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n charge
"내일 10시에 회의실에서 만납시다."
"예, 알았습니다. 인샬라"
우리 유엔초소는 그 지역 담당 파키스탄 여단 본부에 바로 붙어있다. 그래서 본부 장교들과 어울려 테니스를 치곤 한다. 잘 지내니 업무 협조도 원활하다.
하루는 테니스를 끝내고 내일 업무 협조차 미팅을 정하고 헤어지면서 그때 보자고 인사를 건넸더니 말끝마다 인샬라라고 하는 알리 대위가 답하기를 아니나 다를까, ‘인샬라’. 신의 뜻대로라는 뜻이다.
'아니, 지가 그냥 제시간에 맞춰서 회의를 오면 되지, 인샬라는 뭐가 인샬라야? 핑계 대는 것도 아니고.' 속으로 살며시 짜증이 날뻔했다.
한참 지나고 이들의 종교와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개개인의 신앙에 대한 신념이나 성향에 따라 말끝마다 인샬라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덜 하거나 거의 안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따라서 말끝에 인샬라라고 한다고 해서 오해할 필요는 없다.
카슈미르에 온 후 몇 차례 서로 다른 초소 근무를 한 지 5개월 여가 지나 초소의 대표가 되었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남부에 있는 빔버라는 지역에 있는 초소다.
빔버는 오랜 역사 동안 여러 제국과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 지역이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와 언어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이러한 배경이 지명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빔버'라는 지명은 힌두 신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데, 특히 '비마'라는 이름에서 생겼다.
비마는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판다바 형제 중 한 명으로, 힘과 용기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투나 군사적 활동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여, 비마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근무를 마치고 초소를 떠나는 전임 대표인 스웨덴 동료 헨릭과 인계인수했다. 잘 다듬어 양 끝이 멋들어지게 동그랗게 말린 콧수염이 일품인 친구다. 마른 체구가 나랑 비슷하고 여기서 만나기 전에도 왠지 닮은 점이 있어 서로 신뢰하던 사이였다. 절차상 보고서 파일, 통신 장비, 예산 등 품목별 수량을 실 셈했지만 세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동료다.
그 후 초소에 큰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다. 50년이 지나감에 따라 건물 아래 지반 침하가 일어나 건물이 기울고, 한편으로 낡아 금이 가고 자칫 붕괴 우려도 있다. 금 간 곳에 모르타르로 임시 땜빵을 했는데, 구조적인 균열로 보이는데 가당치도 않다. 수도관이 앙상하게 드러나 보인다.
인접 발전기 창고의 바닥 지반은 더 심각했다. 바닥의 기초가 다 드러나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이를 받치려고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렸는데 조금 후 다시 바닥으로 와르르 흩어져 내렸다.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의 돌처럼. 총체적 난국에 위험한 부분이 있어 몹시 신경이 쓰인다. 동료들 안전까지…. 오지라서 그런 건지 건축 수준이 약간 어설프다.
이런 건 건축이랄 것도 없는데, 설상가상 바로 옆에 있는 고목이 건물 위로 쓰러져 내리려고 한다. 그래서 파키스탄군 운전병, 취사병이 다 달라붙어 밧줄을 걸어 아예 반대편으로 넘어뜨리려고 한다. 이것도 여의찮다. 역부족이다.
조금 있자니 어디서 가져왔는지, 농사용 트랙터에 줄을 걸어서 당기니 그제야 넘어갔다. 그래서 주변이 여러모로 부산스럽다. 이럴 때일수록 동료들과 협력하여 안정되게 초소의 일상을 관리해야 한다.
며칠 되지 않아, 정전감시단에 최근 합류한 새내기 옵서버가 전입해 왔다. 처음 내가 길깃 초소에 전입했던 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 나는 더 잘 알려주고 이끌리라. 핀란드 대위 새미다.
"웰컴 투 파라다이스! 웰컴 투 빔버!!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여기는 파키스탄 측 카슈미르 빔버 초소입니다. 우리 임무는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의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위반 사례를 보고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현재 이 지역의 전체적인 안보 상황과 주요 정전 위반 사례 몇 가지를 설명하겠습니다."라고 나는 운을 뗐다.
그리고, 전체적인 상황 개요부터 설명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긴장은 2001년 인도 의회 공격 이후로 크게 고조되었고, 2002년 동안 군사적 대치가 계속되었다. 2003년 초반에도 군사적 충돌과 정전협정 위반 사례가 빈번했는데, 이 지역은 이러한 충돌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이른바 핫 스폿! 하지만 다행히도 2003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상황실 벽의 지도를 보여주며, "다음은 올해 2003년의 주요 정전 위반 사례를 보겠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1월 3일에 발생했는데, 인도와 파키스탄 군이 빔버 지역에서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어요. 이 충돌로 여러 명의 병력과 민간인이 다쳤고, 양측은 서로를 먼저 공격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두 번째는 5월 14일 또다시 빔버 지역에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격렬한 포격전이 있었죠. 지역 주민들이 피난을 가야 했고, 양국은 서로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양국 간의 긴장 상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죠."
"올 초반에는 상황이 불안정했겠군요. 더구나 주민들까지 피해를 보았다니 안타깝네요."라고 새미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고, 우리가 모두 함께 노력해서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자고 독려하며 브리핑을 마쳤다.
새로 온 동료에게 전체적인 상황과 구체적인 사건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차츰 정전감시 활동을 하며 상황을 인식해 가겠지만 처음 머릿속에 그림이 좀 그려졌기를 바란다. 신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