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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Mar 29. 2017

정치의 수준

다시 돌아온 수요일

국가 지도자의 수준은 국민이 결정하 듯, 정치인의 수준 역시 그 지지자가 결정한다. 누구나 어떤 정치인의 지지자이자 비판자인 우리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 무릇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와도 같아야 하며, 토라지고 심술 난 애인과 같아야 한다. 이런 태도는 적어도 일정한 시점까지는 그래야 한다. 요즘 한창 진행 중인 각 당의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에 직간접으로 참여 중인 지금이 그렇다.


어떤 정치인에 빠져서 "무슨 무슨 빠" 소리 들어가며 열렬히 지지하는 거 좋다. 내가 가지지 못한 그런 열정,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합리적인 비판은 받아들이자. 가령, 모 후보가 인터뷰에 나와서 버벅대고 토론에서 질문과 동떨어진 답변을 한 지점에 대해 지적을 하면, 그 후보의 열혈 지지자는 자기가 보기엔 괜찮았다고 한다. 버벅댄 후보자나 좋다는 지지자나 다시 돌아보게 된다. 누구나 단점은 있다 그 단점에 대한 비난이 아닌 개선을 위한 지적 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독선에 빠지게 된다. 


호감을 갖고 있던 정치인이 지속적인 헛발질을 할 때. 그 헛발질이 실수가 아닌 신념에 의한 것일 때. 혹은 정치적 지향점이나 노선이 다르다고 판단됐을 때. 그에 대해 마땅히 비판해야 한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을 때, 나아가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 철회한 후 차선의 정치인을 찾아내서 지지해야 한다. 관심과 발견, 지지와 비판, 철회와 재발견, 이것이 정치의 발전이다.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순애보가 아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는 지지자들에게 딱 맞는 말이다.


자기 진영에 대한 비판을 무조건 터부시 하는 지지자도 있다. 비판이나 지적이 싸움으로 번져 판이 깨질까 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그런 노심초사는 이해되지만, 입막음으로 뻔한 잘못을 덮을 수 없다. 적어도 예선전에서는 공개하고 지적하고 비판해서 보완해야 한다. 예선을 통과한 선수가 본선에 오른다면 그때 실드를 쳐 주면 된다.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선수가 광야에 나가 싸우다가는 감기로 그칠 병을 폐렴으로 번져 중상을 입고 패하게 된다. 


나처럼 잡문이나 쓰던 네티즌이 갑자기 논객 노릇하겠다고 나서는 걸 목도한다. 수준이 고만고만한 게 뻔히 보이는데 문장의 구성이나 형식만을 갖춰 정치평론가 행세를 한다. 다른 지지자들을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한다. 정치인 당사자가 아닐진대 후보자의 발언이나 행위의 배경을 단정한다. 가정에 가정을 더해 예단한다. 'A라면 B가 되니까 C일 것이다'라는 식이다. 이런 논리의 전개에서 A가 아니라면 B가 아니며 당연히 C는 성립할 수 없다. 여기서 A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마치 자신이 후보자의 머릿속에라도 들어가 보기라도 한 듯, 캠프의 핵심 관계자라도 되는 듯한 글에 실소를 멈추기 어렵다.


선거는 정치의 축제다. 지금까지 현대사에서의 선거판이 투쟁의 장이었다면, 이번 선거만큼은 그야말로 축제다. 각 지지자들은 마음껏 즐겨도 좋다. 다만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자를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만큼은 유지해보자. 억지와 부정, 현실 회피와 외면, 강변과 비난은 누워서 침 뱉기다. 첫 문장을 뒤집으면, 나의 수준이 정치 수준을 결정할 것이며 그 정치인이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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