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도우 트랙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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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리

2. 그림자 밟기



훈련 종료까지의 시계가 무겁게 돌아가던 중, 잠항 36시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두 번째 교전 기회가 부여되었다. 이번 작전 지침은 이전보다 훨씬 간결하고 건조했다.


“대상은 동일한 항모전단이다. 항로는 수정되었고, 배정된 구역 내에서 잠수함의 자유 기동(Free maneuver)을 허용한다.”


자유 기동. 김도현은 그 단어가 내포한 이중적인 함의를 즉각적으로 간파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접근 방식의 제한을 풀겠다는 관용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한국 해군이 어떤 변칙을 부리든 결국 자신들이 설계한 탐색망 안에서 어떻게 다시 실패하는지를 재확인하겠다는 오만한 관찰 선언이었다.


잠항 후 2시간이 지났다. 함 내의 긴장감은 이전 작전보다 훨씬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붉은 저조도 조명 아래, 김도현은 좁은 통로 너머로 보이는 부하들의 땀방울과 굳게 다문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때, 웅웅거리는 추진기 소음이 마치 먼 과거의 환청처럼 들려오며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어느 보름밤이었다.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는 모처럼 휴가를 나와 어린 도현의 손을 잡고 집 뒤편의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등 뒤에서 쏟아지며 아버지의 거대한 그림자가 길 위로 길게 뻗어 나갔다.


“도현아, 아빠 그림자만 밟으며 따라와 보렴.”


아버지는 일정한 속도로 걷다가도 예고 없이 멈춰 섰고, 때로는 보폭을 좁게 하며 도현의 리듬을 흔들었다. 도현은 헉헉거리며 아버지의 구두 뒷굽과 그림자의 경계선에 발을 맞추려 애썼다. 소리가 나지 않게, 그림자의 검은 영역 밖으로 발가락 하나 나가지 않게.


“아빠, 그림자 밟기가 왜 이렇게 어려워요? 아빠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나직하게 답했다.


“상대의 리듬을 네 것으로 만드는 게 가장 어려운 법이란다. 하지만 도현아, 네가 상대의 그림자 안에 완벽하게 스며들면, 앞만 보고 걷는 사람은 절대로 네가 뒤에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지. 그림자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은신처란다.”




김도현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이제 그 '그림자'가 무엇인지 보였다.


“작전장, 전단의 예상 항로를 띄워라.”


김도현의 지시에 작전장이 신속하게 데이터를 갱신했다.


“현시점 기준, 열층 하부로 접근할 경우 외곽 소노부이 필드와 반드시 접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도현은 빛나는 상황도를 한참 동안 침묵 속에 응시했다. 수없이 반복했던 교범의 잔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열층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부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상부 운용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


“수심 40미터를 유지한다.”


함교 유산기에 잠시 서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차가운 수온의 경계면인 열층 아래로 숨어들지 않는 디젤 잠수함이란 자살 행위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음탐실 보고. 주변에 다수의 상선 소음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김도현은 망설임 없이 다음 지시를 내렸다.


“상선 항로의 소음 속으로 들어간다. 속력은 2노트에서 4노트 범위 내에서 목표 항적과 연동하며 안정 유지한다.”


의아함을 참지 못한 작전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매복 지점은 어디로 설정하시겠습니까? ”


“설정하지 않는다.”


매복은 결국 특정한 지점에서 적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전술이었다. 김도현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는다. 거대한 상선들의 소음, 그 두터운 그림자 속에 우리를 숨긴 채 적의 궤적을 그대로 밟고 간다.”


해역의 높은 교통 밀도와 배경 소음이, 이 위험한 거리에서의 후방 동조를 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6시간 경과.


잠수함의 심장은 이전보다 훨씬 여유롭게 뛰고 있었다.


“소노부이 신호가 간헐적으로 감지되나, 모두 열층 하부 탐색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작전장이 상황판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그들은 우리가 여전히 차가운 심해 아래에 숨어 있다고 믿고 있군요.”


잠항 10시간째.


잠수함은 거대한 상선들이 내뿜는 배경 소음의 파편들 사이를 교묘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추진기의 회전수는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았고, 속력은 마치 파도의 리듬처럼 미세하게 변했다.


“항모전단 접근 중. 현재 거리 28해리입니다.”


김도현이 즉각 명령했다.


“속력 3노트. 방향은 전단의 진행 방향과 정확히 일치시킨다.”


부장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차단 구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추적하시는 겁니까? ”


“그렇다. 뒤를 따라간다.

그림자 밟기를 시작한다.”



18시간째.


잠수함은 이제 거대 전단의 후방 약 10해리 지점에서 그림자처럼 그 궤적을 밟고 있었다. 소노부이의 핑(ping) 소리는 아득히 멀었고, 헬기의 회전익 소음은 오직 전방의 일정 반경 밖에서만 맴돌았다.


음탐장이 헤드셋을 고쳐 쓰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건 탐색 패턴이 아닙니다. 놈들은 전방만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 뒤에 유령이 붙어 있는 줄도 모른 채.”


22시간 경과.


“거리 12,000야드. 사격 제원 계산을 시작합니다.”


함 내의 모든 말소리가 사라졌다. 김도현은 다시 한번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말을 곱씹었다.

가장 안전한 은신처.

적이 가장 강하다고 믿는 정면의 탐색망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남긴 소음과 항적의 그림자 속.


“연습어뢰 두 발, 발사.”


잠수함이 아주 미세하게 요동쳤다.

훈련 통제관의 메시지가 수신된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40초 후였다.


Carrier simulated hit. (항공모함 가상 격침 판정.)

Submarine not detected prior to firing. (발사 전까지 잠수함 탐지되지 않음.)


작전장이 전술 화면을 거듭 확인했다.


“피탐 기록 무. 우리는 완전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장이 김도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경외심이 서려 있었다. 김도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명령했다.


“방향을 틀어 다시 상선 항로로 재진입한다.”


잠수함은 다시 무수한 소음의 바다 속으로, 그리고 아버지가 가르쳐준 그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유령처럼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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