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목요일
영화가 19금인 이유는 대마초가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 외에는 없다. 영국 어촌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선한 사람들의 마음을 그린 영화. 굳이 악인을 고르라면 영화의 주인공 그레이스에게 빚더미를 떠 넘긴 채 목숨을 끊은 그녀의 남편일 뿐이다. 아름다운 집과, 그보다 더 아름다운 온실과,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그레이스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는 이야기.
'오 그레이스'는 우리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닮았다.
영화에서 대마초 더미를 불태우던 중 무심코 온실 문을 열자 정원 가득 대마 연기로 하얗게 뒤덮인다. 경찰과 범죄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대마 연기에 취해 함께 어우러져 한낮의 파티를 벌인다. 이 장면은 '웰컴 투 동막골'에서 수류탄에 의해 옥수수 창고가 폭발하며 팝콘이 온 하늘을 덮고 마을 사람들의 머리 위로 눈처럼 쏟아지는 장면을 떠올린다. 다툼과 갈등 중에 벌어지는 유머러스한 반전.
영화에서 대마초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행복하며 중년의 아저씨든 노년의 여인이든 모두를 어린아이로 만든다. 대마초가 선한 이들에게 만 선하게 작용하는 게 아니라면, 정부는 마땅히 대마초를 합법화해야 할 일이다. 내가 대마를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술은 허용하면서 대마를 허용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영화의 대사에 막연히 공감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스스로 행복한 것이라면 마약이든 동성애든 종교든 윤리든 또는 어떤 사랑이든 구속으로부터 해방하라.
심하게 토라졌던 임신 한 여자 친구는 바다 저편의 애인이 큰소리로 '사랑한다'라고 말하자 일순간 마음이 풀어져 버리고, 그레이스와 처음 대면한 마약거래상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죽어가던 대마가 온실에서 최상급으로 풍성하게 자라나고, 파산했던 그레이스가 자전적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갈등의 해소는 너무도 쉽게 일어나지만 그 어느 장면도 억지스럽지 않다. 따뜻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배려는 핍진성이 좀 결여됐다 해도 관객으로부터 너그러이 용서받는다.
그레이스가 불행을 당하자 동네 마트의 주인은 25센트짜리 물건을 단돈 5센트에 특별판매라는 명목으로 팔고, 길거리에서 자선모금을 하던 주민은 그레이스가 동전을 넣으려 하자 한사코 모금함을 감춘다. 서로를 의심하고 시기하며 반목하거나 아니 서로에 대한 어떤 관심조차 없이 마을공동체가 사라진 세상. 조건 없이 마음을 내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푸근한 평온과 잔잔한 미소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숨겨진 영화 '오 그레이스'(Saving Grace). 스펙터클과 화려한 장면과 임팩트 강한 감동이 관객을 불러 모으는 영화들의 전성시대. 그 모든 영화적 요소를 배제한 채, 그저 선한 사람들의 '마음'만을 전하는 '오 그레이스'를 인생영화로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영화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 분명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