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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Jul 22. 2018

중년 남자들만의 여행 - 1

보홀에서 스쿠버다이빙하기

중년의 남자가, 단 둘이서, 해외로 떠나는 일은 흔치 않을 테다. 30 년 지기 친구라지만 각자 멀리 떨어져 살아온 세월 또한 그만큼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만의 여행을 계획한 건 책 한 권 때문이었다. 독서모임을 위해 최근에 다시 읽은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란 책이 그 계기였다. 여행서의 주인공 빌과 카츠는 나와 친구 연식을 숲이 아닌 바다로 불러냈다. 빌과 카츠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생고생하며 몇 달간 등반을 했고, 나와 연식은 무거운 다이빙 장비를 등에 지고 바닷속을 오갔다. 연식은 다이버의 최고 수준인 마스터 라이선스를 가진 베테랑이었지만 나는 고작 오픈워터 라이선스를 따고도 몇 년을 묵혀 둔 초보 다이버에 불과하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필리핀항공에서 운영하는 저가항공사 PAL 익스프레스를 탔다. 앉아있던 좌석의 시트가 분리되어 덜컹거리고 이륙 전에 에어컨이 꺼졌다 들어오기를 반복할 정도로 낡은 비행기는 감수할 수 있었지만, 새벽 2 시 45 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일은 지루했다. 탑승까지 길게 남은 시간을 때워야 했다. 공항에 주차를 한 후 택시를 타고 근처 신도시로 나가서 생선회를 주문했다. 하루 뒤면 바닷속에서 함께 헤엄쳐야 할지도 모를 물고기와 비슷한 종류의 생선이 회가 되어 접시 위에 올라와 있었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소주를 곁들여 생선을 맛있게 먹었다.


밤샘 비행으로 보홀의 타그빌라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지방 소도시의 버스터미널과 다름없이 작고 낡았다. 공항 직원들은 불친절했지만 수속은 빨랐다. 보홀 사람들은 어디든 그리 친절하지 않았고 미소 띤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이번 다이빙에서 가이드 역할을 해 준 유능한 강사 피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보홀의 거리 풍경은 베트남의 동나이와 닮았다. 도로를 따라 형성된 마을에 낮고 작은 집들이 길게 늘어섰다. 곳곳에 심어진 야자수와 원색의 꽃을 피운 나무들, 풀풀 먼지 나는 도로와 불완전 연소된 매연 냄새가 그랬다. 다만 다른 건, 베트남에 비해 오토바이 숫자가 압도적으로 적었다.

타그빌라란 공항에서 숙소인 블루워터 다이브 리조트까지는 약 20Km. 리조트는 보홀 섬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팡라오 섬의 끝자락 알로나 비치에 위치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리조트는 작은 객실 여러 개와 노천 식당 그리고 다이빙 샵을 함께 운영하는 전형적인 다이버들을 위한 시설로 꾸며졌다. 리셉션에서 엄격한 보홀의 다이빙 룰에 대해 길고 상세하게 통보를 받았다. 다이빙 용품을 분실하면 전적으로 다이버들의 책임이며 리조트 측에서는 어떤 의무 사항도 없다는 지극히 불공정한 문서에 서명한 후 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각자의 룸으로 들어가기 전에 옆방 문 앞에서 연식이 말했다.

- 신발을 벗고 들어가.

- 왜 벗어야 해?

- 그래야 깨끗하게 쓰잖아.

- 으응?!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일이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연식은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깔끔을 떨었다. 노천 식당에서 맥주 한 잔을 할 때도 테이블 위의 과자 봉지를 먹자마자 치웠고, 빈 잔이나 먹고 난 접시를 수시로 주방에 반납했다. 테이블 아래를 오가는 고양이를 내가 쓰다듬자, 그걸 어떻게 만지냐며 질색을 했다. 같은 가격으로 룸에서 편하게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자기방에 누가 들어오는 게 찝찝하다며 굳이 먼 길을 걸어 마사지 샵까지 가야 했다. 평소 집에서 식사를 할 때도 설거지가 덜 된 숟가락을 지적했다가 열 받은 와이프가 먹던 밥상을 치워버리는 일도 있었다는 고백도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환자 같은 놈...'

그때부터 난 룸에 신발을 신은채 편안하게 출입했고, 컵라면 등을 가지러 잠시 연식이 방에 들어갈 때도 연식이가 없으면 신발을 신고 들락거렸다. 물론 연식은 내가 그랬는지를 여행의 끝까지 몰랐다.

우리는 도착 당일에는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부터 다이빙을 하기로 했으므로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필리핀 먼 바다에서 발생해서 대만 쪽으로 향하는 태풍 '마리아'의 영향으로 해풍이 불어 시원했다. 해변에는 각국의 여행객들과 배에서 오르고 내리는 다이버들로 북적였다. 개와 강아지들은 사람들보다 더 편하고 여유롭게 모래사장에 눕거나 삼삼오오 산책을 했다. 저녁이 되자 알로나 비치를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에 조명이 켜졌다. 가게마다 해산물과 바비큐 등을 내어 놓고 손님들의 발길을 끌었다. 많은 레스토랑에서는 라이브 밴드들이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며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찾은 레스토랑에서 공연하는 밴드의 실력은 특히 뛰어났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 싱어로 이뤄진 4 인조 밴드였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팝 음악을 들려줬다. 깔라만시가 들어간 칵테일을 홀짝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연을 감상했다. 한편으론 내일부터 시작할 다이빙에 대한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물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2 년 전 다이빙을 처음 배울 때 이퀄라이징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서 고생했던 기억 때문이다. 물속 깊이 들어갈수록 압력의 차이로 인해 압착된 고막을 열어주는 일을 이퀄라이징(압력 균형)이라고 한다. 바닷속에서 귀가 먹먹한 느낌이 들면 코를 막고 숨을 불어내어 귀를 뚫어주면 된다는데, 난 도통 효과가 없어서 귀에 통증과 더불어 고막에 염증이 생기기까지 했다.


우리는 늦은 밤 리조트로 돌아와서 산미구엘 맥주를 한 병씩 더 마신 후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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