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도우 트랙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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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리

3. 통제 구역



훈련 종료가 코앞으로 다가온 마지막 이틀, 김도현의 잠수함에는 더 이상의 교전 임무가 부여되지 않은 채 대기 상태로 전환되었다.

예정되어 있던 시나리오 중 하나가 돌연 취소되었고, 이후의 일정은 “가용 시 참여(Available for participation)”라는 모호한 문구로 수정되었다. 브리핑실에서 전달된 이유는 간결했다.


“Carrier group operational tempo adjustment.”

(항모전단의 작전 템포 조정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단의 일정 문제라는 형식적인 답변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감히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날 저녁, 연합 평가 회의가 열렸다.

대형 스크린에는 각국 전력의 교전 결과가 냉혹한 수치로 정리되어 나타났다. 항공기의 출격률, 요격 성공률, 대잠 탐지 시간과 교전 지속 시간들이 격자무늬 표를 채웠고, 한국 잠수함의 항목은 그 수많은 데이터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해 있었다.

미 해군의 분석관이 단상에 올라 발표를 시작했다.


“The diesel-electric submarine demonstrated extended trail capability beyond the expected engagement range.”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이 예상된 교전 범위를 벗어나 확장된 추적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슬라이드에는 김도현이 기록한 궤적이 붉은 선으로 선명하게 표시되었다.

전단 후방 5에서 10해리 지점을 유지하며, 상선 항로에 근접해 동일 속도로 이동한 흔적이었다.


“Masking using background noise was effective, and no triggers for active sonar were observed.”

(배경 소음을 활용한 마스킹이 효과적이었으며, 아군의 능동 탐색을 유발하는 어떠한 트리거도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객석에서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왔다.


“How long did it take for the escort ships to realize the threat?”

(호위함 세력이 추적 위험을 인지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습니까?)


분석관의 대답은 짧고 굴욕적이었다.


“Right after the simulated hit.”

(피격 시뮬레이션 직후였습니다.)


즉, 실제로 어뢰가 항모의 현측을 때리고 나서야 뒤를 잡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이었다.


이어지는 슬라이드에는 ‘Non-standard diesel behavior’ (비표준적 디젤 기동) 라는 제목의 평가서가 나타났다. 열층 하부 매복 없음, 외곽 접근 시도 없음, 그리고 장시간에 걸친 후방 동조 기동.

한 장교가 신음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This isn’t classic coastal defense doctrine.”

(이건 고전적인 연안 방어 교리가 아니야.)


옆에 앉은 이가 덧붙였다.


“Pure result of patience.”

(이건 순전히 인내심의 결과군.)


회의는 곧장 다음 단계인 ‘Implications for future exercises’ (향후 훈련에 미칠 영향)로 넘어갔다.

새롭게 나타난 슬라이드에는 세 가지 대응 항목이 명시되어 있었다.


Extension of ASW helicopter patrol range in rear sectors (후방 구역 대잠 헬기 초계 범위 확장)

Irregular speed variation of the carrier group (항모전단의 불규칙한 속력 가변 기동)

Enhanced wake noise monitoring (지속적인 항적 소음 모니터링 강화)


그리고 가장 하단에 굵은 글씨로 마지막 문장이 추가되었다.


Participation profile adjustment recommended.

(참여 프로파일 조정 권고).




며칠 뒤, 한국 대표단은 문서 한 장을 비공식적으로 통보받았다.

다음 연합 훈련부터 디젤 잠수함은 안전 관리와 훈련 효율을 위해 특정 시나리오 내에서 운용 범위가 명확히 제한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교전 조건과 접근 구역은 사전에 정의되어 있으며, 고가치 표적 접근은 모의 단계에서 엄격히 관리될 예정이었다.

문구는 한없이 정중했다.

Training efficiency(훈련 효율성), Balance of forces(전력 간의 균형), 그리고 Safety management(안전 관리).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실체는 분명했다. 자유 기동의 박탈이었다.


김도현은 기지로 복귀하는 항해 중에 이 사실을 전달받았다. 위성 통신망을 타고 들어온 짧고 건조한 전문이었다.


“Future submarine operation areas to be pre-controlled during joint exercises.”

(향후 연합 훈련 시 잠수함 운용 구역 사전 통제 예정.)


부장이 전문을 몇 번이고 다시 읽더니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제한 사항이 훨씬 많아지겠군요.


김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수함은 이제 익숙한 모항을 향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속력 6노트, 수심 60미터. 배터리는 충분했고 추진 계통의 소음 수치도 안정적이었다.

음탐장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주변 해역의 평온함을 보고했다.

그들은 이제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았고, 누구도 그들을 찾으려 들지 않았다.

작전장이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잘하지 않았습니까?”


김도현이 되물었다.


“우리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김도현은 어두운 콘솔 화면을 응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우리가 그렇게 움직일 것까지 저들의 예상 범위에 포함되겠지.'


김도현은 대답 대신 좁은 관물대 안쪽에 붙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바라보았다.

209급 잠수함의 좁은 함교에서 구릿빛 얼굴로 웃고 있는 아버지는, 이 거대한 바다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남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도현은 문득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아버지가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도현아, 네가 그림자를 너무 잘 밟으면, 술래는 불을 끄거나 아예 놀이를 멈춰버린단다. 그때부터는 네가 스스로 어둠이 되어야 하지. 빛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진짜 어둠 말이다.”


아버지는 승리의 환희 뒤에 올 거대 시스템의 보복을 이미 예견했던 것일까. 김도현은 이제야 아버지가 남긴 '격침 전설'이 왜 교범에는 '구형 전술 사례'로만 남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체계는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변칙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해하는 순간, 그것을 교범 속에 가둔다.


복귀 후 책상 위에 놓인 최종 평가 문서는 길고 상세했지만, 한국 잠수함에 할당된 지면은 단 한 페이지뿐이었다.


Operationally effective in limited engagement scenario. (제한적 교전 시나리오 하에서 작전적 유효성 확인.)

Demonstrated high endurance discipline. (높은 인내심과 군기 입증.)

Unpredictable maneuver profile. (예측 불가능한 기동 프로파일 보유.)


그리고 문서의 마지막 줄에는 짤막한 권고안이 꼬리표처럼 붙어 있었다.


Controlled exposure required.

(통제된 노출 필요).


문서를 덮으며 김도현은 상황의 의미를 정확히 받아들였다.

첫 번째 교전에서 그들은 그를 파악했다. 두 번째 교전에서 그는 그들의 예측 범위를 벗어났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들의 목록에 추가되었다.

관찰하고, 분석하고, 통제할 대상.
훈련과 교범 속에 반영될 하나의 변수.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개된 다음 연합 훈련 계획 초안은 김도현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 잠수함은 지정된 구역 내에서만 운용할 것, 고가치 표적으로의 접근은 사전에 통제할 것, 일부 교전은 위험 방지를 위해 모의 단계에서 강제 종료할 것.

그 모든 제약 사항을 포장하는 단어는 역시나 동일했다.


Training balance.

(훈련의 균형.)




그로부터 수년 후.


새로운 함으로써는 데뷔전이 되는 연합훈련 출항 전, 중령 김도현은 마지막 점검을 모두 마쳤다.

함 내는 적막했고 모든 장비는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늘어난 배수량만큼이나, 전통적인 어뢰 외에도 새로운 무기체계들을 수용하게 되었으며, 배터리와 추진기관 역시 이전에 비해서는 효율도 월등하고 정숙한 새로운 타입이 적용되었다.

함의 인수요원들도, 그동안 수개월에 걸쳐 손발을 맞춰온 관숙훈련 끝에 상시 작전투입이 가능한 최상의 컨디션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작전 해역의 지도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구역은 자로 잰 듯 명확했고,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들이 붉게 그어져 있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이제 어디까지 침투할 수 있느냐가 아니었다.

어디까지 가도 되는지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잠항 명령이 떨어졌다. 잠수함이 거대한 바다의 품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수심 30, 50, 그리고 70미터.


“음탐실 보고. 주변 해역 이상 없습니다.”


김도현은 상황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태평양은 여전히 끝을 알 수 없이 넓었지만, 그 광활한 바다 안에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허용 범위는 점점 더 선명하고 정확한 감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속력을 3노트로 낮추라고 지시했다. 더 조용하게 움직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 속도로 유지한다. 이 좁은 경계선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텨야 하니까.”

“60초 후 빨판상어-1 (AUV;자율형 수중 이동체) 분리한다. 침로 웨이포인트 2로 이동, 전방 소노부이 감시와 주변 소음 분산 임무를 수행한다.”


이제 술래는 불을 껐고, 게임의 규칙은 바뀌었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임무, '이미 예측가능한 존재'로서 살아남아야 하는 지루한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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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