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제주, 푸꿕 PHU QUOC
나에게 여행은 가깝거나 먼 바다로 나아가 몸과 마음의 때를 씻어 낸 후, 다시 세상의 먼지를 묻혀 회귀하는 과정이다. 여행 가방을 꾸리는 일은 반복과 일상을 덜어내는 행위이며, 자동차나 기차 또는 비행기로 떠나는 일은 격식과 위선으로부터 멀어지는 의식이다. 이번 여행은 각기 다른 도시에 흩어져 살던 가족이 한 지점에 모여 초행의 길로 함께 떠난다는 점에서 조금 특별하다. 경북 구미에 사는 나와 서울 청파동의 대학에서 기숙하는 딸이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다시 베트남에 거주하는 아내와 아들을 호찌민시 탄손낫공항에서 조우하여 푸꿕으로 향했다.
호찌민에서 푸꿕(PHU QUOC, '푸꾸옥'이라고 읽는데 현지 발음으로는 '푸꿕'에 가깝게 들림)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제트기가 아닌 프로펠러 쌍발기다. 국내에서는 잘 볼 수 없지만, 호찌민에서 캄보디아의 씨엠립에 갈 때와 나짱에 갈 때 타 봤던 비행기다. 비행기 내부는 한 줄에 네 명씩 앉게 되어있고 가운데 복도가 나 있다. 마치 시외버스를 탄 기분이다. 아오자이를 입은 승무원은 한국보다 불친절하지만 중국보다는 훨씬 친절하다. 호찌민에서 푸꿕까지의 거리는 약 400 킬로미터. 비행하는 동안 내려다 본 지상에는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태국과 더불어 세계 쌀 수출국 1위 자리를 다투는 나라다운 곡창지대의 풍경이다.
최종 목적지인 푸꿕섬에 도착하자 저녁 노을이 사라졌다. 국내선 비행기 시간을 조금 당겨 볼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공항에 픽업 나온 리조트 직원이 우리 가족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한다. 오랜만에 듣는 베트남 특유의 억양과 발음이 섞인 영어를 접하니 현지에 왔음을 실감한다. 설명의 요지는 리조트 내에 두 개의 빌딩이 있으니 숙소를 헷갈리지 말고 찾아 가란 얘기다. 우린 '오션동'이고 파란색 리본을 트렁크에 매달아 줄 테니 꼭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직원의 당부대로 오션동에서 내려 체크인하려니 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이 우린 '코랄동'으로 예약되었단다. 피곤과 허기와 짜증이 일시에 밀려 온다. 베트남인들은 가끔 잘못된 일을 너무 열심히 할 때가 있다.
툭툭이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방을 배정받았다. 구미에서 떠나 온지 스무 시간만의 도착이다. 아오자이를 입은 여직원이 '전망이 매우 아름다운 방'이라며 너스레를 떨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그런 경치다. 주린 배를 채우고 대충 씻고는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발코니 창을 여니 건너편 건물에서 소음이 들여온다. 잠결에 팬이 돌아가는 소리라 생각했는데 소음의 정체는 어제 잘못 찾아갔던 오션동에서 나는 기계음이다. 당연히 방을 옮겨달라고 프런트에 요청했다. 내 영어가 짧은 건지, 상대방 영어가 서툰 탓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으나 기껏 옮겨 주겠다는 방은 지금 묵고 있는 방의 바로 옆방. 베트남에서 이럴 때 복장이 터진다. 한참을 다시 설명하고 기다리기를 반복한 끝에 원하는대로 방을 옮겼다. 어제 묵은 방이 앞 건물에 막혀 답답했는데 새로 옮겨간 방은 바다를 향해 시야가 탁 트였다. 문을 열자 타이만의 파도가 방안 가득 밀려 들어 온다. 열대의 햇살이 발등에 쏟아진다. 기분이 리셋되며 본격적인 휴양 모드로 전환한다.
리조트 측에서 소음 문제로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한다는 편지와 함께 과일 두 접시를 방으로 보내왔다. 언젠가 무이네에서도 경험했지만 방에 대해 컴플레인하면 대부분 좋은 방으로 옮겨 준다. 그때는 일반형 룸 가격으로 고급형 디럭스 룸에서 묵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추가 요금 없이 100 불 정도 차이나는 방을 쓸 수 있게 됐다. 과일 두 접시는 덤이다. 좀 번거롭긴 해도 호텔이나 리조트의 방에 어떤 하자가 발견된다면 일단 따지고 볼 일이다. 적어도 게스트가 손해를 볼 일은 없다.
섬을 일주할까 생각했지만 그냥 있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적도로부터 불어 온 바람에 밀려 머리 위로 쫓겨 가는 구름과, 반도 남쪽 한가한 섬의 살갗을 핥는 파도와, 바다 표면을 튕겨 나가는 햇살들의 변주를 들으며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나에게 내린 자유다. 초가을에서 여름으로, 동북에서 남서로, 일곱 시에서 다섯 시로, 혼자에서 둘로 다시 넷으로, 도시에서 자연으로, 외로움에서 푸근함으로. 우리는 인적 드문 바닷가에 나란히 앉았다. 바람은 뭐하러 쉴 새 없이 부는지, 파도는 얼마나 오래 쓸려 오갔는지, 따지다가 말다가 까무룩 졸기도 했다. 파도소리는 귀지를 파 주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서걱서걱 귓등을 긁어댄다. 적당히 찬 바다는 발목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종아리를 움켜 쥐었다가 쓸어 내리고는 모른 채 서너 걸음 내빼기를 반복한다.
야자수가 늘어선 작은 선착장 끝에서 파도의 흐름을 담고 싶었다. 다가가려 하자 세일러복 차림의 베트남 해군 병사가 출입을 제지한다. 베트남 본토에서는 멀지만, 캄보디아 국경에서 4 킬로미터 거리에 불과한 이 섬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리라. 그건 그렇고 리조트 바로 옆에서 매일 비키니를 감상하며 근무하는 저 병사들이 얻은 보직은 줄을 잘 선 덕분일까. 백이 좋은 것일까.
온 하늘이 능소화 꽃잎처럼 붉게 물들지 않았다고. 구름이 머리 위에서 수평선 너머로 매처럼 날아가지 않는다고. 호수의 물결이 물안개처럼 흐름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해서 원망할 일이 아니다. 고작 하룻저녁 기다려 놓고 하늘을 탓할 일은 아니다. 난 계속 찾아가 기다릴 뿐이고. 사진을 완성하는 건 구름과 바람과 저녁노을의 일이다.
섬에서 지내는 며칠간 비가 계속 내렸다. 내리다가 잠깐씩 맑은 하늘을 보여 줬다. 비가 내린다는 핑계로 볼만하다는 야시장도, 섬에서 유명하다는 진주를 파는 가게에도, 색깔이 더 곱다는 남쪽 해안에도, 스킨스쿠버를 한다는 더 남쪽의 섬에도, 규모는 작아도 나름 폭포라는 곳에도 더더욱 가지 않았다. 들고 온 책을 간간이 읽었다. 안도현의 <잡문> 중에 '나무는 여름이면 매미소리로 운다'는 대목이 자꾸 입에 맴돈다. 초등학교 2학년 꼬마의 시라는데, 안도현이 감탄할 만 하다. 나는 언제쯤 저런 문장을 써 볼 수 있을까. 여행은 시를 쓰러 가는 길이 아니라 시의 행간으로 들어가 스스로가 문장이 되는 과정이다. 그것이 좋은 시든 나쁜 시든 그러하다. 꿈같이 아득한 여행을 어느덧 마쳤다.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는 길. 하루 종일 기다려도 오가는 비행기를 손에 꼽을 수 있는 섬의 한적한 공항. 텅 빈 활주로는 내리는 빗물로 가득 채워진다.
집으로 돌아오니 닷새 동안 오롯이 혼자 지냈던 단비가 황망한 눈빛으로 나를 맞는다. 마실 물을 새로 떠 주고, 사료를 채워 주고, 좋아하는 통조림을 따 주고, 지저분해진 모래를 갈아 주었다. 의자에 앉아 이름을 부르자 망설이던 단비가 무릎에 올라와 엎드린다. 한참 말을 걸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비로소 잠이 든다. 다리가 저려 깨어 보니 새벽이다. 여행의 피로에 지친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나 보다. 이제는 두려움이 가신 눈빛으로 단비가 나를 바라 본다. 은희경은 여행이란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이라고 했다. 단비와 내가 돌아온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