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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릇 Aug 15. 2023

늙은 오이의 도전과 기회

사실 처음엔 오이인지 몰랐다.

아버지가 퇴원하시는 날이라 시골에 내려왔다. 병원 특유의 냄새와 누군지 모를 속을 게워 내는 소리, 그리고 아버지가 퇴원이 가능하신 건지 걱정이 되는 마음이 뒤섞여 배고픔도 잊었다.     


퇴원 수속을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던 나에게 별안간 오이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손을 따라가니 태양이 만든 농부의 얼굴이 한가득 눈에 들어온다. 맛을 보지 않아도 그 맛을 알 수 있는 정직한 얼굴이었다.     


사실 처음엔 오이인지 몰랐다. 뭔지 정체를 모를 오동통한 모양에, 연두색 하늘에 노란색 뭉게구름이 떠 있듯이 오묘한 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멈춘 듯 오이를 받아 들고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 동안 어느새 너도나도 약속이라 한 듯 하나씩 받아 들더니, 쓱쓱 닦아 반으로 툭 잘라먹고 있었다.
 

농부는 고추를 따다가 오이가 한가득 펼쳐진 밭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게 있잖아요. 그냥 조그만 씨를 심어서 작년에 오이 몇 개 달렸는데, 늙어서 그냥 내버려 뒀더니 그 씨가 지절로 나서 넓어져서 그냥 밭 한가득이 되었어~”

     

손이 많이 가는 농사가 저절로 되어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찰나 또다른 오이 수혜자님께서 아삭아삭 오이를 씹으시며 말씀하셨다. “저는요 슈퍼 호박을 애지중지 키웠는데 세상에 들쥐가 굴을 파놓고, 왔다 갔다 하면서 다 파먹었어, 그래서 하나도 못 먹었어.” 농부는 그놈들은 원래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고 맞장구를 쳤다. 들쥐가 이렇게 위험할 줄이야~ 나는 들쥐의 심각성까지 덤으로 얻었다.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나 상품도 작은 씨앗이 되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특히 요즘은 빠르게 성장하는 기술 영향력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들쥐와 같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상황도 발생하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에 들쥐는 무엇일까? 경쟁사, 시장환경, 조직문화...  가 있겠다.    


강한 오이 향에 감탄하여 나도 모르게 “이거 파셔도 되겠어요” 말하니,

농부가 답했다. “사다 먹으면 질긴 맛이지, 이게 지금 갖고 와서 이 맛이지”

“이거 주문하면 바로 따서 가져다줄 수 있으면요?” 말하니,

농부는 답했다. “누가? 아휴 장사 해 본 사람이나 하지 아무나 못햐”     


그렇다. 바로 따서 갓 내올 수 있는 맛은 누구나 원하지 않을까?

고추 따다 무심코 발견한 오이도 바로 태울 수 있는 탄력적인 공급망과 누구나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탁월한 경험과 가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방금 딴 오이의 향기와 맛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농부가 말을 이어간다. “고추 따고 있는데, 이 양반이 하도 전화 해싸서 병원 왔다 갔다 내가 일을 못햐...”

이 양반 퇴원시켜 달라고 하신다. 이내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또 다른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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