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화요일
맥주잔에 생맥주를 칠 할쯤 따르고 남은 삼 할을 소주로 채웠다. 맞은편에 앉아 머뭇거리던 멤버가 나를 따라 맥주에 소주를 말았다. 나머지는 각자의 취향대로 맥주 또는 소주로 잔을 채우고 서로의 잔을 맞부딪쳤다. 권여선의 단편집 '안녕 주정뱅이'를 읽은 후 커피잔을 앞에 놓고 소설을 논하는 것은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술이 한 순배 돌자 조금 더 솔직해졌고 서로에게 너그러워졌다.
작가 김연수는 말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자주 서로를 오해하는데, 그건 대화를 통해 우리는 진짜 욕망이 아니라 가짜 욕망을 서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나와 타인이 서로 다르며,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본심에 가 닿을 수 없다는 전제가 없다면 선을 행하는 게 어려워진다'라고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지만 '가짜'보다 '진짜'가 교환된다면 물론 서로의 오해가 줄어들 테다. 술은 서로의 차이에 대해 관대하고 본심에 접근하게 해주는 촉매제다. 30년 음주 이력의 권여선 작가가 지속적으로 술에 관련된 소설을 써 왔고, '안녕 주정뱅이'에서는 모든 단편에 술이 등장한다. 책을 읽은 후 술잔을 앞에 놓고 서로의 감상을 교류하는 일은 독자의 권리이자 의무다.
작가 권여선은 말했다.
"책을 묶고 보니 소설집 전체를 아우를 만한 제목이 없더라고요. 전혀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술이 빠지지 않는 작품들이 모아진 김에 한 번쯤 정리하고 지나가면 어떨까 했어요. 저와 작품 속 인물들, 또 각 작품 속 인물들끼리도 서로 '안녕' 하며 인사를 나누고 술 한잔하면 좋겠다는 마음이랄까요."
누군가는 책 제목에서 '안녕'의 의미가 'Hi'라고 했고 누군가는 'bye'라고 해석했지만 둘 다 맞기도 틀리기도 한 말이다. 작가는 인물들에 자신을 투영하고 독자 역시 스토리에 자신의 상황을 이입한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썼건 해석은 독자의 몫이며, 해석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풍성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소설의 이면을 보고 다른 작가와 작품들과 탁월하게 비교 분석해 내는 토론 참석자들의 언어를 옮길 기억력도 재주도 내게는 없다. 다만 그들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이미지로 각인될 뿐이다. 나는 고작해야 책의 오탈자나 지명 혹은 도로명의 오류나 발견해 내는 직업병적인 탐닉뿐이다.
'봄밤'에 사지와 심신이 멀쩡한 독신자들이 대여섯 명이 모여 알콜중독자와 중증환자 그리고 저마다의 결핍과 불운을 타고난 캐릭터들을 관조한다. 벚꽃잎이 난분분히 날리는 길을 '삼인행'으로 떠났던 것처럼 소설 속을 유영한다. 허영심은 지적인 영역에서 조금은 관대하다. '이모'에서 때로는 어머니를 혹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각자의 '카메라'에 담긴 프레임과 서로의 피사체를 기웃거린다. '역광'때문에 실체가 실루엣으로 치환되지만 어느 쪽이 본질인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술에서 깨어 보니 계단참에 남겨진 '실내화 한 켤레'처럼 어제 술집에 두고 온 책이 생각났다. 책 보다 더 풍성한 얘기들을 들었으니 두어도 좋으련만 책 주인이 도서관인지라 찾으러 가야겠다. 혹시 알텐가 술집이 위치한 '층'에서 우연히 지인과 조우하는 일이 생길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