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기억 소환
3월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어느 봄날 - 긴 겨울이 가고 푸근한 봄이 오나 했는데 아프가니스탄에도 봄을 시샘하는 불청객 꽃샘추위가 있구나 - 탈레반 총공세로 캠프 방호태세가 최고 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사령부 정문 바로 앞에 있는 숙소로 나갈 수 없게 됐다.
오후에 영내 대기 지시가 하달되었다. 추운 겨울 동안 이렇다 할 준동을 못 했던 적대 세력이 날이 풀리면서 그간 어려웠던 전투행위를 포함하여 대대적인 춘계공세를 폈다.
현대전은 6·25전쟁처럼 땅 따먹기식 선형 전투는 아니지만 카불에 대한 지상전 공격이 대폭 증가했고, 특히 탈레반의 위협적인 로켓 공격과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가 연이어 발생했다.
갑작스레 악화한 상황에 밤이 되자 영외 거주자는 간이 숙소에서 교대로 쪽잠을 자고나와 근무하기를 며칠 반복했다.
임무는 보통 때와 다를 바 없지만 나처럼 사령부 밖으로 출입하는 활동은 잠정 중단이 되었다. 긴장이 되면서도 답답했다.
아프가니스탄 내무부 측 상황을 들어야 하는데, 휴대전화는 이따금 먹통이어서 더 초조했다. 그러니 위험해도 찾아가서 들어야 한다.
이라크도 그랬지만 전쟁으로 사회기반시설이 대부분 파괴된 나라는 일반전화가 거의 없고 휴대전화가 유일한 통화 수단이다. 카불 시민의 일상이 위축되고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실전 상황이다. 보통 때 반복적으로 대피소shelter 소산 훈련을 했지만 내 위치와 가까운 쉘터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원래 사령부 용도로 지어진 정규 시설이 아니다 보니 쉘터는 이글루처럼, 하지만 각지게 생긴 이동식 콘크리트 구조물로 대신했다.
한 8명 정도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졌는데 캠프 내 상주 인원을 생각하면 다 수용할 수 없을 만큼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까 건물 밖을 이동 중이다가 예기치 않았던 공격을 받으면 가까운 쉘터로 들어가는 개념이다.
건물에 있던 사람도 대피할 수 있으면 좋고. 연합군 동료들과 함께 대응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도 생경한 불안감이 있었다.
한편으로 이런 비정상적이고 압박이 심한 전시 상황과도 같은 시간을, 심적으로 어려움을 이미 겪어봐서 그래도 좀 나았다.
평상시 버스 타고 다녔던 왕복 4차선 등굣길에 전차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데 그렇게 큰지 몰랐다. 위압적인 계엄군 병력과 장비, 시민군과의 교전 시에 크고 작은 총소리와 수류탄 터지는 소리까지 간접적으로 물리적인 위험을 겪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오마주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새삼 부끄러웠다. 내내 집에만 있었으니...
중학교 시절 1980년 봄, 당시엔 광주사태라 불렸던 5·18 민주화운동 때 격전지였던 금남로와 광주공원에 우리 집이 가까이 있던 탓에 오랜 기간 자유를 박탈당했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군은 사실 미군이나 나토군에 비해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은 편인데, 개인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귀한 전장 실상을 체험했다.
혹시 모를 이동을 위해 비상용 백팩인 ‘생존배낭’을 싸놓았고, 이때부터 생활화되었다. 내용물은 크게 세 가지인데, 첫째 건빵, 통조림과 같은 보존기간이 긴 비상식량과 물. 둘째 여벌 옷과 내의 양말, 우의, 담요 등 보온용품. 셋째 손전등, 양초, 라이터나 성냥, 화장지, 휴대폰 배터리, 간단한 상비약품 등 생존용품이다. 휴대가 쉽도록 최대한 작고 가볍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며칠간 카불 안팎에서 연합군과 아프가니스탄군의 협조된 공격으로 물리쳐 탈레반은 퇴각했다.
전쟁터에서 되찾은 그 속에서의 자유는 안도와 기쁨이었다. 그간 한 몸이다시피 했던 방탄복을 잠시 벗고 홀가분해진 해방의 즐거움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