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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Nov 26. 2015

내 혀는 칼이 되어

누군가는 겪었을 인간관계의 어려움

내 혀는 칼이다. 작심하고 휘두른 나의 칼은 상대의 심장을 겨누고 폐부를 찌른다.

내게 일격을 당한 상대는 저항을 시도하지만 결국 내상을 입은 채 물러선다. 물러서되 그냥 물러서는 일은 드물다. 상대는 그동안 이어져 온 동맹을 완전히 끊는 방식으로 칼끝을 내게 돌린다. 예상을  뛰어넘는 상대의 반격에 나는 휘청이며 상처를 입은 채 한동안 회복하지 못한다.


상대에게 '작심'을 하기 까지는 일정한 과정을 거친다. 상대방이 같거나 비슷한 무례 또는 실수를 거듭한다. 그에 대해 반복해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원하는 바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되지 않을 때, 내 의견이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지 주변인들에게 묻고 상의하고 확인한다. 그로 인해 확신을 가진 나는 드디어 '작심'을 하되, 상대에게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지난 과정을 복기해주고 개선 또는 사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상대가 지난 일에 대해 부인하거나 거짓을 말하거나 기억이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사과나 개선을 거부했을 때 또는 적반하장식으로 내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려 했을 때, 자제력은  바닥난다.

호흡은 가빠지며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에서는 레이저가  발사된다. 언어는 거칠어서 때로는 욕설을 동반하며, 비아냥과 조롱이 듬뿍 담긴 표현으로 상대의 인격과 자존심을 지하 깊숙한 곳으로  끌어내린다. 이럴 때 상대의 반응은 두 가지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개선을 약속하는 경우(의도하고 바라던 최선의 결과다). 다른 경우는 여전히 인정도 사과도 없이 반발해서 나보다 더 독한 언어와 표현을 쏟아 낸 후 관계를 정리한다. 같은 조직에 속한 경우라면 그 조직을 즉시 떠나는 방식으로 나는 물론 함께 속했던 조직과의 관계마저  정리한다.


관계나 업무 또는 친목의 개선을 위해 작심했던 나의 시도는 이럴 때 최악으로 결론을 맺는다. 나의 오해나 실수는 없었는가 사실관계는  틀림없는가 복기를 해 보지만 사태가  일어나기 전과 후에 크게 다른 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생각이 옳았음을 재 확인하게 된다. 주변인은 내 생각은 옳되 그 표현의 수위에 관해 지적한다. 욕설이 섞인 말을 해서 그렇다거나 표정이 너무 무서웠다거나 목소리가 너무 컸다거나 하는 식인데,

결국은 분노의 표현이 지나쳐서 상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도라는 얘기다.

이런 패턴을 깨닫기까지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특히 지난 1 년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됐고,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후배가 나와의 심각한 통화 이후 탈퇴를 했고, 같은 동호회의 동기는 몇 차례 마찰을 겪은 후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끊었다. 회사의 부하 직원은 내게 지적을 받고 사표를 냈다가 철회를 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나보다 높은 직책을 가진 임원이 나의 항의를 받은 후 회사를 나갔다. 곧 번복하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상하 간의 마찰에서 상사가 사표를 던지는 듣도 보도 못한 경우에 난 다소 충격을 받았다. 지난 주말 장례식장에서는 그 전에 여러 친구들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친구에게 강하게 사과를 요구했는데, 사과는 받아 내기는 했지만 그 친구도 밴드에서 탈퇴를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잘못은 인정한다는 점, 그리고 심하게 자존심을 다친다는 점이며, 이후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단절된다는 점이다. 개선을 위해 시작한 일이 결국은 서로 상처만 받은 채 관계가  악화되는 일이 반복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상대를 설득할 만한

 '적당한 선에서 얘기하면 되지 않느냐'는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적당한' 정도가 얼마만큼 인지 잘 모르겠다. 두서너 번 반복해서  얘기할 때야 물론 좋게 차분히 얘기하지만 그래도 개선이 안 된다면 자극을 줘서 각성을 일으켜야 하지 않는가. 나는 상대에게 주는 그 자극의 수위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이든 책으로 접근하는 습관을 가져서 이번에도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를 주문했다. 이 책에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문제를 알았으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턴을 만들어가야지 않겠는가 하는 절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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