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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May 30. 2017

등심·안심·육회·등갈비...

열여섯살 아들과 보낸 사흘

지난 글과 같은 이유로 2014년 7월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옮겨 옴.




아들은 서울행 고속버스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내게 아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읽던 책에 시선을 고정할 뿐이었다. 처음으로 열여섯 살 아들과 단둘이서 지낸 2박 3일은 서울행 버스가 출발하면서 막을 내렸다. 


피치 못할 사유로 자의 반 타의 반 '기러기 아빠'로 살아온 세월이 벌써 2년 반. 지난 6월, 수험생인 딸과 방학을 맞은 열여섯 살 아들은 아내와 함께 2년 만에 한국에 왔다. 가족이 한 나라에 있다지만, 우리 가족은 주말에나 한 번씩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직장이 있는 경북 구미에서 생활을 했고, 딸이 대입학원을 다녀야 하는 처지라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서울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아들이 내가 있는 구미로 온 것은 '고3 스트레스'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누나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들과 단둘이서만 며칠을 지낸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부자지간이라지만 서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까닭이리라. 최근 구미 인근에 문을 연 글램핑장(필요한 도구들이 모두 갖춰진 곳에서 안락하게 즐기는 캠핑장)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봤다. 


"여기 어때? 근사해 보이지 않니? 여기서 하룻밤 묵을까?" 
아들은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네,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왜 거기서 자요?"
아들이 야외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첫 번째 계획부터 '실패'다.


아들의 까다로운 입맛... 사흘 내내 고기·고기·고기
            

▲ 아들의 식단 3 일간 고기만 먹다가 물렸다.

ⓒ 허성갑


둘만의 첫 번째 식사는 평소 나 혼자 즐겨 찾던 파스타집으로 정했다. 아들에게 메뉴를 보여주자 아들은 파스타가 아닌 스테이크를 먹겠단다. 아들은 육류를 좋아했고, 나는 면류를 좋아했다. 우리는 말없이 식사를 했다. 아들의 식성을 파악한 이후의 메뉴는 고기로 고정됐다. 등심, 안심, 육회, 등갈비…. 느끼했지만 까다로운 아들의 입맛에 맞춰 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잠자리는 하나뿐인 싱글 침대를 아들에게 양보하고, 난 침대 아래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았다. 키우는 고양이 한 마리 외에는 늘 적막했던 집에 아들과 함께 있으니 푸근함이 느껴진다. 

다음날 밤, 아들이 침대가 아닌 바닥에 있는 내 이부자리에서 뭉그적거린다. 침대로 올려보내고 각자 잠이 들었다. 하지만, 아들이 바닥을 선호한 이유는 떠난 뒤에나 알 수 있었다. 시원하게 자라고 어머니가 보내주신 까슬까슬한 침대용 패드가 싫었던 모양이다. 내가 깔고 잔, 부드러운 촉감의 일반 패드가 좋았던 것. 그럼에도 아들은 서먹한 내게 잠자리를 바꾸자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두 번째 배려도 '실패'다.


아들과의 추억 쌓기... 거듭 '실패'
            

▲ 아들과 고양이의 산책 식사 후 잠시 집 주변을 산책하기도 했다.

ⓒ 허성갑


그 다음날 아침. 아들에게 스테이크를 구워 먹이고 난 밥을 먹었다. 우린 말 없이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영화를 보기로 했다.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 외에는 볼 만한 영화가 없다. 아들은 미성년자이지만 보호자와 동반하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매했다. 

영화 시각에 맞춰 빠듯하게 영화관에 도착했다. 매표소 직원이 아들을 보더니 미성년자는 관람 불가란다. "보호자 동반인데도 안 되느냐"라고 항의해 봤지만…. 거듭 퇴짜를 맞았다. 하릴없이 발길을 되돌렸다. 세 번째 계획도 '실패'다.

점심은 유명 한우식당에서 등심을 먹었다. 우린 말 없이 식사를 했다. 오후에는 지인들과 가까운 골프장에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아들이 골프를 하지는 않지만, 더운 지역에서 살다 온 아들에게 한국의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해주고 싶었다. 아들도 기꺼이 동의했다. 

골프장에 도착해서 티샷을 하려는 순간, 주인이 제지한다. 이 골프장은 갤러리 입장 불가란다. 멀리서 온 아들이라고 사정해봤지만, 소용없다. 결국 아들은 클럽하우스에 홀로 앉아 책을 봐야 했다. 네 번째 계획도 '실패'.


3D 영화까지 골라봤지만, 아들은 '시큰둥'
            

▲ 책 읽기 식사 후에 시간이 남으면 대화는 뒤로 한 채, 각자 책을 읽었다.

ⓒ 허성갑


낮에 실패한 영화관람을 저녁에 다시 시도했다. 나는 전 연령대 관람 가능한 SF 영화를 택했다. 아들에게 실감 나는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돈을 좀 더 주고 3D 상영관 표를 끊었다.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다.

영화를 보고 난 아들의 소감은? '시큰둥'했다. 각본의 짜임새 없이 화려한 시각 효과만을 강조한 영화는 유치하다고 평가할 정도로 아들은 성장했다. 더구나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커 얼마 전에 안경을 처음 맞춘 아들이 3D 영화를 보는 것은 무척 불편했던 모양이다. 3D 영화 관람 역시 '실패'다. 

            

▲ 영화 관람 함께 시간을 보낼 무언가를 찾지 못한 부자는 영화관만 찾았다.

ⓒ 허성갑


일요일(6일) 아침. 아들이 꼭 보고 싶었던 영화가 상영하는 곳으로 향했다. 상영을 마감한 지 이미 오래된 영화였지만, 전국에서 오직 한 곳의 영화관에서 앙코르 상영을 했던 것. 나는 아들을 태우고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두어 시간 달려 청주의 한 영화관에 도착했다. 

아들이 워낙 좋아하는 영화인지라 몰입해서 관람했다. 청주에서 아들을 서울행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는 두 시간을 다시 구미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했던 2박 3일 일정 중 유일하게 성공한 스케줄이라 안도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아... 이번엔 기차여행이다
            

▲ 아들의 그림 그림을 따로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제법 그림 솜씨가 있다.

ⓒ 허성갑


아들은 나와 함께 지냈던 2박 3일 내내 말이 없었다. 무엇을 물어봐도 단답형으로 답하는 아들. 나는 아들과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아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아내와 함께 아들을 미대를 보내야 할지 고민을 해왔다. 하지만 나는 아들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녀석이 미대 진학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마도 이것이 2박 3일 동안 얻은 수확 중 가장 큰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아버지와의 대화가 거의 없었다. 아들이 나와의 대화를 어려워하는 것은 나와 내 아버지와의 관계를 봐왔기 때문 아닐까. 일종의 '거울효과' 말이다. 다음 주에는 아들과 좀 더 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기차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시간의 여유가 있는 만큼 아들과의 대화가 깊어지길 기대해본다.





지금 다시 들어도 얼굴이 화끈거리며 오그라드는 당시 팟캐스트 출연 녹음 링크

http://www.podbbang.com/ch/7208?e=2144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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