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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May 15. 2018

드론이 물에 빠졌을 때

신상 핸드폰도 안녕

그때는 3 월 초순이었으니 아직은 야외에서 패딩을 걸쳐야 했다. 미세먼지는 온데간데없이 쪽빛 하늘에 흰구름이 선명하다.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사람의 옆얼굴 모양을 한 금오산 정상 부근의 능선이 눈앞에 달려든다. 비염으로 막혀있던 코가 뻥 뚫릴 만큼 차고 맑은 공기가 폐를 채운다. 이런 날에는 드론을 날려야 마땅하다.  


금오산 입구의 진입로를 따라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사이로 드론을 띄웠다. 드론은 키가 20 미터에 달하는 메타세쿼이아를 양 옆으로 스치며 차도 위를 비행한다. 아직은 미숙한 조종 솜씨인지라 가로수길을 따라가며 드론을 부드럽게 날리지는 못한다. 나무에 부딪힐 듯한 순간도 있었고 드론 아래를 오가는 차량이 겁났지만 원하던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자신감을 획득한 나는 이제 계곡의 흐름에 맞춰 드론 촬영을 시도했다.


사나흘 간 사납게 내린 비는 대혜폭포로부터 쏟아져 겨우내 가물었던 금오산 계곡을 물로 가득 채웠다. 계곡을 가로질러 호텔로 향하는 좁은 다리 위에 자리를 잡고 드론을 날렸다. 다리 아래로 작게 형성된 폭포지만 삼단으로 떨어지며 제법 시원한 물보라를 일으킨다. 저 삼단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며 촬영을 하면 사람들에게 자랑할만한 그림이 나올 듯하다.

드론을 폭포 아래 수면 위로 근접시켰다. 영상 촬영을 시작하기 적당한 위치가 됐다 싶었을 때 조종기의 스틱을 위로 올리며 촬영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드론이 말을 듣지 않는다. 조종기와 연결되어 카메라 영상을 전송받는 핸드폰 화면이 순간 어둡게 변했다. 드론이 계곡물 위로 추락한 것이다. 머릿속이 핸드폰 화면처럼 까매졌고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드론이 떨어진  다리 아래로 뛰었다. 물에 잠기지 않은 채 간신히 머리만 내민 바위들을 딛고 계곡 중심부로 들어가 본다. 이끼로 덮인 데다 습기를 머금은 바위에 발을 디디자 사정없이 미끄러졌다. 물에 빠지는 건 간신히 면했지만 왼다리의 정강이를 세게 바위에 부딪혔다. 그리고 조종기를 들고 있던 오른손 역시 바위에 부딪혔다. 손을 부딪히며 조종기에서 분리된 핸드폰이 계곡물에 빠지고 말았다. 드론에 이어 핸드폰까지 입수됐다. 이번엔 머리가 하얘졌다.

드론과 핸드폰 중에 무얼 먼저 건져야 할까? 둘 다 구매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신품이었고 가격은 각각 백만 원 안팎이었다. 핸드폰은 방수가 되는 제품이므로 나중에 건지고 물에 취약한 드론 먼저 건져야겠다는 생각이 겨우 들었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계곡가에 수심이 얕은 부분이 눈에 띄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서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렸다. 바위에 부딪힌 정강이가 움푹 파여 뼈가 드러난 채로 피가 흘렀다.


상처를 돌볼 겨를 없이 드론이 빠진 다리 밑으로 향했다. 삼 월의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다리 밑은 비교적 수심이 낮아서 물가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었지만 빠른 물살에 드론은 이미 떠내려간 듯했다. 다시 넘어졌던 바위 근처로 가서 핸드폰을 찾아봤지만 시커먼 물속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심이 깊어서 손을 넣어 더듬어 볼 수도 없었다. 계곡을 따라 오가며 드론이 흘러내려갔을지 모르는 하류까지 수색을 해 봤지만 불어난 급류에 떠내려간 드론은 보이지 않았다.


드론의 비행경로가 GPS를 통해 핸드폰에 자동 저장되므로 기록을 보면 드론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겠지만, 그 핸드폰마저 사라졌으므로 찾을 방도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도 없다. 곧 귀가하겠다며 아내와 통화한 지 한참 되었으므로 궁금해할 텐데 전화를 할 수도 없다. 망연자실 계곡가에 앉아 젖은 발을 말렸다. 비로소 추위가 느껴졌고 정강이의 상처가 욱신거렸으며 부딪친 손과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보다 더 무서운 아내의 화난 얼굴이 떠올랐다. 드론을 좀 싸게 사겠다고 홍콩에 유학 중인 아들이 들고 들어온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드론이었다. 아들과 딸이 비난하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귀에 들렸다. 둘러보니 수풀가에 메고 있던 백팩이 뒹굴고 있었다. 그나마 가방은 벗어던지고 물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아마도 이럴 때 애들이 집을 나가는 모양이다. 지금 아이였으면 좋겠다. 가출이라도 하게...


등산객들이 지나가며 곁눈질로 나를 흘겨보며 자기들끼리 속닥거린다. 개울가 수풀에 바지가 젖은 채 다리에 피를 흘리며 망연자실 앉아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괴이해 보였을게 뻔하다. 오랜 취미인 사진에 식상했던 나에게 하늘에서 바라본 새로운 앵글로 영감과 희열을 선사했던 나의 첫 드론과 신상 핸드폰은 그렇게 금오산 계곡에 함께 수장됐다.


어딘가에서 하늘을 날며 핸드폰과 교신하고 있을 내 첫 드론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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