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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Dec 11. 2017

처음이자 마지막 말

아버지를 보내며

딸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설핏 든 잠에서 깼다. 어머니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게 전화기를 건넸다. 수화기 너머로 중환자실 당직의사가 내게 물었다.

- 어제와 같은 위급상황입니다. 보호자께서는 인위적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에 변함없으시지요?

마른침을 삼킨 후 나는 답했다.

- ... 네 ...


심야의 서울시내는 한산했고 어머니 댁에서 병원까지는 채 20 분도 걸리지 않았다. 중환자실 앞에서 인터폰 벨을 누르자 간호사가 문을 열었고,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과 함께 중환자실 맨 안쪽의 아버지 침상으로 달려갔다. 기대와는 달리 아버지의 바이탈 사인을 나타내는 의료기기의 그래프는 일자로 멈춰있었다. 간호사나 담당의사는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이 일상인 듯 각자의 일에 바빴다. 어머니는 자책하며 통곡했고, 주검을 처음 접한 딸아이는 침상 옆에 주저앉아 심하게 몸을 떨었다. 아내 역시 눈물을 훔쳤지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3 주 전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향했던 아버지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신장기능의 약화로 폐와 심장에까지 물이 찼고 소변을 배출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산소호흡기를 입에 물린 채 24 시간 혈액투석을 시작했다. 투석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가수면 상태를 유지시켰고, 깨어났을 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팔다리를 침상에 결박했다. 영양분은 콧줄을 통해 공급됐지만 아버지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으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손발이 묶인 채로 혈액투석기를 몸에 달고 일주일이 흘렀다. 의사의 진단은 희망적이었다. 투석을 마치고 소변이 정상적으로 배출되면 퇴원 후 다시 투석을 하는 경우는 없을 거라 말했다. 하지만 의사의 말과는 달리 아버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장기간 수면 상태로 환자를 유지시키는 일이 부담스러웠던지 수면제 투여를 중단했다.


아버지는 긴 잠에서 깼지만 여전히 산소호흡기를 물어야 했다. 어디나 그러하듯 중환자실의 면회는 하루 단 20분만 주어졌다. 잠에서 깬 아버지는 나를 알아봤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내게 무언가 애타게 말을 하고 싶어 했지만 재갈과 같은 산소호흡기로 인해 그럴 수 없었다. 여전히 팔목이 묶인 아버지의 손가락에 내 손바닥을 갖다 댔다.

-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세요. 여기 써 보세요.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내 손에 무언가를 한동안 적었지만, 기진한 아버지의 손가락이 허공에 희미하게 써 나가는 글의 내용을 나는 읽어 낼 수 없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건넨 마지막 대화였다.


이후 아버지는 산소호흡기를 입에서 코로 옮겨 달고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2 주를 지내는 동안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어머니와 며느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내게는 직접 어떤 말씀도 하지 않았다.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 환자식이 공급되자 병원밥보다는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고, 죽어도 좋으니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아버지가 내 손바닥에 적었던 글씨도 감옥과 같은 중환자실에서 어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뜻이었으리라.


의사들은 24 시간 심장 검사를 하거나 초음파 검사를 하거나 투석 방식을 바꾸면서 검사 결과나 상태가 호전되면 일반병실로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의식이 있는 채로 가족과 격리된 채 중환자실에서  몇 주를 지내는 일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의사의 말을 믿은 나는 아버지에게 조금만 참으면 일반병실로 옮겨서 짜장면도 드시고 어머니가 하루 종일 옆에서 간호해 드릴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결과적으로 허언이며 희망고문이었다. 평소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던 아버지는 그럴 기력조차 없이 점차 잦아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임종을 맞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머니의 확고한 뜻으로 인위적 연명치료 거부에 동의했지만 난 확신하지 못했다. 내가 동의한 건 아버지의 고통스럽고 억지스러운 삶의 중단이었는지 미룰 수도 있었던 죽음을 앞당긴 것이었는지.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만 하루 전 심정지 상태를 맞았고 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작동시켜 아버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목의 큰 혈관을 잘라 약물을 직접 투여했다. 이후 간호사는 아버지의 심장기능이 정상치의 20%라고 했고 레지던트는 50%라고 했으며 주치의는 당연히 회생 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들이 연장시킨 건 아버지의 생명이었을까 아니면 의료수가였을까.


염습사의 손에 의해 씻겨지고 옅은 메이크업을 한 아버지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생전의 아버지의 모습보다 숨을 거둔 후 오히려 편안해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에 안도했다. 나는 비로소 울었다. 내가 울자 불경을 외던 스님이 망자가 가는 길에 좋지 않으니 눈물을 떨구지 말라고 했다. 염습이 마무리될 즈음 얼굴까지 염포로 덮인 아버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전해지지 못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말.

사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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