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푸레 Nov 30. 2015

죽음을 보는 눈

시신 부검을 참관하고 나서

새벽의 시체실은 5월에도 스산했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서랍식 시체 보관함의 차가운 색감에 대형병원 지하라는 공간감이 더해져 한층 서늘함이 느껴졌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병원 담당자가 냉장 서랍을 열자 천에 덮인 루이스의 시신이 밀려 나왔다. 들것 모양의 운반구를 내가 앞쪽에서 들고 김 과장이 뒤쪽에서 들었다.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 탔지만 우리는 들것을 그대로 든 채 서있었다. 건장했던 남자 시체의 무게는 둘이 감당하기에 벅찼다.  루이스를 덮은 천에서  드라이아이스의 냉기가 배어 나오는  듯하다. 김 과장은 한시바삐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픈 기색이 역력하다. 고작 1 개 층을 오르는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시신을 운송차에 싣고는 내 차에 김 과장을 태운 채 운전해서 시신을 운반하는 차의 뒤를 따랐다. 


"꼭 우리가 시신을 직접 운반을 해야 하나요."

차에 올라 탄 김 과장이  볼멘소리를 내뱄었다. 


대전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부검을 참관하러 가는 내내 머릿속은 사흘 전 루이스의 죽음으로 복잡했다. 공장에서는 노동절을 맞아 체육대회를 열었다. 하루 12시간 주야 2교대로 근무하던 직원들은 모처럼  바깥바람을 쐬었다. 공단의 운동장을 빌려서 더러는 축구를 했고 더러는 구경을 하며 회사에서 준비해 준 맥주와 고기를 즐겼다. 국적은 달랐지만 따듯한 봄볕 아래서 여유로운 하루였다. 체육대회가 마무리될  때쯤 직원들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집으로 향하던 길에 전화벨이 울렸다. 


"기숙사에 있던 직원이 죽었어요"

현장 책임자의 당황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아득하게 들려왔다. 

두어 시간 전까지 운동장에서 함께 먹고 마시던 직원인데 먼저 회사로 돌아갔던 모양이다. 낮잠을 잤다는데 말로만 듣던 자다가 죽은 경우다. 루이스는 필리핀의 어느 섬 출신의 노동허가증이 없는 직원이었다. 20대 후반으로 건강한 편이었는데 급사를 했다. 서울의 본사에서는 조용히 처리하라는 지침이 내려왔고, 뜻하지 않은 지사의 사망사고에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루이스가 사망한 다음날 어떻게 알았는지 지역의 가톨릭 노동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국내에 연고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의 편에서 이런저런 편의를 제공해 주고 권리를 찾도록 돕는 일종의 봉사단체다. 회사에서는 죽은 루이스의 가족에게 적절한 보상과 장례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가톨릭 단체가 개입하면서 일이 복잡해졌다. 

이 단체는 이번 일을 이슈화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높이는데 활용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급기야 지상파 방송사의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회사로 들이 닥쳤다. 난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지만 노련한 기자는 대화를 나누는 척 테이블 아래로 촬영을 했다. 그날 저녁 9시 뉴스에 내 하반신과 목소리가 죄인처럼 나오는 장면을 TV로 봐야 했다. 방송에서 내 목소리를 알아챈 지인들 몇몇은 나를 걱정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잠시 후 목적지인 대전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도착하면 가톨릭 노동단체의 활동가와 만나기로 돼 있었다. 루이스의 부검에 사측 대표인 나와 죽은 루이스의 가족을 대리하는 활동가가 참관하도록 검찰에서 명령을 내린 때문이다. 노동지청과 경찰서 근로복지공단 검찰청 등에 불려 다니느라 몸은 파김치가 돼 있었다. 

10여 년 전 일이므로 지금은  현대화된 시설로 바뀌었을지 몰라도 당시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시설이  낙후돼 있었다. 시신을 내려서 그 곳의 직원들에게 인계하고 가톨릭 단체의 활동가와 함께 참관실로 들어 갔다. 나이 든 남성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활동가는 20대의 여성이었다. 김 과장은 참관이 싫었는지 밖에서 담배나 피우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한 평 남짓한 참관실은 조명이 부검실을 향해 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형광등 불빛이 전부였으로 서로의 얼굴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웠다. 간단히 목례를 나눈 우리는 나란히 서서 부검 과정을 지켜봤다.


부검실은 규모가 큰 레스토랑의 주방처럼 보였다. 모든 집기며 가구가 차가운 스테인리스 재질로  구성돼 있다. 벽면을 따라 개수대나  조리대처럼 생긴  통들이 배치돼 있고, 시체를  절단할 때 쓰이는 것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모두 처음 보는 도구들이었는데 기시감이 느껴졌던 건 아마도 공포영화에서 보았던 비슷하게 생긴 흉기를 떠올렸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진녹색의 수술복을 입은 담담 의사가 부검실로 들어서서 기다란 식탁 모양의 스테인리스 대 위에 놓인 루이스의 시체 앞에 섰다. 부검의는 초점 없는 눈으로 루이스를  내려다보더니 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한숨부터 내 쉬었다. 어젯밤의 과음으로 숙취가 덜 풀린 상태가 분명해 보였다. 조수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한 부검의는 막상 부검이 시작되자 노련하고 능숙한 솜씨로 시신을 해부해 나갔다. 해부는 머리 부분부터  시작됐다. 그라인더처럼 회전하는 동그란 전기 톱날로 머리의 정 중앙을 갈랐다. 그리고 가슴과 배를 여러 도구를 사용하여 절개했다. 

취사반에서 근무했던 군대 시절이 떠 올랐다. 추석이나 설 또는 체육대회가 있을 때면  공급된 돼지를 두세 마리를 요리해서 대대원들에게 제공해야 했다. 돼지는 산 채로 트럭에 실려 왔고 이등병  시절부터 제대할 때까지 열댓 마리의 돼지를 잡았다. 돼지의 대가리를 해머로  내려친 후 멱을 따서 피를 빼고 배를 갈라 창자와 뼈와 살을 분리했다. 내가 고참이 됐을 때 신참들은 돼지 잡는 일을 피해 산으로 도망치는 놈도 있었고, 내게 돼지 잡는 일에서만은 빼 달라고  사정하는 놈도 있었지만 결국 고참이 되면 능숙하게 돼지를 잡았다. 동물 중에서 돼지의 장기가 사람과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돼지를 창자를 분리해 큰 대야에 옮겨 담을 때면 이상하게도 사람의 장기도 이렇게 생겼겠구나 하고 떠올리고는 했다. 


부검이 끝났다는 통보를 받고 부검실로 들어가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 루이스를 들것에 옮겨 김 과장과 함께 들고 나왔다. 시신은 얇은 천으로 덮여 있었는데 절개한 부분을 대충 꼬매 놓았는지 들것 옆으로 시신의 일부가  삐져나온 게 보였다. 시신을 차에 옮기고 난 후 김 과장은 참았던 구역질을 했다. 가톨릭 활동가를 먼저 보낸 후 나무 그늘 아래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비교할 바는 물론 아니지만 동물과 사람을 해부하는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얼마 후, 국과수로부터 루이스는 심장마비에 의한 자연사로 결론이 났다. 유가족과 가톨릭 단체와의 협상도 어렵긴 했지만 비교적 원만히  해결돼서 루이스를 필리핀으로  떠나보냈다. 10여 년이 지난 후  그때의 일을 기록하는 건 막연한 공포감을 객관화 시키고 결국은 잊기 위해서다. 루이스의 주검을 내손으로 옮기고 부검을  지켜본 나는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그 후에도 몇 차례 가깝거나 먼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고 난 뒤에 생각이 차츰 바뀌었다. 생명을 다 한 인간의 육신은 그저 뼈와 가죽이 남을 뿐이다. 망자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은 정성을 다 해야겠지만 주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부질없는 일이다. 사후에 육체가 바람직한 일에 쓰일 수 있다면 나의 시신 기증 여부를 더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사진은 <사진은 권력이다> 티스토리에서 캡쳐했슴을 밝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혀는 칼이 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