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남한강의 일요일
삼십 년 지기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 방배동 좁은 길에 촘촘히 심어진 굵은 플라타너스 위로 눈이 내린다. 여주의 콘도에 미리 도착한 친구들은 돌아가며 내게 연달아 전화를 한다.
다들 모여 기다리는 중이니 빨리 와라.
아니다 길이 미끄러우니 천천히 와라.
미안하지만 배가 고파서 먼저 저녁 먹으러 간다.
안 가고 기다리고 있다. 얼마 후면 도착하냐.
기다리다 식당으로 자리 옮겼으니 그리로 와라...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들은 일정에 대한 각자의 주장을 쏟아내고 있는 터였고, 정리되지 않은 얘기들를 결정된 의견인 양 내게 전한다. 듣기 좋은 소란함과 적당한 무질서가 정겹게 들린다.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눈길을 헤쳐 운전한다. 공황장애 증세가 아직 남아있어 평소 막히는 터널은 피해 다니지만, 오늘만큼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우회도로보다는 빠른 터널을 지난다. 다행히 생각보다 길이 막히지 않는다.
도착하니 술자리가 한창이다.
염색약에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의 머리카락은 지나온 길에 쌓인 눈처럼 하얗다. 발모제도 바르고 한때 가발을 쓰고 다녔던 친구는 이제 남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겠다는 듯, 듬성듬성해진 머리를 그대로 노출한 채 싱겁게 웃는다. 몇 년 전 사업을 시작한 친구는 허리둘레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간다.
친구들은 변했거나 변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고 내 말 좀 들어보라"며 늘 자신만을 호소하던 친구는 여전했지만 아무도 그 친구의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그 친구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힘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종교에 심취한 다른 친구는 교회에 가야 한다며 다음날 아침도 거르고 서울로 출발했다.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래처를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담당 임원에게 접대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종교가 매출액을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다음날 아침. 몇몇은 먼저 떠나고 몇몇은 사우나를 하고 몇몇은 해장국을 먹으며 숙취를 달랬다. 우리는 봄에 다시 만날 기약을 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친구와 단 둘이 남한강변을 산책했다. 귀촌해서 나무를 키우며 사는 친구는 자연에 비하면 인생의 길이는 순간이라며 속 깊은 말을 던진다. 친구는 몇 해 전 어린 아들을 세상으로부터 먼저 떠나보냈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며 살아갈 계획이라고 한다. 자신과 아들을 망친 건 까닭 모를 욕심 때문이었다며 초연한 듯 음성이 적요하다.
밤새 내린 눈이 절집 마당에 소복하다. 한편에는 육백 년이 넘었다는 향나무가 고고히 섰다. 눈 위에 찍힌 우리의 발자국을 따라 되돌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