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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Mar 20. 2016

지심도를 되돌아 보며

목련처럼 피어나 벚꽃처럼 살다가 동백처럼 지리라


작가 김훈은 동백에 대해 이렇게 썼다.

‘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김훈을 읽고 난 이렇게 희망했다.

목련처럼 피어나 벚꽃처럼 살다가 동백처럼 지리라

 


구미에서 차로 두어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남해바다의 풍광은 경북지방과 사뭇 달랐다. 백매화 홍매화가 다투 듯 피어났고 온 산이 봄기운을 잔뜩 머금은 채 사춘기 소녀의 볼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무들은 발 뒤꿈치를 들어 먼 바다로부터 훈풍이 불어오기를 조바심했다. 거제 장승포항에서 잠깐 졸다 보면 닿을 거리의 지심도. 섬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음 심心 자를 닮았대서 지심도라 부른다. 해송, 후박나무, 팔손이 등 남쪽 땅에서 자생하는 나무들이 빼곡한데, 그 중 70%가 동백이다. 해가 덜 드는 곳엔 동백꽃이 아직 피지 못했고, 해가 잘 드는 남쪽에는 동백이 피고지기를 반복하거나 빼곡하게 피었다.  

 

서른 가구가 산개해 사는 작은 섬은 한 시간 반이면 걸어서 일주한다. 동백나무가 빽빽히 하늘을 가린 오솔길 위로 걷는다. 직박구리가 지껄이는 숲길을 지나면 어느새 깎아지른 절벽에 이른다. 남해의 바다색은 짙푸르지만 어딘지 붉은색을 품었다.



 남해바다는 쉴새 없이 지심도 바위에 제 몸을 하얗게 부딪쳐 온다. 남해가 붉은 건 지심도의 동백이 봄마다 파도에 투신했기 때문이리라. 섬에서 나가는 뱃시간이 정해진 터라 걸음을 서두른다. 떨어진 동백이 발에 밟힐까 저어하며 걷는다. 붉은 동백이 지고 소란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 해질 때쯤, 섬에서 나가는 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쯤, 절벽에 앉아 마음에 드는 시 몇 편 웅얼거려도 될 때쯤, 막걸리 두어 주전자를 얼큰하게 비워도 좋을 때쯤 다시 찾고 싶은 섬이다.

고수리작가의 브런치를 읽고 작년에 쓰고 찍었던 글과 사진을 여기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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