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기법이 창조해내는 우연적 아름다움
극과 극만이 통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패션을 추종하는 이들이 인디안 주얼리에 매료되는 것, 또 일본 발 아메리칸 트래디셔널 브랜드 빔즈가 중국 소수민족의 복식에 관한 전시를 전개한 것으로 보아, 지역적 전통끼리도 통하는 점이 있는가 싶다. 비즈빔은 20년 전부터 이미 이를 꿰뚫어보고 북미/불유럽 지역의 인디언 문화와 일본 전통 문화 간의 융합을 시도해왔고, 이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즈빔을 이끈 나카무라 히로키의 커리어는 상당히 독특하다. 나나미카의 혼마 에이이치로와 같이 패션 디자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배경에서 출발하여 패션 브랜드의 성공에 필수적인 가치들을 길어올렸다.(혼마 에이이치로는 사회학을 전공하고, 아웃도어 웨어 수입사에서 일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각 민족의 전통 문화를 거의 날 것 그대로 가져와 이식하는 방식의 브랜딩 전략 덕분이 아닌가 싶다. 사실 비즈빔은 '이거 완전 날로 먹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통 문화를 그대로 차용한 경우가 많다. 캬피탈이나 블루블루와 같은 브랜드들은 일본 문화를 현대적이고 적극적으로 재해석한 것에 반해, 비즈빔은 서로 다른 지역의 전통 문화를 '병렬'한 경향이 강하다. 비즈빔의 모카신은 핀란드에서, 비즈빔 가디건의 나바호 텍스타일은 멕시코에서, 데님 염색은 일본에서 가져왔다. 그 밖에도 다양한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굴하며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히로키에게 감각적인 디자인 경험이 많지 않다는 사실은 브랜드를 이끄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에게 감각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렸을 때부터 시각적 감각에 있어 보통내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비교대상이 되는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해석의 측면보다 재현의 측면이 강함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이 점을 음미하다보면, 애초에 왜 패션 브랜드 수장을 꼭 패션 디자인 전공자들이 맡아야 하는가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옷은 사치재이기 이전에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헤델스의 창립자들이 통찰하고 있는 것처럼 소비자들도 이러한 사실에 눈을 뜨고 그들의 소비패턴을 변화시켜가고 있다. 그만큼 패션은 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혹은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외려 디자인 전공자보다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거듭해온 사람이 패션업계에 더 적합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카무라 히로키는 각 민족들의 전통 복식에 '라이프스타일'이 필연적으로 농도 짙게 배어 있음을 통찰했다. 그의 성공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본 포스팅에서는 비즈빔의 나카무라 히로키의 삶과 그것을 이룬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브랜드 비즈빔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를 작성함에 있어 SSENSE지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부분부분 참고하고자 한다.
나카무라 히로키는 일본 야마나시 현 고후 출신이지만 성장기의 대부분을 도쿄에서 보냈다. 그의 부모님은 직물 제조업에 종사하였는데 일찍부터 생각이 트인 분들이었는지 그에게 일본 문화에 갇히지 않는 경험을 쌓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그러한 조언은 분카 고등학교(위키피디아에는 그가 분카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쓰여있는데 이것이 일본의 패션 학교 분카 학교를 말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에서 영국인 친구 코디 혼을 만나 성사된 알래스카 여행으로 이어진다. 히로키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 여행을 자신의 커리어의 출발점으로 묘사하고는 한다. 다음은 히로키가 SSENSE 지와 나눈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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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은 언제부터 품게 되었나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웃도어, 유틸리티 기어, 미국적인 것들 등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제가 스포츠 광이거나 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때는 제가 그런 줄 알았어요. 저는 십대 시절 친구들과 알래스카로 여행을 갔었는데, 제가 짐을 쌀 때 옷가지들을 챙기면서 일일이 그것들의 색감이 어떻게 어울릴지, 모자부터 양말까지 다 따져보았던 기억이 나요. 생각해보면 같이 간 친구들 중 그런 거 따지던 사람은 저 뿐이었어요.
알래스카에서는 본인이 나무를 하거나 곰 트랩을 설치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나요?
그 생각을 캠핑할 때 했던 것 같아요. 제 백팩에는 너무 많은 기어들이 들어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제 친구들은 '너 어디가냐'하고 물었어요.
그러게요. 어딜 가려던 거에요?
저는 거의 숙소에만 있는데, 하루는 다같이 해처 패스(Hatcher Pass)에 가게 되었어요. 해처패스는 스노우보딩을 하기 좋은 고개에요. 저는 그곳에 가기 위해 색깔을 잘 맞춘 옷가지들을 챙겨 입었어요. 거기에는 어차피 제 친구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저한테는 그게 너무 중요했어요.(웃음) 하지만 막상 가보니 날씨가 너무 추워서 멋을 내기보다는 제대로 된 등산 용품을 갖춰야 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중간에 등산용품 점에 들렀어요. 제 친구들은 등산용품들과 자기 차림새가 어떻든 별로 상관하지 않았어요. 그냥 눈이 오고 추운 날씨에서 제 기능을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저한테는 그것들이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이 너무 중요했어요. 그때가 제게는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거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삶에서 무얼 할지 깨닫게 된 그런 순간이었군요.
네. 그래서 저는 아웃도어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디자인, 판매, 마케팅과 같은 일들을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좀 지난 후에,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나를 행복하게 할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 가지 신발, 세 가지 데님으로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https://www.ssense.com/en-us/editorial/fashion/how-visvim-creates-future-vintage 발췌한 것을 우리말로 옮김)
나카무라 히로키가 비즈빔을 런칭하기 전에 8년 간 일했던 회사는 다름 아닌 바튼(Burton)이었다. 바튼의 일본 지사에서 스노우보드 디자이너 및 마케터로 활동하면서 아웃도어 웨어에 대한 이해를 키운 그는 2000년 비즈빔을 설립한다. 상기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데님과 슈즈에서 시작하였다. 특히 사슴가죽으로 만든 모카신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비즈빔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모카신이 등장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역시 SSENSE지와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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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T 모카신은 비즈빔 런칭 당시부터 지금까지 발전을 거듭하며 제작되고 있는데요, 제작하게 된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저의 공급처에서 사슴 가죽을 소개해주었고, 저는 '와 엄청 괜찮은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들의 실제 용법이 어떤 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저와 제 팀원들은 라피 지역(핀란드 북부의 러시아 접경 지역; 역자 주)에 사는 사미인들이 그것으로 어떻게 모카신을 만드는지 배우러 갔지요. 그곳에서 지내는동안 발이 너무 시려웠는데, 한 할머니께서 짚으로 단열 처리를 한 모카신 한 켤레를 빠르기 만들어주셨어요. 저는 그 신발이 정말 너무너무 따뜻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모카신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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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추운 지방에서 발달한 전통 복식 문화는 아무래도 동물 가죽을 사용하고 무게감 있는 아이템들로 구성되다보니 남성미를 부각시키는 면이 있다. 무엇보다 방금 눈보리를 뚫고 온 듯한 터프한 감각을 구현하는 데 제격이다. 그렇다보니 비즈빔의 모카신은 존 메이어, 카니예 웨스트 등을 미롯한 터프가이 이미지의 미국 남자 연예인들에게 사랑받는 아이템이 되었고, 북미 전 지역에서 사랑받게 된 건 시간 문제였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어떨까? 일본에서도 상당히 인기 있는 제품임에는 틀림 없으나, 일본에서는 북미 지역의 소비자들과는 달리 한결 귀엽고 아기자기한 감각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에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비즈빔 모카신이 갖는 매력일 것이다.
비즈빔의 직조/나염 기술
비즈빔은 상당히 다양한 염색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본 포스팅에서 이것들을 모두 다루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그 중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나바호 직물과 인디고 나염에 대해 간단히 옮겨보고자 한다. 참고로 비즈빔은 자사에서 사용하는 제조기술들에 대한 일련의 에세이들을 작성하고 있다. 추후 기회가 닿는대로 하나씩 이곳에 옮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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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주민들의 문화를 모티브로 한 아이템과 직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이 당신이 알래스카 여행에서 얻은 것이었나요?
아뇨, 미국 원주민들의 문화는 2008년 경 모카신을 모으던 중 뉴멕시코에 가면 물건이 많을 거라는 말을 듣고 갔다가 알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나바호 블랭킷을 팔던 친구의 친구를 만났거든요. 그 친구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한 담요에 일가견이 있었을 뿐 아니라, 원주민들과 미국인들 사이의 담요 거래를 중재하는 일을 몇 대째 이어받아 하고 있었어요. 한 번은 나바호 가족들을 일본에 있는, 제가 인디고 담요 염색 작업을 하는 곳으로 초대한 뒤 실들을 주며 나바호 담요를 짜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저는 그 직물에 대해, 그리고 코치닐(선홍색 색소)과 인디고를 사용한 염색 방법에 대해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지요. 이때의 작업이 제게 너무나도 많은 영감을 주었어요. 거의 마치 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는 것처럼요. 결국 이때 배운 것들로 하나의 컬렉션을 짜게 되었고요.
처음 천연 염색 작업을 접하게 된 것은 언제였나요?
제가 일본에서 저만의 데님을 개발하고 있을 때, 기본 구조를 파악하려고 조각 별로 분해하고는 했습니다. 그걸로 최적의 인디고 쉐이드를 찾아내기 위한 실험을 거듭했지요. 당시 저는 현대의 자동화 기술로 인해 인디고 염색이 밋밋해진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언가 덜 정형적이고 보다 더 독특한 것들을 만들고 싶었어요. 천연 염색을 하면서 "와, 천연염색을 하면 우연히도 독특하고 비정형적인 것들이 마구 탄생하네!"하고 감탄했습니다. 그게 사업을 이끌어가는 데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어요. 수백명의 직원들보다 살아있는 박테리아들을 이용해 일을 할 수 있고, 사람 손으로 한 것과 같은 결과물을 이것들을 통해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진흙 염색에 대해 말한 적이 있던가요?
아뇨.
진흙 염색은 기모노에 색을 입히기 위해 전통적으로 사용되었던 방법이었어요. 큐슈 지방의 아마미 섬에서는 옷을 말 그대로 논에 담가서 염색을 했습니다. 그 색은 진흙 자체의 색은 아니고, 진흙 속에 함유된 성분의 색이죠. 화산 분출시에 흘러나오는 진흙인데, 이 진흙들은 아연과 같은 미네랄이 풍부한데, 여기에 자두나무를 태워 얻는 재를 섞어서 아름다운 진갈색을 얻어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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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비즈빔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우연성'을 테마로 삼아 컬렉션을 전개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노선을 취하는 브랜드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 기계 문명의 대척점에 선 전통 문화가 현대 사회에서 갖는 매력이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현대 기계 문명의 문화예술, 그를 바탕으로 한 라이프 스타일이 갖는 한계를 전통 문화 속에서 보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 전통문화와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 >. 이것은 또다른 지면을 할애하여 풀어보아야 할 방대한 주제이다. 이 주제에 대해 몸소 뛰어들며 적극적이고 역동적으로 탐구를 이어나가는 비즈빔의 컬렉션들은 앞으로도 계속 흥미진진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