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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Jan 12. 2016

집고양이와 길냥이의 삶

누가 더 행복할까?

지난한 숙고의 과정을 거쳐 혼자 살던 집에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 키우기 시작했던 어느 해 겨울. 사무실 창 밖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 밖에는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다가 서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서 있었다. 경계 어린 눈빛이 뚜렷했고 먹을 것을  찾아왔음이 분명해 보였다. 공장 앞 매점에서 참치캔을 사다가 따 먹이는 것으로 길고양이들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제법 큰 산자락 아래 위치한 공장에는 연못을 포함한 넓은 정원을 갖고 있다. 현장 아래 비탈에는 큰 바위들로 옹벽을 쌓아 둬서 고양이들의 은신처가 되기 좋았다. 길고양이들은 공장 직원들이 먹다 버린 간식이나 음식 쓰레기로 연명했는데,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겨울엔 그나마도 주워 먹을게 없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단비'의 사료를 출근길에 들고 와 사무실 앞마당에 놓아 주니 어느새 인지 모르게 와서 먹고 갔다.

 


길고양이가 몇 마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단비의 일주일 치 사료가 하룻저녁이면 없어졌다. 연어와 각종 유기농 채소가 함유되어 개별 포장된 최고급 사료를 더 이상 제공하기 어려워졌다. 대형 할인 매장에서 포대째 사료를 사서 아침마다 마실 물과 함께 듬뿍 퍼주기를 계속했다. 어느 날 출근길, 공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향하는데 고양이 두 마리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를 기다렸던 걸까. 사무실로 향해 걷기 시작하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온다. 나를, 아니 아침밥을 주는 나를 기다렸나 보다. 그날부터 길냥이들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나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길냥이들은 공장을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영역을 차지했다. A 구역은 사무실 앞 화단과 잔디밭, B 구역은 재활용 쓰레기 하치장과 담벼락 쪽 그리고 C 구역은 공장 바깥에 거주하면서 가끔씩 침입하는 녀석들. 암고양이들은 일 년에 한두 번 꼴로 새끼를 낳았다. 바깥에 나가서 새끼를 배 오는지 가끔 공장에 들어오는 수고양이가 일을 저질러 놓고 가 버리는 건지는 모르겠다. 한 배에 두 마리에서 네 마리까지 낳았다. 대개는 잘 자랐지만, 겨울에 태어난 새끼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한 채 죽어 가는 경우도 있었다.

 


각자의 영역을 차지하고 지내던 놈들이 며칠이나 몇 주 씩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떠나 버렸나 보다 하고 체념할  때쯤 다시 돌아와 사료를 챙겨 먹으며 지내는 녀석도 있었고, 기대와는 다르게 어디론가 아주 없어져 버리는 놈들도 있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길냥이들은 태어나고 죽고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는데, 터를 잡고 상주하는 고양이들의 숫자는 서너 마리 정도로 늘  유지됐다. 스스로 개체수를 유지하는 건지 우연히 그렇게 되는 건지 역시 모를 일이다.



나중엔 포기했지만 처음엔 녀석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도 했다. 몸의 무늬나 색깔을 따라 '누렁이' '얼룩이' 또는 '고등어' 등으로 불렀다. 요즘 일본 작가 다카하키 겐이치로의 소설을 읽다 보니 '365일의 반찬 백과'라던가 '다자이 오사무 주간'같은 고양이 이름이 나온다. 작가는 샴 고양이 한 쌍에게 '소켓'과 '플러그'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도 한다. 그들과 비교하니 내가 붙여 준 이름들은 너무도 평범하고 창의적이지 못해서 누렁이와 얼룩이 고등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그러하듯 고양이들의 성격도 저마다 달랐다. 가령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단비'는 흔히 말하는 개냥이다. 고양이 특유의 시크함 따위는 개나 줘 버렸고 늘 사람을 졸졸  따라다닌다.  잠잘 때는 내 침대의 머리맡이나 발치에 붙어서 자고, 소파에 앉으면 냉큼 무릎에 올라와 가르랑 거린다. 반면에 공장의 길냥이들은 대개 사람을 경계한다. 일정한 거리 이상을 허용하지 않고 주변을 살핀다. 유일하게 손길을 허용할 때는 사료에 정신이 팔려 흡입하는 시간인데, 그 마저도 허용치 않고 도망가는 녀석도 있다. 공장의 유일한 개냥이는 담벼락 쪽 B 구역에 자리를 잡은 '고등어'다. 이 녀석은 사람들에게 머리를 쿵 부딪히거나 몸으로 다리 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는 등 애교를 부리고 친근감을 표현한다. 덕분에 공장의 외국인 직원들로부터 갖가지 먹거리를  제공받으며 자라났다.



최근에 공장 내의 고양이들이 지켜오던 자기 영역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A 구역에서 삼 대를 낳고 기르던 늙은 어미 고양이가 어디론가 떠났고, 2 대 째 암고양이가 아픈 기색을 보이더니 어느 날 사라졌다. A 구역에는 삼사 개월 된 새끼 고양이 두세 마리만 남게 됐는데, B 구역의 '고등어'가 A 구역을 점령해 버렸다. 어떻게든 새끼 고양이들과 사이좋게 동거하기를 바라며 사료를 더욱 많이 줬지만 B 구역에서 넘어온 '고등어'는 점령한 A 구역을 새끼들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사무실 뒤편으로 쫓겨난 새끼 고양이들을 위해 사료를 따로 놔 주었다.

 


자기 영역을 지키며 순응하는 고양이들은 발육도 좋고 안전하게 지낸다. 몇 주간 밖으로 떠돌다 돌아온 고양이들은 털이 지저분하고 비쩍 말라서 개고생을 한 모양이 역력하다. 태어난지 몇 달 되지 않은 어린 새끼 고양이가 작은 새를 사냥하는 광경을 놀랍게  지켜본 적이 있다. 사냥 본능이 충만한 그 고양이는 얼마 되지 않아 공장을 떠났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단비'는 따뜻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좋은 사료와 간식을  공급받으며 지내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보낸다. 출장이나 여행으로 집을 비울 때 길게는 일주일 가까이 혼자 지내는 일도 있다.



과도한 비유일지 모르나 가끔 고양이와 사람의 삶을 비교해 본다. 월급의 노예가 되어 직장에 안주하는 사람과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이나 이직을 감행하는 사람. 

안정되지만 속박된 삶과 배가 고플 수도 있고 더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지만 자유로운 삶. 어떤 선택이든 각자의 몫이며, 온전히 자기의 책임일 테다.
사람이든 고양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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