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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Aug 31. 2017

홍콩에서 맞은 태풍 '하토'

홍콩 체류 5일 차. 태풍 '하토'가 홍콩을 덮쳤다. 태풍경보 10단계가 발령됐다. 홍콩의 태풍 경보 1단계부터 10단계 중 가장 높은 특급 태풍경보다. 우리가 이용하던 호텔 최상층인 41층 클럽 라운지는 안전을 고려해 폐쇄됐다. 종업원의 안내대로 3 층의 일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각국의 사람들이 몰려 시장바닥 같다. 아내와 나는 간신히 구석 자리를 잡고 허기를 채웠다. 아들의 아침식사를 사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홍콩섬의 중심에 위치한 홍콩대학교는 마침 오늘이 신입생들의 수강 신청일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교직원들이 출근을 못한 탓인지 아침 일찍 시작됐어야 할 수강신청 접수가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상태로 연기 중이다. 아들은 호텔방에서 컴퓨터 앞을 지켜야 하기에 아침을 배달해 줘야 한다. 그라운드 층 로비로 내려가자 높다란 호텔 현관 출입문이 모두 폐쇄돼있다. 유리에는 X자 형태로 테이프를 붙여 놓았고 바닥의 문틈 사이로 범람한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천으로 막아 놓았다. 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에게 우산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호텔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손사래를 치며 나를 말린다. 우산은 쓸 수 없으니 대신 우의를 입으란다. 난 재차 우산을 요구했지만 호텔 직원은 극구 말리며 우의를 권한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홍콩 사람들이 안전에 철저한 건지 겁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태풍이야 한국에서도 많이 겪어 봤지만 이 정도로 호들갑을 떨 일인가 싶다. 폐쇄된 정문 대신 호텔 뒤의 쪽문으로 향했다. 은행 영업시간이 마감된 후 드나들 수 있는 형태의 철문이다. 투숙객 몇몇이 바깥바람을 주저하며 쪽문 앞에 서 있다. 그들 틈을 비집고 문을 나섰다. 강력한 비바람이 입고 있던 우의를 뒤집어 벗긴다. 간신히 손을 뻗어 우의를 제대로 입어보려 하지만 얇은 비닐 우의는 세차게 퍼덕이며 안면을 때린다. 간신히 몸의 중심을 잡고 발걸음을 떼어본다.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는 불과 50여 미터 떨어진 건물에 위치했지만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공사장의 가림막이 강풍에 찢겨 함부로 펄럭이고 거리의 휴지통이 쓰러져 나뒹군다. 높고 넓고 울창한 나무들의 가지가 꺾여 간신히 매달려 있거나 뿌리째 뽑혀 쓰러졌다. 어렵게 샌드위치를 쟁취해서 아까 나갔던 호텔의 쪽문으로 간신히 돌아왔다. 내가 들어서자 문 앞에 선 채 오도 가도 못하던 각국의 투숙객들이 내게 격려의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처음 겪는 홍콩의 태풍은 생각보다 강하고 무서웠다. 다음날 뉴스의 화면에서는 바람에 힘없이 쓰러지는 트럭과 강풍에 쓸려가는 사람들 그리고 고층아파트의 옥상에서 떨어진 곤돌라가 와이어에 매달린 채 발코니의 새시를 반복적으로 파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인근의 마카오는 피해가 더 심각해서 인명피해와 침수피해를 크게 입었다. 우리는 전날 배를 타고 마카오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태풍 소식을 듣고 조기에 홍콩으로 복귀했으니 망정이지 예정대로 그곳에 늦게까지 머물렀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태풍이 몰아치던 당시 홍콩섬과 구룡반도 사이의 해협의 거센 파도


폐쇄된 스카이라운지 앞에서 찍은 태풍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흐르는 먹구름 사이로 언뜻 보이는 파란 하늘

https://youtu.be/mw7TN-gM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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