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무 스트레스 극복

멘토 헌정글

by 다문화인

토요일 하루만 쉬고 일주 내내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을 근무했다. 처음엔 멋모르고 흘러가다가 며칠 지나면서 힘들어진다.


그러다 몸과 마음이 적응하게 되면 그런대로 지낼 만해진다. 아니 무뎌진다고 해야 할까.




내가 봐온 미군은 강대국의 선진 군대로서 오래전부터 체계적으로 조직화하여 온 터라 인력이 충분하고 상식적인 사고방식 아래에 그다지 격무를 하지 않는 합리적인 행태를 취하는 편이다. 주한미군에서 근무할 때 보고 느꼈다.


하지만 이곳의 미군은 힘들어 보인다. 뭐 전장임을 감안하면 더한 극한의 상황도 있을 수 있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근무시간 중에 자신의 업무 여건을 고려하여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씻을 수 있다. 이런 호사아닌 호사마저 없다면 스트레스를 풀 수도 없이 정말 힘들 것 같다.


아내가 내 상황을 듣고 건강 유지를 위해 운동이라도 해보라는 권유를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마른 편이기도 하고 근육을 키워 메워보고자 하는 생각도 들었다.

<코드네임 제로니모> 같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를 다루는 영화를 보면 군인이 멀리 떨어져있는 가족과 통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상통화는 아니었지만, 그들처럼 정해진 시설에 가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귀한 사기진작 프로그램이었고 감사했다.




주변에 미군과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사사할 수 있는 사부가 생겼다. 바쿠스 해병 하사. 거의 드웨인 존슨급이다. 허벅지, 팔뚝, 허리의 두께가 다 내 두 배 이상이다.


딱 봐도 기둥이나 대들보다. 파견기간 끝날 무렵 비포-애프터 내 사진을 비교해보면 노력한 보람이 엿보인다.


안타깝게 몇 년 후 다른 아프가니스탄 미군 동료를 통해 바쿠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짤막한 메시지로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었지만 명예롭게 의무를 다하고 순직했기를 바랐다.


헬스장 벤치에 누워 100파운드 덤벨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 가슴 근육이 긴장되도록 벌렸다 눈앞에 모았다를 반복하면서 내게 열심히 설명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씰룩거리는 위팔 근육까지…….




나는 6개월간 근무했지만 미군은 1년 이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파견 기간 중 '휴식과 회복 프로그램'이 필요해 보였다.


예전에는 해외에 주둔한 미군 병사들이 며칠 동안 풀려나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많은 병사가 주둔한 나라의 매음굴과 술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중동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미군은 술을 전면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장병은 어디에서든 표적이 될 수 있어서 여가로 기지를 떠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2004년 미국 중부사령부는 평화로운 아랍 국가 카타르에 있는 기지 내에서 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군인에게 중동을 벗어나지 않고도 짧은 휴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래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복무하는 군인이 4일간 휴가를 받았다.




중동 전문 프리랜서 기자인 올리 할펀은 그의 기사에서 '군 휴가는 모순이 아닐까?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 한가운데 기지에 있는 미군 남녀가 어떻게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라며 휴가 중인 미군과 동행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줬다.


카타르에 있는 캠프 아스-세일리야의 가장 인기 있는 클럽에서 당구를 치고, 춤추고,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은 이 프로그램의 주요 매력 중 하나다. 이외 최신식 체육관, 수영장, 영화관이 있다.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기지를 벗어날 기회인데, 인근 도시인 도하에 있는 최첨단 쇼핑몰로 단체 관광을 갈 수 있다.

그곳에서 좋아하는 스토어에 가는 것 외에 아이스 스케이팅을 하거나 실내 호수에서 보트를 타거나 거대한 얼음 언덕을 미끄러질 수 있으며, 버스를 타고 도시를 둘러볼 수도 있다.


여군이 보내는 시간은 사소한 것들에 관한 것이라면서 늦잠을 자고, 머리를 자르며, 손발톱 다듬기, 마사지, 다리 면도 등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한다고 했다. 9개월 만에 처음으로 머리를 내린다는 여군도 있다면서.


다만 클럽에서 자정 이전까지 술 석 잔만 주문할 수 있는 제약이 있어서 월남전처럼 과거 자유스러웠던 휴식 분위기와 달라 실망스러워하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공군기지 미군 클럽 공연

또한 혼자 쉬고, 직접 운전해서 새로운 이 지역을 탐험하며, 아내나 가족을 이곳에서 만나고 싶어하는데 허용되지 않는 제한사항도 있었다.


남, 여군 성비가 5 내지 6대 1이라서 여군이 너무 많은 관심을 받는다고 불평하고, 여군은 남군 한 명과만 함께 기지를 나갈 수 없다.


그 프로그램의 이면에는 이들이 집에 더 가고 싶게 만드는 역설이 있어 보였다. 전장 스트레스때문에 이곳으로 와서는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싶은데, 반쯤 취해서 맥주 한 잔 더 못 마시는 것보다 아예 집에 가서 그렇게 제대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고….




파견 기간에 감사하게도 며칠 휴가를 받아 집에 갈 수 있었다. 황폐하고 적막한 전장을 떠나 너무나 보고 싶었던 가족을 만났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말 그대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휴가 후 진심으로 카불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복귀 여정 중에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공군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복귀 수송기편을 기다리며 짬이 나 시내 구경을 나갔다. 아래 편에서 말했듯, 사람보다 화물 적재가 먼저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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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비슈케크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새로운 문화와 맛을 경험할 기회였다.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작은 시장부터 가봤다.


당시 환전이 1달러당 40솜 정도였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70솜(우리 돈 1,100원) 정도로 환율이 변했지만, 물가가 저렴해 부담없이 지출할 수 있었다.


비슈케크 곳곳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유목민의 집인 유르트.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천막집으로,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였다.


유르트에서는 발효된 말 우유인 쿠미(또는 크므스)를 판매하고 있었고, 현지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맛을 보았다. 약간 시큼한 맛이 나는 이 음료는 유목민의 삶을 체험할 좋은 기회였지만, 처음 마셨을 때 속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유르트는 키르기스스탄 국기에도 그려져 있는데, 중심부 원은 유르트의 지붕 꼭대기를 상징하고 있다. 이 나라의 문화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상징적인 요소다.


비슈케크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이식쿨 호수는 키르기스 말로 '따뜻한 호수'라는 뜻이다. 이 호수는 제주도 면적의 세 배가 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 호수로 유명하다.


이곳은 여름철 피서지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이며, 한겨울에도 차가운 날씨로부터 안전한 피신처가 되어 준다.




‘어디로 가든지 마음의 양식이 중요하다’라는 속담처럼 여행 중의 경험은 우리에게 간단한 휴식을 넘어서, 새로운 인식과 이해를 가져다준다.


휴식을 통해 키르기스스탄에서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고,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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