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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Nov 01. 2015

열기구에서 엿본 스머프 마을

일 년만에 쓰는 카파도키아 여행기

스무 명이 함께 탑승한 열기구는 가뿐히 떠 올랐다. 놀이동산에서 풍선을 잔뜩 들고 있던 소녀가 쥐었던 손을 폈을 때 하늘로 날아 오르는 헬륨가스로 채워진 풍선들처럼. 비행기의 이륙이나 새들의 날갯짓에 의한 비상과는 다른 느낌의 가볍고 부드러운 상승. 동트기 전의 카파도키아 들판에서  하나둘씩 열기구가 날아 올랐다. 열기구 내부의 온도를 높이기 위한 불꽃이 화염 방사기처럼 불을 뿜었다. 불을 밝힌 채 어두운 하늘로 떠오르는 열기구는 불꽃축제에서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들처럼 괴레메 마을의 새벽하늘을 밝혔다.

언젠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봉하마을에 모여 일제히 풍등을 날렸다. 연등 크기만 한 풍등들은 산너머 어둠 속으로 무리 지어 유유히 날아 올랐다. 저 풍등들은 어디로 날아가서 어떻게 소멸할까, 풍등에서 바라본 지상의 모습은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었다. 열기구에 탑승해서 카파도키아의 하늘을 날고 있는 나는 그때의 풍등에 몸을 실었다고 생각했다.

백여 개의 열기구들은 내가 탄 열기구보다 높거나 낮게 비행을 했고 멀리 또는 가까이 날았다. 괴레메 마을 주변은 바위로 이뤄진 협곡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열기구를 모는 조종사는 협곡과 바위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날았다. 바위와 최대한 가깝게 붙여서 부딪힐 듯 말 듯 피해 가는 기술을 보여주는 걸로 열기구 조종사의 경험과 노련함을 자랑하는  듯했다. 거대한 바위가 손에 잡힐 듯 열기구의 바구니와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정해진 궤도를 달리는 놀이기구와는 다른 형태의 짜릿한 공포감에서 나오는 함성이거나 조종사의 묘기와 같은 기술에 대한 감탄이다.

 열기구가 고도를 올리며 비행하다 일정한 높이에서 멈추자 사위가 밝아졌다. 사방에 떠 있는 열기구의 실루엣들 사이로 해가 떠 올랐다. 열기구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해가 떠오른다기 보다는 열기구가 떠서 해를 건져 올린다고 말하는 편이 옳았다. 해를 건져 올리자  어슴푸레했던 카파도키아의 바위들이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바위들이 스머프 집을 꼭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스머프의 원작자가 이곳의 바위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스타워즈의 배경이 된 도시가  이곳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기묘한 풍광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

옛날 옛적 이곳에 대규모 폭발로 분출된 마그마가 굳어져 바위가 됐다. 그 바위 위로 화산분진이 내려 앉았는데 분진은 마그마보다 단단했다. 아래쪽 무른 마그마는 세월에 깎여 나가는 동안 위쪽의 단단한 화산분진은 상대적으로 덜 깎여서 바위는 버섯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이 버섯 바위들을 터키어로 요정의 굴뚝(Peribaca - 페리바자)라고 부른다. 요정이든 스머프든 외계인이든 토토로든 원령공주든 유니콘이든... 괴레메 원주민이 저 버섯바위에 그 어떤 무엇이 살고 있다고 해도 '믿습니다'를 외치며 기꺼이 속아주고 싶었다.


괴레메를 찾은 여행자들은 당초의 계획과는 달리 이곳에 오래 머물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열기구는 바람이 잦아 들어야 띄울 수 있는데 심한 바람 탓에 열기구를 타지 못한 여행객이 바람이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에 더 머무른다. 카파도키아의 풍광에  도취돼 여행 일정을 늘이는 관광객은 더 많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거대한 규모의 끝이 어딘지 모를 지하도시 데린쿠유, 캘리포니아의 그랜드 캐년보다 더 멋진 노을이 붉은 빛으로 광활한 협곡을 물들이는 로즈밸리,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성채인 우치히사르 성 등 여행객을 이곳에 주저앉게 만드는 볼거리는 차고 넘친다.

반면, 이곳에 더 머무르는 바람에 인생이 꼬이는 슬픈 얘기도 있다. 그리스의 조각상 같은 얼굴과 헌신적인 매너를 갖춘(것으로 보이는 듯한) 터키 남자에 반한 여인이 노을이 지는 괴레메 마을 계단에 샤랄라 치마를 입고 앉아 몇 날 며칠을 보낸다. 그녀에게 구애하는 터키 남자들은 저녁마다 찾아 올 것이며 여자는  그중 한 남자와 사랑을 하고 결혼식을 치른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터키 남자는 내재돼 있던 한량기와 바람기를 어김없이 표출한다. 여자는 남자를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들거나 실연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터키 남자에게 낚인 여성들은 국적을 불문한다. 영국 여인, 독일 여인, 일본 여인 그리고 한국 여인. 난 터키 남자에게 잘못 시집 간 한국 여자가 노점상에서 그을린 얼굴로 관광객들에게 비누 따위의 조잡한 상품을 파는 장면을 실지로 목도했다.

카파도키아 상공을 유영하던 열기구는 해가 좀 더 높이 솟아 올라 버섯바위의 그림자가 선명해질 때쯤 정해진 장소에 내려 앉았다. 열기구가 착륙할 때는 뜰 때와 마찬가지로 사뿐히 내려 앉았다. 벚꽃잎이 봄바람에 흩날리다 땅바닥에 달라붙듯 가볍고 부드럽게 지상과 마찰했다. 미아자키 하야오와 조지 루카스의 작품 세계의 주인공인 됐던 나도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터키를 여행한지 꼭 일 년이 지난 후에야 카파도키아 여행기를 쓴다. 이제야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그곳의 풍광을 눈과 가슴에 담아 놓기에도 벅찼으며, 텍스트로는 그 순간의 느낌과 감흥을 충분히 표현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나만의 여행기를 풀어 놓을만한 적절한 공간을 찾지 못했기 때문 등등의 이유가 아니라... 그저 글쓰기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게으름이  극복되면 앞으로도 지난 여행의 기억을 되살려 볼 요량이나 시기를 기약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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