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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Jan 15. 2017

야쿠르트 대리운전

우연히 만난 토요일

늦은 겨울밤. 제법 술에 취했다. 스마트폰의 벨이 울린다. 발신자는 야쿠르트 아줌마.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야쿠르트 아줌마라니. 잘못 걸린 전화인가 싶었지만 짧은 순간 어렵게 상황판단을 해 본다. 수 년 전부터 아침마다 우리회사에 야쿠르트를 넣어 주던 아주머니가 투잡을 하시는구나. 아주머니 핸드폰에는 내 번호가 저장돼있지 않았나보다. 유난히 추운날이다. 오늘은 올 겨울들어 가장 매서운 한파라는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두어 번의 통화 끝에 내가 있는 위치를 찾은 아주머니는 정확한 주차위치를 알려주지 않은 내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변명아닌 변명을 해야 했다. 운전석에 앉은 아주머니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매일 아침 우리회사에 배달 오는 그 아주머니가 틀림없다.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가 아니었더라면 나 역시 아주머니를 알아 보기는 어려웠으리라.


뭐라 말을 해야하나... 아는체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짐짓 모른체 말을 붙여 보지만, 아주머니는 내가 멀리 떨어진 공단의 고객이라는 생각은 전혀 는 눈치다. 하긴 수많은 고객을 상대하는 아주머니가 한 달에 한두 번 마주칠까 말까하는 내 얼굴을 기억하기는 쉽지않을테다. 나를 처음 대하는 대리운전 고객이라 생각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연스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보통 몇 시까지 운전 하세요?

평일에는 새벽 두 시, 주말에는 서너 시까지 해요.

새벽까지 대리운전 일을 하고 다시 이른 아침에 야쿠르트를 배달하러 공단 곳곳을 누비는 셈이다. 그렇다면 잠은 언제 잔다는 말인가. 술 때문인지 가슴이 먹먹다.


아주머니는 아이가 셋인데 직장에 다니는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맞이인 딸은 서울의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하숙비에 개인 레슨비를 대 주려면 큰아이 앞으로 돈이 제법 들어가는 모양이다. 게다가 노후의 생활도 대비해야겠기에, 한달에 십만 원이나 이십만 원  납입하는 적금이나 보험을 몇 개 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삼 년만 고생하면 조금은 형편이 나아질거라 말한다. 이유를 물었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에 진학하는 막내 아들이 졸업 후에는 군대를 갈테니 지출이 줄어들거라는 얘기다. 수입이 늘어서든 지출이 줄어서든 나아진다니 다행이다 싶다가 무슨 뜬금 없는 오지랖인가도 싶다.


대리운전은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 한 곳만 몇 년째 이용 중이다. 하필이면 오늘 10회 이용에 1회 무료 혜택을 받는 날. 콜센터와 통화를 할 때는 무료이용 혜택을 오늘 쓰겠노라고 했지만, 차에서 내릴 때 현금을 건넸다.

무료이용 안하시고요?

네. 다음에 쓰려고요. 돈 받아가세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받아든 야쿠르트 아주머 아니 대리기사는 차가운 밤 속으로 되돌아 걷는다. 오늘 낮에 볼일이 있어 강변을 걸었더니 볼이 얼얼하던데, 혼자 걷는 공기는 얼마나 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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