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홀에서 스쿠버 다이빙하기
다이빙 첫날이다. PADI에서 제공하는 오픈 워터 다이버를 위한 동영상을 다시 봤다.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는 듯하다. 동영상에서 내레이터는 '절대로 숨을 참지 마세요'라는 부분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당연하다. 물속에서 숨 쉬는 일을 왜 참겠는가? '당황하지 마세요'라는 대목도 반복된다. '돌발상황이 생기면 일단 행동을 멈추고 생각하세요'라고 강조한다. 역시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숨을 계속 쉬고 당황하지 않으며 일단 행동을 멈추고 생각하기'는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어제 리조트에서 알려준 대로라면 가이드 피터를 포함해서 나와 연식 셋이서 한 팀으로 오늘 다이빙을 할 예정이었다. 아침에 오늘의 다이빙 코스를 브리핑하는 장소에 나가보니 젊은 커플 한 쌍이 합류했다. 다이빙 포인트까지 함께 배를 타고 가면서 몇 마디 얘기를 나눴다. 우리처럼 밤 비행기를 타고 오늘 아침에 보홀에 내렸는데 도착하자마자 다이빙에 나섰단다. 남자는 여자를 와이프라고 소개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붙임성이 좋아서 스스럼없이 우릴 대했다. 와이프라고 소개한 여자에게 다이빙 스킬을 각인시키며 섬세하게 챙겼다.
연식이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 저 커플 불륜이야.
- 정말?
- 딱 보면 몰라?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게 다르잖아.
연식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우리를 태운 보트는 곧 옥색이 선명한 다이빙 포인트에 도착했다. 바다는 잔잔했다. 다이빙 샵에서 렌털 한 잠수복을 입으니 전신에 압박감이 든다. 공기탱크와 연결된 BCD를 착용했다. 무게로 인해 어깨가 뒤로 휘청한다. 허리에는 중량 6Kg 웨이트 벨트를 묶고 핀을 발에 착용했다. 마스크에 습기 방지제를 뿌려 정성껏 닦은 후 얼굴에 썼다. 양성부력 상태로 만들기 위해 인플레이터를 눌러 BCD에 공기를 약간 채웠다. 탱크 안의 공기 양이 적당한지 게이지를 확인한 후, 호흡기를 입에 물어 숨을 두어 차례 들이쉬었다. 입수 충격으로 빠지지 않도록 마스크와 호흡기를 오른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준비는 끝났다.
피터와 커플이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고 뒤따라 연식이 그리고 끝으로 내가 입수했다. 2 년 전의 첫 다이빙 때보다는 긴장감이 덜했다. 디플레이터를 눌러 공기를 배출하니 바닷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대로 이퀄라이징은 잘 되지 않았다. 연식은 내 뒤쪽 위에서 나를 계속 체크했다. 커플들은 여유롭게 바닷속 풍경을 즐기는 듯했다. 남자는 여자를 따라다니며 중국산 액티브 캠으로 연신 촬영을 했다. 여자는 팔과 손으로 크고 작은 하트를 만들어 남자를 향해 계속 발사했다. 여자는 마치 물 위에서 배영을 하는 것처럼 누운 자세로 움직이기를 좋아했다. 우아해 보이려는 시도로 보였다. 입술에 손을 댔다가 떼면서 남자에게 키스를 보내기도 했다. 이때 상어가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커플들의 오리발이나 물어가는 정도의 사소한 응징을 해주면 어떨까.
첫 번째 다이빙을 마친 후 선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동승한 필리핀인 직원들이 숯불 바비큐를 즉석에서 구웠다. 밥과 김치 등을 곁들여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물론 생선회에 소주와 라면이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말이다. 식후 커피를 마시며, 함께 다이빙한 커플들과 얘기를 좀 더 나눴다. 첫 다이빙 이후 동료의식 비슷한 감정이 생겼는지 대화가 좀 더 편했다. 둘은 2 년 전에 결혼을 했고, 둘 다 은행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연식이가 인테리어 사업을 한다고 하자, 두 사람의 신혼집 인테리어 사진을 보여주며 자문을 구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서울의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도 했다. 핸드폰에는 두 사람의 웨딩 사진이 깔려있었다. 부부가 분명했다.
커플이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이 내가 연식에게 말했다.
- 불륜이 아니고 부부가 맞는데?
- 그런 거 같네...
- 뭐? 여자 얼굴에 업소 분위기가 난다며?
- 기억력도 좋네...
연식은 애꿎은 다이빙 장비만 매만졌다.
다음 다이빙은 훨씬 수월했다. 코를 막고 귀로 공기를 불어넣는 방식의 이퀄라이징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물속으로 내려갈 때마다 침을 삼켰더니 귀가 뚫렸다. 귀가 뚫리니 물속에서 모든 일이 편안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이브 샵의 다른 한국인 강사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이퀄라이징을 한다고 했다. 처음으로 바다거북을 만났다. 경험이 많은 다이버들에게는 흔한 일이겠지만 나로서는 새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잭 피시 떼를 만났다.
피터가 바닷속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우리에게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서 물고기 떼가 먹구름 처럼 몰려왔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고래 또는 상어처럼 보였다. 소용돌이처럼 휘감아 솟구쳤다가 일제히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바꿨다. 내가 그리로 헤엄쳤는지 잭 피시 떼가 다가왔는지 모르게 어느새 그들과 가까워졌다. 가까이서 본 잭 피시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곁눈질했다. 놀란 듯 보이기도 했고 자신들이 하나의 객체로 보이는 걸 숨기려는 듯했다. 물 밖이었다면 탄성을 내뱉거나 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겠지만 호흡기를 입에 문채 한동안 장관을 바라봐야만 했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펜과 종이가 있다면 잭 피시 떼를 그려보고도 싶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유영을. 수 천대의 드론이 통신기술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듯한 그들의 군무를. 잭 피시 떼와의 만남은 단연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