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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Sep 04. 2019

괴생명체 습격 사건

출근길에 벌어진 일

나와 아내, 딸, 단비 그리고 이웃집 여자와 돼냥이 중에 오늘 아침 가장 놀란 건 누구였을까.

아침의 사건은 여기까지다. 어찌보면 시끄러운 세상일을 잠시나마 말끔히 잊게해준 돼냥이와 그 집사가 고맙기도 하다.

그러니까 평소처럼 아침을 먹고 딸아이의 방을 지나 그 옆 아들의 방을 지나 중문을 열고 현관문을 열고 엘베를 타러 집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딸아이는 아직 자기 방에서 자고 있었고 아내는 나를 배웅하려 중문 앞에 서 있었으며 그 뒤로 고양이 단비가 나른한 눈빛으로 오늘은 뭐 재밌는 일 없을까를 생각하며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현관문을 한 뼘 정도 열었을 때 어떤 생물체가 내 발등을 스쳐 집안으로 난입했다. 하도 순식간이라 방금 들어간 게 무엇인지 정확히 볼 수 없었는데, 누런색과 핑크색이 섞인 럭비공이 날아 들어가는 듯도 했고 오소리나 너구리 같기도 했으며 새끼돼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게 무엇이든 그 덩어리는 나를 지나 중문 앞의 아내를 지나 그 뒤의 단비를 지나 딸아이의 방을 지나 안방을 향해 전속력으로 사라졌다. 생애 처음 당하는 정체불명 덩어리의 습격에 순간 나는 얼음이 됐고 아내는 14층인 우리 집에서 지하주차장까지 울릴 정도로 비명을 질렀으며 온갖 소동에 딸은 머리를 산발을 한채 놀라 잠에서 깨어 나왔고 단비는 그 덩어리를 쫓아 함께 달리다가 주방 쪽으로 방향을 틀어 멈춰 섰다.  


괴생명체가 안방으로 들어갔으니 다른 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안방과 현관을 제외한 집안의 모든 문을 닫았다. 놀라움과 경계심에 제 몸에 난 털을 최대한 부풀려서 고슴도치처럼 변한 단비를 딸아이의 방에 넣었두었다. 펜트리에서 7번 아이언을 꺼내 들었다. 생명체를 내쫓으려 휘적거리다가 만약의 상황이 생기면 아이언 헤드로 내려칠 생각이었다. 생명체의 이동 과정을 모두 지켜본 아내가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고 일러줬다. 아이언을 든 채로 허리를 숙여 머리를 바닥에 대고 침대 밑을 조심스레 살폈다. 침대 반대편 끝에 생명체가 나를 바라봤다. 인광이 비쳤다. 이 장면이 왠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침대 밑에 숨은 단비를 찾을 때 늘 하던 일이었다. 지금 저 속에 있는 생명체 역시 고양이었다. 녀석은 두려움에 가득 찬 긴 울음소리를 서너 차례 냈다. 그 울음은 목욕을 죽도록 싫어하는 단비가 고양이용 샴푸로 온몸이 젖었을 때 내던 소리와 같았다. 그렇게 침대 이쪽과 저쪽 끝에서 나와 녀석이 대치하는 사이에 현관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녀석의 주인이었다.


어느 층에 사는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고양이의 주인은 30대 여자였다. 우리 딸처럼 머리는 산발을 했으며 파자마 바람으로 안방으로 들어왔다. 우리보다 더 놀랍고 경황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먼저 손에 들고 있던 아이언을 침대에 덮인 이불속으로 숨겼다.(내가 동물 학대범으로 몰릴 수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손에 이끌려 고양이가 침대 밑에서 빠져나왔다. 우리는 비로소 녀석의 실체를 살필 수 있었다. 어떤 종인지 구분하긴 어려웠지만 처음에 얼핏 본 대로 노란색과 핑크색이 섞여 윤기 나는 털을 가졌으며 집사의 정성을 듬뿍 받은 자태였다. 다만 특이한 건 몸집이 아주 컸는데 지나치게 비대했다. 내가 녀석을 고양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의심한 건 우리가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정도의 돼냥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집사는 죽을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연신 허리 숙여 사과를 하고는 돼냥이를 무겁게 안고 도망치듯 돌아갔다.


아마도 돼냥이는 현관문이 열린 사이 집사 몰래 자기 집을 탈출했고 호기심에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길을 잃은 듯하다. (우리 집 단비도 과거 탈출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내가 미친놈처럼 계단을 뛰어다니며 어렵게 단비를 포획했던 경험이 여러 차례있다) 돼냥이가 우연히도 우리 집 현관 앞에서 갈팡질팡 하던 때 내가 문을 열었고 녀석은 반사적으로 집안으로 들어온 거다. 아마 자기 집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다행히도 단비는 남의 집으로 난입하는 일 없이 번번이 계단에서 포획됐었다) 돼냥이가 사라진 걸 나중에 알게 된 집사는 계단 여기 저기를 헤메었겠지. 나와 아내, 딸, 단비 그리고 이웃집 여자와 돼냥이 중에 오늘 아침 가장 놀란 건 누구였을까.


아침의 사건은 여기까지다. 어찌보면 시끄러운 세상일을 잠시나마 잊게해준 돼냥이와 그 집사가 고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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