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동안 카페에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 윙윙 도는 머리로 십 분 걸리는 루트를 돌아 십오 분 걸려 걸었다. 입구를 일 분 삼십 초 앞두고 가로등을 바라보며 카페인 디버프에 걸린 머릿속에 두둑 둑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소리가 들렸다. 외출할 때는 눈이었던 것이 비로 바뀌며 묵직하게 우산을 쳤다.
빗소리나 파도 소리가 이토록 안정적인 이유는 뭘까? 일명 마음이 편해지는 소음. ASMR. 백색소음.
규칙적인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하나? 다음에 올 소리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통제감을 느끼는 걸까. 그렇다면 규칙적인 공사장 소리도 기분 좋을까. 규칙적일 수만 있다면.
공사는 기본적으로 부수는 행위다. 파도와 비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사는 인위적이고, 파도와 비는 자연적인가? 인간은 인위 속에 살면서 왜 자연을 그리워할까. 그들 자신이 불완전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위 또한 완전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걸까.
그럼 자연은 완벽한가? 완벽의 정의를 재조립해야 한다. 완벽한 자연에 편안을 느낀다, 의 완벽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와 동의어이다. 막연히 내가 이해하지 못한 어떤 것은 필시 아주 대단한 것이겠지, 하는 무의식적 경외. 인간은 자연을 만들지 않았기에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만들지 못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미지에서 편안을 느끼나?
아니다. 미지는 주로 공포로 읽힌다. 인류가 가로등을 밝히고 형광등을 발명하고서도 극복하지 못한 어둠, 침대 밑, 살인마가 등장하기 직전 조명 페이드아웃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듯이. 그럼 어둠과 ‘산뜻한’ 자연은 뭐가 다른가. 경험적으로 학습한 안전과 위험?
아니다. 숲과 바다는 안전한 만큼 위험하다. 사람을 순식간에 삼키고 쓸어먹을 수 있는 거대한 자연. 어쩌면 그냥 단순한 생명 반응일까? 인류 전체 역사에선 아주 짧은 시간 존재한 인간 문명보다 인류의 태초부터, 그 훨씬 전부터 인류와 함께한 것들을 향한 이유 모를 친숙함과 경의.
세포나 본능은 그토록 위대한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