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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 박하림 Mar 23. 2020

01. 뜨뜬미지근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나는 수험생활 2년을 막 채운 고시생이다. 올 해를 마지막으로 수험생활을 청산하고 싶고,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희망으로 1, 2월을 지냈다. 그런데 신종 폐렴 감염이 확산되면서 모든 시험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세웠던, 그리고 차곡차곡 밟아 왔던 나름의 계획표에 전면적인 재정비가 요구되었다. 그동안 '이제 곧 끝난다. 나는 내가 살고픈 삶에 한 발 더 다가간다'는 열정이 나를 견디게 해주었다. 이제 곧 실무에 투입되어 여러 사회적, 거시적 문제들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가슴 쫄릿한 긴장감과 자부심이 나로 하여금 끊임 없이 정보를 흡수하고 정리하고 비판하고 현출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시험 일정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그런 긴장감과 자부심의 수준을 스스로 유지하기에 나의 내공은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처음에는 적절한 긴장과 고양감 없이도 습관처럼 공부를 이어 나가는 것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열정으로 시작된 불길은 모닥불처럼 잔잔히 가꾸어져야 한다는 어느 배우의 말을 되새기며, 어쩌면 이 시기는 내게 모닥불 가꾸기를 연마하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운동을 하고, 세수를 하고, 아침식사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몸이 힘들어 죽겠다고 할 때까지 공부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쉬고, 회복되면 다시 공부를 하고, 밤이 되면 다시 씻고 잠을 잤다. 그리고 그런 단순한 생활이 몸에 익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타성에 젖는 것만이 최선인 이 상황에 대해 현타가 왔다. 계획을 예상 일정에 맞게 수정하고, 그동안 미뤘던 가구정리, 책 정리, 공부방 최적화 작업을 마친 후,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여전히 '이게 잘 하고 있는 건가? 더 열정적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물음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미적지근한 수험 생활 속에서 익사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당장 더 불태우기에는 아직 태워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고, 그렇다고 꺼지지 않을 정도로만  연명하기에는 내가 너무 '건성건성' 사는 게 아닌가 싶은 자책감이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더 이상 나는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열정적이지 않은 상태를 잘 견디지 못한다. 모닥불처럼 잔잔히 가꾸고 싶었는데 어느새 나는 땔감 대신 얼음물이 가득 담긴 버켓을 들고 스스로에게 협박을 하고 있었다. 불 꺼버리기 전에 빨리 타오르라고.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같은 신비주의적 소설에 열광한 것은 무척 신기한 일이다. 21세기 극초반의 낙관적 객관주의, 과학주의를 추구하는 한가운데에서도 누군가는 점점 더 깊은, 정신적-누군가는 영적이라고도 할-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영적' 갈증이라는 것을 느끼기에는 어렸지만, 내 인생에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갖기에는 충분한 나이였다. 파울로 코엘료는 그런 내게 '네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반드시 찾아라'는 -약인지 독인지 모를-메세지를 끊임없이 던져주는 소설가였다. 중학교 3년 내내 나는 그의 소설을 모조리 사서 읽었으며, 인터넷으로 그와 화가인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의 삶에 대해 스토커처럼 집착했고, 그의 신작이 번역되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번역이 너무 늦어지면 영역본을 사서라도 사전을 끼고 읽을 정도로 빠져 들었다. 마치 그의 책들에 아직 2할도 채 살지 않은 내 모든 인생이 걸려있는 것처럼.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브리다>였다. 다른 누구보다도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정을 따르는 것은 그녀가 무엇보다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열정을 품은 대상이 자주 바뀐다는 것이었다. 브리다는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언제나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언제나 변덕스러운 사람이었다, 라고도 생각해왔다. 중학교 때만 해도 어떤 것에 호기심을 갖고, 집착하고, 즐거워하거나 갈등하는 모든 것이 온전히 진심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누군가가 내게 남긴 '변덕스럽다'는 말로 인해 스스로 나의 진심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변덕스러움'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스스로 검토해 볼 정도로 영민하지 못했던 나는 그것이 비판으로 받아들여졌고, 나의 진심은 곧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말, 누군가는 '외고, 특목고 준비'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준비를, 누군가는 예고 입시를 위한 특강을 수강하는 것을 보면서 '네 마음 속 열정을 따르라'는 메세지와 '변덕 부리지 말아라'는 메세지 사이에 갈등했다. 그 갈등이 너무 첨예해진 나머지, 나는 변덕스럽지 않은 열정을 갖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변덕스럽지 않은, 지고지순한 열정을 강요해야 하고, 그것이 좋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믿음을 굳혔다. 이러한 믿음을 굳히는 데에는 당시 역시 유행했던 하버드대생 등의 합격수기가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나는 특목고 유학반 입학에 대한 열망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나의 중학교 3학년 1년은 그렇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 의해 억지로 부여된 목표에 소진되었다. 그리고 나는 원했던 학교에 들어갔다.


흥미롭게도 내 열정을 향한 진짜 방황은, 일편단심일 것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떤 결정이든, '자 이제 네가 한 번 결정하면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어, 빨리 선택해'라고 협박 받는 상황에서는 죽어라고 시간을 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다니던 명상원의 멘토님은, 명상이란 삶의 고통에서 도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굴곡진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리고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지금 내게 닥친 상황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귀띔해주시기도 했다. 나는 최선의 삶을 살고 싶고, 그래서 주어진 상황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익히고 깨닫는 사람이고픈데, 실상은 지금 10분을 더 쉬어도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10분을 보내버리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 충분히 열정적인가를 열정적으로 검토하느라 정말 열정을 다해야 할 일에 그렇지 못한 사람이다.


머리로는 안다. 어차피 나 스스로가 지쳐있다면, 그래서 더 이상 스스로에게 동기를 북돋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면 채찍질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문제는 스스로가 지친 것인지조차 자주 헷갈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헷갈려 하는 데에 아주 약간 남아 있는 정신력을 마저 닦아 쓰고 방전이 되어 버린 후에야, 그리고 기나긴 휴식시간을 취한 후에야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별 수 없이 미숙한 사람이다. 열정적인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이 알 수가 없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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