 올라 억새 사이로 난 언덕을 걸었다. 무엇 때문인지 문득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 그곳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적당한 포인트를 찾아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원하던 만큼의 해넘이는 아니지만 섬의 서쪽 하늘을 오렌지 빛으로 물들였고 바다를 붉게 염색했다. 일몰시간에 맞춰 등대가 불빛을 뿜었다. 쿠크다스 광고에서처럼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아름다운 여인이 치마를 팔락이며 바위 위에 서서 등대를 향해 손짓하는 뒷모습이 담겼다면 더 없이 좋았겠지만 현실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펜션으로 돌아왔다. 외출하기 전, 펜션 여주인이 저녁식사를 하려면 6시 반까지는 식당에 와야 한다는 룰을 정해 줬기 때문에 서둘러 씻고 방을 나섰다. 방문 앞의 바베큐장에는 4인 가족이 식사 중이었다. 남자와 눈을 마주쳤는데 뻘쭘했는지 "쏘주 한 잔 하이소"라며 날 보고 씨익 웃는다. 난 하마터면 '아이고 고맙습니다'라며 넙죽받아 먹을  뻔했지만, 그의 아내와 두 딸이 불청객을 반길리 없다는 이성이 본능을 억제했다. 처음부터 이 펜션에 딸린 식당에서 다시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으므로 몇 안 되는 부둣가의 식당을 물색하다가 적당한 집을 골라 들어갔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고 비쌌지만 회를 한 접시 시켰다. 주인 남자가 주방이 아닌 내 자리 옆에 서서 능숙하게 생선을 썰어 접시에 담아 주었다. 얇고 투명하게 썰어 놓은 회는 달짝지근했고 부드럽게 씹혔다. 뱃살이라며 도톰하게 썰어 놓은 회는 꼬들꼬들했고 씹을수록 고소했다. 아! 그리고 무려 한 달만에 소주를 한 병 시켰다. 처음엔 소주잔에 따라 마셨고 반  병쯤 마시고 나서는 남은 술을  물 잔에  다 붓고 들이켰다. 어떤 철학자나 작가가 감히 행복을 뭐라 정의하는가.


행복이란 흠뻑 땀을 흘린 후 눈부신 경치를 담고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신선한 안주와 함께 내 몸이 간절히 원하던 알코올로 목을 적시는 순간을 말한다.

다음날 아침엔 느지막이 눈을 떴다. 뱃시간은 12 시였으므로 여유가 넘쳤다. 아침을 먹고 동네를 산책했다. 큰 개들이 한가로이 돌아다녔는데 사람을 무척 따랐다. 목적 없이 쏘다니는 고양이처럼 해안을 따라 걸었다. 부지런한 낚시꾼들이 깎아지른 바위에 위태롭게 선 채 낚싯줄을 던졌다.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꽃과 풀들이 눈에 들었다. 해국과 구절초가 듬성듬성 피었고, 갯고들빼기나 갯기름나물 같은 섬의 풀들이 자라나 있었다.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식은 커피를 마셨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바다를 바라 봤다. 소매물도 근처에는 많은 섬들이 떠 있었는데 섬인지 육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일렁이는 물결을 보다가 먼 섬을 바라 보면 섬이 떠 오는  듯했고 내가 앉은 섬이 흘러가는 듯도 했다. 날이 개어서 파란 하늘이 언뜻언뜻 보였고 11월에도 남해의 바람은 부드럽고 시원했다.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 두 남자가 와서 앉았는데 아버지와 아들로 보였다. 둘은  말없이 먼 섬을 바라 봤고 난 슬며시 자리를 비켜 주는 일로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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