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처럼 피어나 벚꽃처럼 살다가 동백처럼 지리라
작가 김훈은 동백에 대해 이렇게 썼다.
‘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김훈을 읽고 난 이렇게 희망했다.
목련처럼 피어나 벚꽃처럼 살다가 동백처럼 지리라
구미에서 차로 두어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남해바다의 풍광은 경북지방과 사뭇 달랐다. 백매화 홍매화가 다투 듯 피어났고 온 산이 봄기운을 잔뜩 머금은 채 사춘기 소녀의 볼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무들은 발 뒤꿈치를 들어 먼 바다로부터 훈풍이 불어오기를 조바심했다. 거제 장승포항에서 잠깐 졸다 보면 닿을 거리의 지심도. 섬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음 심心 자를 닮았대서 지심도라 부른다. 해송, 후박나무, 팔손이 등 남쪽 땅에서 자생하는 나무들이 빼곡한데, 그 중 70%가 동백이다. 해가 덜 드는 곳엔 동백꽃이 아직 피지 못했고, 해가 잘 드는 남쪽에는 동백이 피고지기를 반복하거나 빼곡하게 피었다.
서른 가구가 산개해 사는 작은 섬은 한 시간 반이면 걸어서 일주한다. 동백나무가 빽빽히 하늘을 가린 오솔길 위로 걷는다. 직박구리가 지껄이는 숲길을 지나면 어느새 깎아지른 절벽에 이른다. 남해의 바다색은 짙푸르지만 어딘지 붉은색을 품었다.
남해바다는 쉴새 없이 지심도 바위에 제 몸을 하얗게 부딪쳐 온다. 남해가 붉은 건 지심도의 동백이 봄마다 파도에 투신했기 때문이리라. 섬에서 나가는 뱃시간이 정해진 터라 걸음을 서두른다. 떨어진 동백이 발에 밟힐까 저어하며 걷는다. 붉은 동백이 지고 소란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 해질 때쯤, 섬에서 나가는 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쯤, 절벽에 앉아 마음에 드는 시 몇 편 웅얼거려도 될 때쯤, 막걸리 두어 주전자를 얼큰하게 비워도 좋을 때쯤 다시 찾고 싶은 섬이다.
고수리작가의 브런치를 읽고 작년에 쓰고 찍었던 글과 사진을 여기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